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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공복 김선생] 떡국떡은 왜 삐딱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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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처럼 동그랗던 떡국떡

길쭉한 타원형으로 바뀐 이유

조선일보

설 대표 절식 떡국./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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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떡국 한 그릇 더 주세요. 그러면 빨리 어른 되는 거잖아요?” 지난해 설날, 아홉 살과 일곱 살이 되는 아들들이 그릇을 들고 아내에게 달려가더군요. 나이 더 먹고 싶어서 떡국 더 먹겠다는 아이들을 보니 부럽더군요. 동시에 떡국이 우리 한민족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진 음식이자 설을 대표하는 절식(節食)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경북 지역에서 먹는 ‘태양떡국’을 아시나요? 떡국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대개는 소고기냐, 굴이냐, 멸치냐, 닭이냐 등 국물 내는 재료가 다르죠. 그런데 태양떡국은 떡국에 들어가는 떡국떡 모양이 다릅니다. 요즘 떡국떡은 대부분 길쭉한 타원형입니다만, 태양떡국은 동그란 원형입니다. 태양처럼 동그랗다고 해서 태양떡국이지요.

그런데 옛날에는 어떤 지역 어떤 집안이건 떡국떡이 동그란 원형이었지, 타원형으로 썰지 않았다고 합니다.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가래떡을 동그랗게 썰어서 떡국을 끓여 겨울밤 야참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며 “옛날에 는 떡국떡이 원형이었지 타원형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동그란 떡국떡이 낯설지만, 옛날에는 모든 지역 떡국이 경상도 태양떡국처럼 원형 떡국떡을 사용해 끓였다는 소리죠.

◇언제·왜 삐딱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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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에 들어가는 떡국 떡을 옛날에는 동그랗게 원형으로 썰었으나, 요즘엔 길쭉한 타원형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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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떡을 언제부터 어슷썰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꽤 오래전부터 그랬던 듯합니다. 서울 한 떡집 주인은 “열일곱 살 때부터 떡집에서 일했는데, 그때도 가래떡을 지금처럼 타원형으로 썰었다”더군요. 이 분의 나이가 70이 다 됐으니, 대략 50년 전부터는 어슷썰기가 보편화됐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떡국떡을 직각으로 동그랗게 자르지 않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추론은 가능합니다. 한복려 원장은 “직각보다는 사선으로 칼질하기가 더 쉬운 데다, 어슷썰기로 하면 떡국떡이 훨씬 커지기 때문에 푸짐하고 풍성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동일한 가래떡을 직각과 대각선으로 썰어봤습니다. 직각으로 동그랗게 썰 경우 떡국떡 지름이 2.5cm인 반면, 사선으로 타원형으로 썰면 긴 쪽의 지름이 5~6cm로 두 배 이상 커지더군요.

일부에서는 “떡국떡을 칼이 아닌 기계로 썰면서 어슷썰기가 확산됐을 수도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기계연구원은 “기계화 때문에 떡국떡 모양이 바뀌지는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기계연구원 관계자는 “가래떡을 직각으로 썰 때보다 사선으로 썰 경우 투입되는 총에너지가 더 많다”면서 “에너지 효율성에서는 직각 썰기가 낫다”고 설명했습니다.

◇원형 vs. 타원형 뭐가 낫나

떡국떡을 과거처럼 동그랗게 썰어야 할까요, 아니면 요즘처럼 타원형으로 써는 게 더 나을까요? 한 원장은 ‘떡국떡 타원형파’입니다. “완전한 원형은 너무 작고, 그렇다고 너무 긴 타원형일 경우 숟가락에서 떨어지기 십상이죠. 살짝 타원형이 이상적입니다.”

반면 음식연구가 박종숙씨는 ‘원형 떡국떡을 되살려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얗고 동그란 떡국떡은 태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순수함·완전함을 상징합니다.” 문제는 동그란 떡국떡은 파는 곳을 찾기 힘들단 점입니다. 집에서 직접 써는 수밖에 없습니다. 박 원장은 “동그란 떡국떡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일 년 한 번 먹는 설 떡국떡은 집에서 써는 수고를 들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가래떡을 다용도실이나 난방하지 않는 뒷방 등 서늘한 곳에서 하루에서 이틀 정도 두면 잘 썰려요. 가래떡 표면만 마르는 게 아니라, 속까지 단단하게 굳히는 게 포인트입니다.”

동그란 떡국떡을 먹어보고 싶긴 합니다만, 김장 담그지 않는 요즈음 떡국떡을 직접 썰는 수고를 들여가며 떡국을 끓여 먹을 집이 얼마나 될 지 의문입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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