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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취재썰] "수소차 충전하러 원정 간다고?" 따라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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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수소차 충전하러 원정 간다고?" 따라가봤습니다.

〈자동차 타고 다니는 분들에게 드리는 두 가지 질문〉

Q. 주유하러 가기 전 '오늘은 기름 넣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걱정하는 분 혹시 계신가요?

Q. 장거리 운전을 하기 전에 주유소가 어디에 있는지 미리 찾아보고, 동선을 주유소 위치에 맞춰 짜시나요?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이런 상황, 많은 '수소차' 운전자들에겐 익숙한 일이라고 합니다. 이번 밀착카메라는 충전할 때마다 불편을 겪는다는 수소차 운전자들의 일상을 따라가 봤습니다.

(밀착카메라 기사: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44530&pDate=20220126)

■ "충전하러 왔다가 드라마 한편 다 봤다니까요."





취재진은 먼저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회 수소충전소를 찾았습니다. 평일 낮 2시 반, 한가할 거라 생각했는데 수소차 7대가 줄을 서 있었습니다. 취재하는 동안에도 차는 계속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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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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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1시간 정도는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2시 반에 왔거든요. 30분 정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의정부에 사는데, 직장이 국회 근처라 이곳에 와요. 그런데 의정부에 충전소가 아예 없어서 직장을 옮기면 차를 팔아야 할 수도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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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서울에 수소차가 가장 많은데(2445대, 작년 말 기준), 서울시 내 충전소는 5곳뿐입니다.

기사를 읽다 보니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 있을 겁니다. '아니, 집 근처에 충전소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을 안 하고 차를 산 건가?' 저도 이 부분이 궁금했는데요. 운전자들에게 물어보니 “당시 충전소가 많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정부에서 더 세울 거라고 하니 믿고 샀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는 답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정부는 2022년까지 충전소 310기를 세우겠단 계획을 2019년 1월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 경기도 일산 ↔ 서울 여의도 국회 '충전여행' 떠나요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강진성 씨도 수소차 운전자입니다. 강 씨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수소를 충전하는데 그때마다 서울 국회충전소로 갑니다. 강 씨가 사는 경기 북부 지역에 충전소가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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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31개 시군 중 수소충전소가 한 곳이라도 있는 곳은 9개 지역뿐이다. 〈사진=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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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에서) 국회의사당까지 왕복이면 50km가 넘게 가서 충전을 하고 와야 하는 거예요. 저희보다 더 먼 의정부, 파주 분들 같은 경우엔 더 거리가 멀어지겠죠. 그래서 저희끼린 '수소 충전 여행'을 다닌다고 해요.”

강진성 씨를 따라 '충전 여행'을 함께 떠나봤습니다. 꽃집에서 퇴근하고 저녁 5시 45분에 출발했는데, 저녁 6시 20분에 국회충전소에 도착했습니다. 충전소엔 왔지만 바로 충전을 할 순 없었습니다. 먼저 와 있던 수소 버스와 다른 차 한 대가 충전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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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행운인 거죠. 많을 때는 제 앞에 8대, 10대까지 봤으니까. 제일 많을 때가 명절 전이에요. 완충을 하고 지방을 가는 분들이 많다 보니까, 15대까지 봤어요. 그냥 마음을 비우는 거죠. 그리고 한 번은 저희 애들이 궁금하다고 충전소까지 따라왔어요. 그런데 그 다음부터 같이 안 오더라고요. 너무 지치니까.”

수소차 한 대가 충전하는 데 15~20분 정도 걸립니다. 수소를 넣는 시간 자체는 얼마 걸리지 않지만, 앞차가 충전을 많이 하면 '압력'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날, 꽃집에서 출발해 충전을 마칠 때까지는 1시간 6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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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승차감도 나쁘지 않고, 환경오염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제일 큰 장점이었죠. 후회라기 보단, 정말 인내심을 가진 사람들이 타야 하는 차예요.”



강 씨가 사는 경기도 고양시에는 곧 2곳의 충전소가 문을 열 예정입니다. 이 중 한 곳도 2019년부터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아직도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강 씨는 지자체가 충전소를 세우겠단 약속을 해놓고도 인근 주민 민원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않는 점이 가장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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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계속 충전소 확충한다고 하고, 지자체도 '언제쯤 할 겁니다'라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안 열려 있잖아요. 그게 가장 큰 문제인 거예요.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고서 차량을 공급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데 지자체들은 거꾸로 간다는 거죠.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수소의 안전성에 대해 금방 알 수 있거든요. 지자체가 민원에 겁을 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주면 좋겠습니다.”

