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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전략무기 확보” 질주하는 북한…“유감”만 반복하는 정부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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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북한이 27일 쏜 KN-23 계열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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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10발. 올해 1월 북한이 쏘아올린 미사일 발사 규모다. 새해가 시작된 지 5일만에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은 27일까지 10발의 미사일을 쐈다.

1월부터 벌어진 ‘미사일 발사 퍼레이드’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4.5일 간격으로 미사일을 쐈고, 시기도 1월이었다. 종류도 극초음속 미사일,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까지 다양하다.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양상이다.

앞당겨진 발사 시기와 간격. 최근 수년간 북한이 보여준 행보와 다른 부분이다. 대선 이후 출범할 차기 정부가 움직이기 전에 ‘상시적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는 북한의 최종 목표가 핵능력 완성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보다 성능이 훨씬 향상된 북한 미사일의 칼끝이 본격적으로 남한을 겨누기 시작한 셈이다.

◆과거와 닮은 듯 다른 북한의 미사일 발사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는 2014년부터 거의 매년 반복됐던 사건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전개되는 양상은 최근 사례와는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

1월의 미사일 발사는 신무기와 기존에 등장했던 미사일의 발사가 결합한 형태였다.

시간을 되돌려보자. 2017년과 2019년 무력시위는 신무기 위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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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스커드 미사일들이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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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성-2형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4, 15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KN-24 전술지대지유도무기, 초대형방사포 등 모든 종류의 발사체가 새롭게 등장했다. 북한은 이를 통해 김정일 시절 주력이었던 스커드와 무수단, 노동 등을 대체했다.

김정은 집권 초기였던 2014년은 어땠을까. 당시 북한은 11차례에 걸쳐 미사일 111기를 쐈다. 300㎜ 방사포 등 신무기와 더불어 기존에 운용하던 스커드, 노동 등도 발사했다.

주목할 부분은 동해상 특정 지점에 집중적으로 미사일을 쏘는 ‘꽂아넣기’를 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흔한 일이지만 2014년 당시에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원산, 숙천, 깃대령 등 북한 전역에서 발사된 단거리 미사일은 각각 2발 이상씩 사전에 설정한 낙하지점에 떨어졌다. 황해도에서 동해로 날아간 미사일은 기술적 문제로 추락할 위험을 극복하고 북한 내륙을 횡단했다. 그만큼 미사일의 기술적 신뢰성과 정확도가 높았다는 의미다.

이는 중대한 변화였다. 김정일 체제에서 북한의 무력시위는 대포동 미사일과 핵실험이었다. 미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을 다수 발사했다. 신무기가 아니면, 한번 쏠 때마다 2발 이상 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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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이 지상에서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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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타격과 더불어 특정 지역을 미사일로 초토화하는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보, 한반도 유사시 군사적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였다. 단거리 미사일을 단순한 대남 위협용이 아닌, 실질적인 전쟁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2년 1월. 2014년과 유사한 양상이 또다시 시작됐다. 정확도와 신속성이 증대된 고체연료 미사일이 등장하고, 발사 시기와 간격이 빨라지는 등의 디테일이 강화됐을 뿐이다.

지난 25일 발사된 순항미사일은 탄도미사일보다 정확도가 높다. 비행거리가 1800㎞에 달해 한미 연합군의 요격망을 회피하며 비행할 수 있다. 부스터가 지난해 공개됐던 순항미사일보다 늘어나 탑재중량이 증대됐을 가능성이 있다. 극초음속미사일은 빠른 속도로 지상 표적을 타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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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7일 쏜 KN-23 계열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지상 표적에 명중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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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4, 17, 27일에 쏜 미사일은 2019년에 등장했던 KN-23, KN-24다. 각각 다른 곳에서 발사했지만, 함경북도 앞바다의 알섬을 정확히 타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정 표적을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언제든 타격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한 셈이다.

