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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입만 열면 ‘거짓말’ 존슨 英총리의 몰락... 국민 62% “사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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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57) 영국 총리가 재임 2년 반 만에 최대 위기에 몰렸다. 25일 여론조사(YouGov)에서 영국인의 62%는 그가 총리직을 사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지기반인 보수당 유권자 중에서 ‘사임’이 11일 조사 때보다 5% 포인트가 늘어 38%에 달했다. 야당은 물론, 당내에서도 “총리직을 내 놓으라”는 목소리가 높다. 보수당 의원 54명 이상이 동의하면 ‘불신임투표’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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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존슨의 총리직 수행 지지율 조사에서 '못한다(빨간색)'는 73%까지 치솟았다. '잘한다(푸른색)'는 22%로 떨어졌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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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총선에서 과반(326석)을 훌쩍 넘기는 보수당의 압승을 이끌어냈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코로나 방역 실패(사망 15만5000명)와 브렉시트(EU 탈퇴) 이후 혼란으로 존슨의 지지율은 계속 낮았지만, 지금의 위기는 ‘봉쇄’ 정책을 어기고 총리실에서 벌어진 10여 차례의 파티와 이에 대한 그의 고질적인 ‘거짓말’이 빚어낸 참사다.

◇증거가 나오기 전엔 무조건 부인(否認), 이후엔 교묘한 말바꾸기

작년 12월 초 이른바 ‘파티게이트(Partygate)’가 터졌다. 1년 전인 2020년 12월10일 총리 관저에서 ‘사회적 봉쇄’에도 직원들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는 것이었다. 존슨 총리의 대변인의 대답은 완전 부정이었다. “크리스마스 파티는 없었고, 방역 규칙은 늘 철저히 지켰다.”

그러나 곧 파티 동영상까지 공개됐다. 그러자 존슨은 하원에서 “그런 파티가 없었다고 거듭 확인 받았지만, 사실 관계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고 말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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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하원의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는 보리스 존슨 총리/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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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사회적 봉쇄’ 기간 중에 총리관저와 다른 정부 부처에서 직원들이 연 파티는 1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2020년 5월20일 총리관저 가든 파티에는 존슨도 참석해 맥주를 마셨다. 그의 최측근에서 밀려난 전(前) 참모는 언론에 “이날 파티는 자기가 마실 술을 가져오는 파티였고, 총리에게 이를 허용하면 안 된다고 경고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존슨 총리는 하원에선 “그게 사회적 모임인지 몰랐다”고 둘러댔다.

◇6개 야당 대표 공동서한 “총리의 부정직 투표하자”

그는 이전에도 하원의 대정부질문(PMQ) 답변에서 적지 않은 거짓말을 했다. 주로 숫자나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것이었다. 그의 전(前)선거참모가 존슨의 경제실적‧온실가스 배출 감소 등 허위 답변만 꼬집어 만든 유튜브 영상은 1100만 명이 봤다.

작년 4월엔 6개 야당 대표들이 하원의장에게 존슨이 “단지 부정확하거나 숫자를 잘못 인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에 대해 일관되게 정직하지 못하고, 잘못된 정보를 속히 정정하지 않는다. 의회 모욕에 해당한다“며 이를 토론해서 투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공동 서한을 제출했다. 보수당이 다수당이니, 의장이 직권으로 결정해달라는 것이었다.

영국 하원에선 상대 의원에게 ‘거짓말쟁이(liar)’ ‘불한당(blackguard)’ ‘훌리건(hooligan)’과 같은 노골적 표현을 쓸 수 없다. 그래서 공동서한은 “일관되게 정직하지 못하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과거 윈스턴 처칠은 “용어상의 부정확성(terminological inexactitude)”이란 말로 상대의 ‘거짓말’을 비난했다.

◇거짓말로 얼룩진 이력

영국 언론은 존슨의 총리 취임 이전부터 그의 거짓말 인생을 계속 추적해왔다. ‘기록상’ 최초의 거짓말은 1988년 더타임스 기자 시절이었다. 영국 왕 에드워드 2세(1284~1327)의 왕궁이 발견됐다고 보도하면서, 자신의 대부(代父)이자 역사학자를 허위로 인용해 사실 관계도 엉터리인 기사를 썼다. 이 일로 그는 타임스에서 해고됐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브뤼셀 특파원 시절엔 “EU 규격은 콘돔‧관(棺)도 모두 한 사이즈다” “바나나의 휜 정도를 규격화하고 감시하는 EU 요원이 있다”는 엉터리 반(反)EU 칼럼을 썼다.

이후 야당 대변인 시절인 40세 때에는 미혼의 유명 여기자와 불륜에 빠졌다. 당시 존슨은 네 아이의 아빠였고, 여기자의 엄마가 전 매체에 폭로하면서 당의 입장도 곤경에 빠졌다. 그때도 보수당 대표의 추궁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완강히 부인했다가, 대변인 직에서 해임됐다.

◇ 선거에 도움만 된다면…

영국의 브렉시트를 주도할 때에는, 존슨은 “EU만 나오면 영국은 1주일에 3억5000만 파운드(약 4710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게재했다. 사실무근이었다. 2012년 런던시장 때에는 “노숙인을 모두 없애겠다”고 했지만, 노숙인 수는 재임 중 배(倍)가 됐다.

“최근에, 아니 오늘 들었다” 식으로 한 문장에서 처음 거짓말을 다시 뒤집는 자가당착(自家撞着) 현상도 보인다. 리버럴 신문인 가디언은 “코로나 열병을 앓은 뒤 단기 기억력이 파괴된 모양”이라며 “그렇다면 딱하지만, 나라를 이끌어선 안 된다”고 비꼬았다.

◇“제발 물러나시오”라는 동료 의원 요구에

사실 영국인 대부분은 존슨이 기회주의자이고, 부정직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영국의 주권을 앞세우며 브렉시트를 주도한 그의 포퓰리즘 정치에 매료됐다. 말을 더듬고 연설문 종이 순서가 엉켜 한참 헤매는 모습도 일부는 존슨이 계획적으로 연출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약발은 떨어졌다.

영국 언론은 그가 보수당 내 반발을 극복해 총리 직을 지켜내더라도, 사실상 그의 정치적 운명은 끝난 것으로 본다.



지난 19일 하원에서 보수당 의원으로 브렉시트 장관을 지냈던 데이비드 데이비스는 존슨에게 “당신도 잘 아는 말이겠지만, ‘하는 것에 비해 너무 오래 (총리 직에) 앉아 있었소. 그만두시오.제발 그만두시오(In the name of God, go)’”라고 말했다.

처칠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존슨이 쓴 처칠 전기에서 인용한 이 표현은 처칠이 나치 독일에 대해 유화정책으로 일관했던 네임 체임벌린 당시 총리에게 한 말이었다. 이 말에 대한 존슨 총리의 대답은 “나는 그런 인용문을 알지 못한다”였다. 또 다른 거짓말이었을까, 아니면 사실은 처칠 전기를 다른 사람이 대신 썼다는 얘기일까.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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