■ '수강 신청'하듯 예약하고 충전하는 사람들

서울 상암 수소충전소는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하루에 39대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충전소와 달리 수소를 직접 생산해서 양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홈페이지와 앱으로 오늘부터 7일 안으로만 예약을 할 수 있는데, 이번 달까지는 자리가 모두 찼습니다. 2월 2일 수요일에 딱 한 자리 남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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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을 거쳐 상암 수소충전소를 찾아온 운전자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었잖아요. 우리 딸한테 부탁해서 예약하지, 우린 순발력이 부족해서 예약하는 것도 힘들어요. 딸이 컴퓨터로 그 시간에 들어가야 해요.”

고용호 씨는 예약이 너무 빨리 마감돼 충전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서울 남가좌동 집에서 상암 충전소까지 거리가 10km밖에 안 되는데 예약에 실패해 더 멀리 떨어진 서울 여의도 국회충전소, 서울 강동 충전소로 갈 때도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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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 충전소처럼 예약제로 운영되는 서울 양재 수소충전소는 하루 70대 충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먼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찾아가는 데 시간을 더 쓰는 겁니다. 게다가 충전소에 충전기가 한 대씩밖에 없다 보니 충전기 하나가 고장 나면 충전소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 “문 닫기 전에 가자” 신데렐라가 되는 사람들

서울 충전소의 상황을 살핀 다음 날, 취재진은 광주광역시에 갔습니다. 광주에 있는 충전소 중 일반 차량이 이용할 수 있는 건 4곳인데, 한 곳은 저녁 6시, 다른 한 곳은 저녁 7시에 문을 닫습니다. 나머지 두 곳만 저녁 8시까지 엽니다.

저녁 6시에 닫는 동곡 충전소로 향했습니다. 영업 종료 15분 전, 수소차 한 대가 들어왔습니다. 전남 나주시에서 찾아온 정지혜 씨는 충전하려고 일찍 퇴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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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새로 생긴 월출 수소충전소는 저녁 8시까지 운영합니다. 퇴근을 늦게 하는 직장인들에겐 8시도 촉박할 텐데, 근처에 사는 운전자들은 이곳이라도 생겨 다행이라 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고 샀는데 저도 너무 불편하다 보니까 지인들에게 추천을 못 하겠어요. 차 자체는 좋다고 말하는데, 사라고 하기는... 처음엔 친환경적이라 선택했는데 막상 타보니 미흡한 점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광주는 수소차 수에 비해 충전소가 많은 것 같은데, 다른 지역 여행을 갈 땐 수소 충전소 먼저 찾아보게 돼요.”

월출 수소충전소를 담당하는 양우주 광주그린카진흥원 수소사업팀장에 따르면, 한 곳은 탄력적 운영을 위해 아침 7시~저녁 7시로 운영 시간을 앞당겼다고 합니다. 다른 한 곳은 근로자 채용 문제로 6시까지만 열고 있지만 되는 대로 다시 8시까지 열 거라고 하고요. 저녁 시간엔 충전하러 오는 차가 많지 않기 때문에 52시간 근무제, 인건비 등의 문제로 모든 충전소를 늦게까지 운영하는 게 쉽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 2025년까지 목표? 충전소 '450기' 세우기

수소차 보급과 충전소 구축을 담당하는 환경부도 운전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환경부는 충전소 설치가 더뎌지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작년부터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충전소) 부지를 선정할 때 제약 조건들이 있어요. 학교 같은 보호 시설과 일정 거리가 필요하고. 문제없이 설치할 수 있는 데가 있다고 해도 지자체에서 주민 반대를 우려해 허가를 보류하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환경부에선) 지자체 여러 부서가 처리하던 인허가 절차를 일원화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지자체에서 설치를 보류하는 부분은 최소화하는 쪽으로 개선을 해봤습니다.”

작년 11월, 환경부는 '수소충전소 전략적 배치계획'을 세웠습니다. 2025년까지 충전소 450기, 2030년 660기, 2040년엔 1200기를 구축하겠다는 겁니다. 수소차는 최근 2년 동안 보급량 세계 1위를 유지해왔다며, 2040년까지 290만대를 보급하겠다고 했습니다.

2025년까지는 3년이 남았습니다. 현재 운영 중인 수소 충전소는 90곳인데요. 목표를 달성하려면 300기 넘게 세워야 합니다. 환경부 담당자도 “쉬운 수치는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환경을 생각한다면 '수소 경제 활성화'는 피할 수 없는 미래일 겁니다. 환경을 위해 수소차를 선택한 운전자들이 더는 '충전 여행'을 다닐 일이 없도록, 이 숫자가 약속으로만 남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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