북한이 알섬에 미사일을 쏜 것처럼 KN-23과 KN-24, 대구경방사포를 수원, 성남, 원주, 강릉 등 주요 공군기지에 미사일을 연속적으로 ‘꽂아 넣으면’ 한미 연합 공군은 항공작전 수행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

KN-23은 기존에는 이동식발사차량(TEL)에서만 발사됐으나, 이젠 열차에서도 쏘는 능력을 갖췄다. 한미 연합군은 도로와 야지 외에 철도도 감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하시설 파괴가 가능한 열압력탄을 개발한 정황도 27일 발사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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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7일 발사한 KN-24 미사일이 지상에서 하늘로 상승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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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커드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며 요격회피 능력을 갖춘 KN-23에 발사 수단과 탄종의 다양화가 더해지고, KN-24가 가세하면, 남한과의 전쟁수행능력은 2014년 스커드 위주였던 시절보다 훨씬 강해진다. 정확도, 은밀성, 신속성, 요격회피 등 모든 분야에서 2014년 이전보다 현대화되는 것이다.

북한은 2019년을 전후로 남한을 상대로 하는 미사일 실전 능력 효율화에 힘을 기울였고, 그 성과가 올해 1월의 발사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2014년처럼 대량·수시발사를 단행하면, 이는 남한을 대상으로 하는 상시적인 무력시위로 이어진다. 한반도에 조성된 긴장감을 계속 유지할 수 있고, 대선을 앞둔 남한을 압박하는 효과도 있다. 군사력 강화와 대남 압박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통해 한반도 주도권 경쟁을 지속할 힘도 얻게 된다.

◆한 차원 높은 핵능력 완성, 남한은 속수무책

북한의 이같은 행보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북한이 2014년 단거리 미사일을 대거 쏘아올린 것은 2012년 은하 3호 로켓 발사, 2013년 3차 핵실험 직후다. 미국을 상대로 최소한의 억제력을 확보했다고 판단, 남한을 노린 ‘칼’을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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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북한이 개발한 순항미사일이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발사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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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대한 전쟁수행능력을 검증했던 북한은 2017년부터 미사일 사거리를 동쪽으로 연장했다. 그 결과 화성-15형 ICBM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미국을 겨냥한 전략적 억제력을 확보했다.

이후 2019년부터 고체연료 탄도미사일을 쐈던 북한은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중심으로 한반도 내 전쟁수행능력을 2014년보다 한층 높이는 작업에 몰두고 하고 있다.

북한은 10여년에 걸쳐 액체연료 장거리 미사일(은하 3호) 발사→액체연료 단거리 미사일(스커드) 대량발사→액체연료 ICBM 개발 및 발사→고체연료 단거리 미사일 개발 및 발사를 단행하면서 미사일을 이용한 전략적 억제력과 전쟁수행능력 강화에 모든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전략적 억제력은 액체연료 ICBM, 실질적 전쟁수행능력은 고체연료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의존하는 ‘투 트랙’ 기조가 형성되고 있다. 양측 모두 냉전 시절 러시아 기술에 기반한 액체연료 엔진에만 의존했던 김정일 시절과는 훨씬 개선된 개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액체연료 로켓엔진을 만든 국가는 고체연료 엔진으로 미사일 또는 로켓 동력을 전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남한에서 미국 본토에 이르는 모든 표적을 핵탄두 탑재 고체연료 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다면, 핵능력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수준에 근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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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북한이 개발한 순항미사일이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발사돼 지상 표적에 명중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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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필요한 전략무기 중 하나가 고체연료 ICBM이다.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도 거론된 고체연료 ICBM은 발사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이 적고, 신속한 발사가 가능하다. 미국으로서는 탐지할 시간적 여유가 줄어드는 셈이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벌어진 무력시위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재연될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미국으로 향하는 ICBM을 100% 요격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 불거지는 것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북한의 노림수이기도 하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무력시위를 멈추지 않은 채 지금까지 먼 길을 달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남는 의문은 하나다. 북한의 행보를 남한이 막을 수 있을까. 북한이 미사일을 잇따라 발사해도 “유감”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정부, 북한 무력시위를 국내 정치적으로 해석하지만 새로운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권이 북한 핵능력 강화를 저지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극적인 반전을 꾀할 모멘텀도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기회는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대선 이후 차기 정부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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