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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불모지' 한국 루지 대표팀, 베이징서 기적 레이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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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에 태극기 문양의 네일아트를 한 한국 루지 대표팀 아릴린 프리쉐. 사진=대한루지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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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루지 대표팀 임남규. 사진=AFPBB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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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한국은 루지의 불모지다. 대한루지연맹에 등록된 정식선수는 30여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실제로 썰매를 타고 정기적으로 훈련하는 선수는 20여명이 전부다. 전국을 통틀어 학교팀은 강원도 상지대관령고등학교가 유일하다. 경기장도 대한민국에 강원도 평창에 있는 올림픽슬라이딩센터뿐이다. 이마저도 일반인은 출입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 루지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기적을 꿈꾸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전종목 올림픽 출전을 자력으로 획득했다. 4년전 평창 대회에서 여자 1인승을 제외하고 개최국 출전권을 받아 출전한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대한루지연맹 이경영 사무처장은 “올림픽 시즌을 대비해 작년 9월부터 러시아에 전지훈련캠프를 차리고 빠른 시즌 준비에 들어갔으며 이어 라트비아로 이동해 10월 말까지 새로운 썰매 테스트 및 주행 감각을 익히기 위해 많은 예산과 시간을 투자했다”면서 “그 결과 지난 11월 중국에서 열린 제1차 월드컵 겸 올림픽 테스트이벤트에서 세계 강호들을 제치고 팀릴레이 6위라는 성적을 시작으로 올림픽 3회 연속 전 종목 출전권을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선수는 ‘푸른 눈의 태극전사’ 아일린 프리쉐(30·경기주택도시공사)다. 루지 강국 독일 출신의 프리쉐는 한때 은퇴했다가 루지의 매력을 잊지 못하고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의 귀화 제의를 받아들였다. 평창 대회에선 한국 선수 역대 최고성적인 8위에 올랐다.

프리쉐는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9년 1월 2018~19시즌 독일에서 열린 월드컵 8차 대회에서 트랙 벽에 부딪혀 썰매가 뒤집히는 큰 사고를 당했다. 양쪽 손가락뼈와 허리뼈, 꼬리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수술대에 오른 뒤 재활에만 거의 3년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 시간 동안 육체적으로는 온몸을 찌르는 통증과 싸웠다. 정신적으로는 심각한 좌절감을 겪었다.

그렇지만 프리쉐는 포기하지 않았다. 2020~21시즌 중 트랙으로 복귀한데 이어 2021~22시즌 월드컵 전 대회를 소화했다. 올 시즌 월드컵에서 33위에 올라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현실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기는 쉽지 않다. 꼬리뼈는 많이 호전됐지만 아직도 부상 여파로 양 손에는 후유증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경기가 열리는 옌칭 슬라이딩센터 트랙을 후회없이 달리고 싶은 마음이다.

프리쉐는 “루지와 같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종목에서 썰매에 정상적인 포지션으로 앉을 수 없다는 것은 상상보다 더 어려운 과정이었다”면서 “하지만 팀의 의무트레이너, 재활센터의 치료사, 의사까지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서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평창 대회 당시 한국으로 귀화했던 다른 외국인 선수들은 대부분 모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프리쉐만큼은 계속 남아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2연속 올림픽을 준비한다. 손톱에 태극기 문양의 네일아트를 꾸밀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넘쳐난다. 간단한 인터뷰가 가능할 정도로 한국말 실력도 많이 늘었다.

프리쉐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난 귀화 전부터 한국에 남기로 이미 결심한 상태였다”며 “올림픽 참가라는 기회를 준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결정인 한국 잔류에 후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남자 1인승에 참가하는 임남규33·경기도루지연맹)의 사연도 눈물겹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기적의 드라마다.

임남규는 평창 대회에서 남자 1인승 30위, 팀릴레이(혼성단체전) 9위를 기록한 뒤 이후 은퇴를 선언하고 2019년 연맹 지도자로 채용됐다. 하지만 임남규를 포함한 남자 1인승 국가대표 3명이 모두 동시에 은퇴하면서 선수가 부족해지자 2020년 1월 다시 컴백했다.

임남규는 지난해 말 독일에서 열린 6차 월드컵 공식 훈련을 소화하던 중 썰매가 뒤집히는 큰 부상을 입었다. 당시 정강이뼈가 보일 만큼 살이 깊게 찢어졌다. 임남규는 “현지 병원 응급실에 이틀 동안 누워 있으면서 ‘이제 정말 끝인 건가’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돌이켰다.

임남규는 부상 치료를 위해 올해 1월 2일 급히 귀국했다. 하지만 올림픽 출전의 꿈을 그냥 날려버릴 수 없었다. 귀국 3일 만에 다시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목발을 짚어야 할 정도로 제대로 걷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현지에 도착했을 때 부상 부위가 눈에 띄게 호전돼 있었다. 상처 부위를 붕대로 단단하게 감싸야 했지만 적어도 썰매를 탈 때 통증은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부상을 안고 남은 월드컵 일정을 소화했고 올림픽 출전권을 스스로의 힘으로 따냈다. 임남규는 “5위 안에 드는 게 목표지만 그보다 더 높은 순위, 입상권에 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한 뒤 환하게 웃었다.

남녀 싱글의 프리쉐, 임남규 외에도 한국 루지는 남자 더블에서 박진용(29·경기도청)과 조정명(29·강원도청)이 3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2인승 선수들로 한국 루지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

조정명은 “평창에서 스타트가 거의 꼴찌였는데 최종 9위를 했다”면서 “4년 동안 스타트를 보완했고 정상권과 거리가 멀지만, 격차를 줄였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박진용은 “더 세세하게 준비하고, 부족한 부분을 많이 보완했다”면서 “메달권 성적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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