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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아가리 찢겠다" 비판에도…신지예, 윤석열 도왔던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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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리를 찢어 놓겠다”

신지예(31) 전 국민의힘 새시대준비위원회(새시대위) 수석부위원장은 선대위 합류 첫날, 한 진보 진영 인사에게 이런 비난을 들었다고 했다. 졸지에 진보의 ‘변절자’ 신세가 됐지만 그렇다고 보수 진영에서 환영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신 전 부위원장의 합류에 대해 “극단적인 페미니스트이자 남성 차별 선두주자를 왜 받아들이느냐”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 밖에선 ‘이대남’들이 그의 합류를 반대했다. 때마침 윤석열 후보의 20·30세대 지지율도 추락했다. 신 전 부위원장은 결국 선대위 합류 2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득 될 게 없던 험한 길을 왜 갔던 걸까. 사퇴 후 처음 그 진짜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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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0일 여의도 새시대 준비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김한길 위원장이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 네트워크 대표에게 환영의 꽃다발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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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국민의힘에 왜 갔나.

A : 개인적으로 이번 대선은 안희정·오거돈·박원순 사건으로 이어진 ‘성폭력 심판’의 선거였으면 한다. 그래서 진영이 달라도 기꺼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며 선대위에 합류했다. 내가 참여한 새시대위 목표는 진보·중도를 아울러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해내는 것이었다. 윤 후보는 대통령이 돼도 여소야대 정국에서 2년간은 ‘식물’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지 않나. 여럿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해 헌신했다.



20·30 여성표 결집? “합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권교체’ 명분이라도 보수 정당 합류는 낯설었다. 승부수를 던진 건가.

A : 승부수를 띄우고 베팅한 게 맞다. 미미한 정치 커리어지만, 다 걸고 갔다. ‘주류 정치 욕심 낸 거냐’는 비판도 있는데,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라고 본다. 모든 정치인은 권력의지가 있지 않나. 그렇다고 내가 국민의힘에 뿌리 내릴 사람이 아니란 건 모두가 안다. 그래서 입당하지 않고 헌신하기로 했다. 이런 선택은 결국 박원순 사건 때문이다. ‘내로남불’ 정치에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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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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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류 당시 윤 후보와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A : 영입 전 첫 만남에서 윤 후보는 ‘국민들이 왜 나를 대선 후보로 밀어주는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만큼 국민은 양당정치에 신물이 났던 거고. 나는 윤 후보에게 “‘초심을 잃지 말아달라’는 약속 하나만 받겠다”고 했다.

동료 여성 운동가들의 비판이 많았을 텐데.

A : 비판 많았다. 새시대위 합류 첫날 진보진영 한 인사에게서 “아가리를 찢어놓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모두를 설득하지 못했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다.

Q : 결국 2주 만에 물러났는데.

A : 페미니즘을 강요하고 가르치러 국민의힘에 간 게 아니다. 비전이 달라도 정권 교체를 위해 다른 진영끼리 손잡을 수 있다고 봤다. 근데 ‘내부총질’을 당할 줄은 몰랐다.

Q : 어떤 공격 받았나.

A : “극단적인 페미니스트와 어떻게 함께 하느냐” “남성 차별의 선두주자가 신지예인데, 어떻게 여길 들어오느냐”는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들었다.

애초에 ‘20·30 여성표’ 결집 등 외연 확장 위해 영입된 것 아닌가.

A : 새시대위에서 내게 주어진 과제는 20·30 여성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일이 아니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다른 이유는 뭐였나.

A :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 ‘김잔디(가명)’님 등 민주당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과 힘을 모아 정치권 내 성폭력 문제에 목소리를 낼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그 계획이 요원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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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전 새시대위 부위원장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당내 갈등이 2030 지지율 하락에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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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말한 ‘박원순 피해자의 진정한 일상 복귀’



왜 추진하지 못했나.

A : 여러 이유가 섞였다. 보통 회사에선 목표를 위해 여러 부서가 협력하지 않나. 그런 게 잘 안 됐다. 밖에서 유추해보건대, 이준석 당대표는 내가 맡은 과업이 본인 정치활동에 효과적이지 않을 거라 판단한 듯싶다.

Q : 이와 관련해서 윤 후보 생각은 어땠나.

A : 윤 후보는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게 일상으로의 복귀 아니겠나”라고 했다. 그때 ‘이 분이 생각보다 젠더 감수성이 높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윤 후보 반응도 그를 지지하게 된 계기가 됐다. 사실 김잔디님은 여전히 2차 가해자들에게 둘러싸여 일한다. 그런 분이 목소리를 내고 ‘피해자는 강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한국 사회에 큰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당을 가릴 이유도 없었다. 페미니즘이 진보의 전유물도 아니지 않나. 오히려 지금 한국에선 가짜 진보가 ‘진보’의 이름으로 페미니즘을 사유화하고 여성들이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하지 못하게 막는 국면이다. 이미 ‘87년 체제’가 만든 보수와 진보는 파산했고 가치가 흐릿해졌다. 여성 유권자들이 이런 가짜 ‘진보’에 갇히면 그 힘이 줄어든다. 여성들도 이제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일자리·부동산·지역 문제 등 자신들에게 중요한 정치적 가치가 무엇인지 섬세하게 정책을 고민하며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본다.




“20·30 지지율 하락이 내 탓? 그 정도 영향력이면 대선 출마”



당시 ‘신지예 때문에 20·30세대 지지율이 내려갔다’는 비판도 있었다.

A : 이준석 대표 당내 갈등이나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근데 나에게 타깃팅 하는 이유는 뭐였을까. 내가 20·30세대 지지율을 한 번에 움직일 만큼 큰 영향력이 있었다면 (정치) 거물 아닌가. 그 정도면 대선에 출마해야지(웃음).

당시 이준석 대표는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A : 본인이 (가출 안 하고) 가만히 있어야 됐는데…(웃음) 대선 과정에서 이 대표 행보에 실망했다. ‘분열’의 메시지를 낸다. 20대 여성(문제)을 ‘복어’라 말한다. 그건 정치인도, 정치꾼도 아니고 ‘악인’이다. 이 대표가 훌륭한 정치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면 이런 메시지를 내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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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 7일 자신의 SNS를 통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7글자 공약을 공개했다. 윤석열 후보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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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전 부위원장은 전방위적인 당내·외 사퇴 압박에 지난 3일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윤석열 후보는 ‘여가부 폐지’를 앞세워 20·30대 지지율을 끌어 올렸다. 신 전 부위원장 사퇴가 국민의힘에겐 전화위복이 된 걸까. 결과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게 아니냐’란 물음에 그는 “철학과 가치를 버리고 간 게 아니라 입지가 좁아질 건 없다”고 했다. 또 그는 “시간을 되돌려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 있다면 여가부 폐지 가능, 여자도 군대 가야”



Q : 최근 윤 후보가 ‘여가부 폐지’ 공약을 냈다.

A :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지만, 여가부는 문제가 많다. 만약 폐지한다면 여가부가 맡아온 ‘성 평등’이란 국가적 과제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설계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각 부처의 수행 과제로 나누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만 쓸 게 아니라 폐지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 꼼꼼하게 설계한 비전을 내놔야 한다.

Q : 대안이 있다면 여가부 폐지해도 된다는 말인가.

A : 여가부가 성폭력 피해자 지원이나 여성의 삶을 보호하는 역할이 부족했던 건 많은 여성도 공감할 것이다. 박원순 성폭력 사건 때 여가부가 보여준 행보를 보자. 그게 여가부인가.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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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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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여가부 폐지’ 논란 보면 20대 남녀가 원하는 게 조금은 다른데.

A : 20대 남녀가 대립하며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들의 불만과 불안은 서로 다른 영역에 있다. 예를 들어 남성들은 군대, 무고죄 등에 불만과 불안이 있다. 개인적으로 군 복무를 통한 국가에 대한 헌신은 보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하고,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고죄의 경우엔 이미 형법에 무고죄가 있기 때문에 철회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남성들의 무고죄 불안은 수사 가이드라인 재구축이나 양형 기준 보완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반면 20대 여성의 불안은 성폭력 피해,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때문이다. 남성들의 불안과 영역이 다르다. 실상 부딪히지 않는데, 정치가 이걸 충돌시킨다. ‘여가부 폐지’가 남성들에게 실질적 큰 도움이 되는지, 단지 여가부가 싫어서 폐지를 찬성하는 건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성혐오’ 피해자 김건희, ‘안희정 옹호’ 발언 사과해야”



민주당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성폭력 문제에 ‘질려’ 윤 후보를 도왔던 신 전 부위원장은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 ‘안희정 옹호’ 녹취록 파문과 관련해 “윤 후보 사과는 부족했다”며 “김건희 씨의 직접 사과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사법정의·법치를 내세운 후보의 사과는 당연한 일”이라며 “쥴리 논란 등 여성 폭력의 당사자이기도 한 김건희씨가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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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에서 촉발된 '백래시' 등의 영향으로 이번 대선에서 '페미니즘'과 '여성'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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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녹취록 파문 이후 윤 후보 20·30 여성 지지율은 올랐다.

A : 20·30 여성 표가 갈 데가 없어서다. 민주당이 여러 차례 성폭력을 저질렀는데, 윤 후보가 김지은 씨 옹호 발언 문제 제기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그 지지율이 민주당으로 갈까. 오히려 김건희 씨 발언은 ‘민주당엔 안희정이 있었지’ ‘2차 가해자들이 민주당에 있었지’라는 걸 상기시킨다. 여성 유권자들도 직감적으로 안다. 김건희 씨 공격이 ‘여성폭력’의 연장선이라는 걸.

Q : ‘형수 욕설’ vs ‘안희정 옹호’, 타격이 더 큰 논란은.

A : ‘안희정 옹호’다. 이재명 후보 욕설은 기존 이미지가 크게 틀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김건희씨 논란은 윤석열 후보가 내걸었던 공정·법치주의와 거리가 멀다. 아직 2차 가해와 조롱을 당하는 피해자가 있기에 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싶다.



페미니즘과 ‘여성’이 사라진 2022 대선



Q : 이번 대선 페미니즘과 ‘여성’이 잘 안 보인다.

A : 박원순 성폭력 사건과 여성단체의 과오로 ‘백래시(Backlash)’가 크게 번졌다. 여기에 타격 입은 많은 여성이 정치적 회의감을 느끼고 움츠러들어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태다. 여성들은 요즘 자신을 의심하고 힘이 없다고 느낀다. 대선 시즌과 맞물려 반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본다. 20·30 여성들이 현명하게 움직여야 한다. 자신들의 정치적 메시지를 가장 잘 반영해줄 사람에게 동일한 요구를 꾸준히 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정치인들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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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최근 이준석 대표 “20대 여성 구호만 있고, 정책화할 구체적 이야기가 없다”고 했다.

A : 그건 본인이 정책 공부를 안 한 게 아닐까.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이라는 게 항상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게 아니지 않나. ‘내가 가난하다’, ‘먹고살기 힘들다’ 같은 이야기를 정책으로 정교하게 다듬는 게 정책가의 일이다. 여성들 이야기가 굉장히 명확하지 않나. 디지털 성폭력·육아·양육·임신중지·여성 1인 가구·노동 등 여성들 이야기는 명확하다. 근데 그걸 그저 ‘불만’으로 치부하는 것 자체가 여성 혐오적 관점이다.

Q : 대선 이후 어떤 정치를 생각하나.

A : 이번 대선은 한 사람의 당선이 아닌 시스템 개혁의 분기점이 됐으면 한다.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대통령 권한 축소 등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론 이런 고민을 나눠볼 포럼 등에 참여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는 20·30여성이, 남성들과 함께 잘 살 수 있는 정치를 펼치고 싶다. 그걸 위해 뛰겠다는 약속 할 수 있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이세영·조은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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