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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부계’로 ‘멤놀’하다 성폭력…“메타버스에도 경찰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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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우 의원 등 14명 ‘메타버스 성착취 대응 토론회’

디지털공간 성폭력 급증세…성범죄자 계정차단·처벌 검토를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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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ㄱ아무개양은 메타버스에서 활동하다 한 교복 입은 남성 캐릭터 ㄴ에게 ‘왕게임’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더니 ㄴ은 ‘사진을 보내달라’며 점점 더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ㄱ양은 ㄴ계정을 차단했지만, ㄴ은 ‘부계’(부계정)를 만들어 ㄱ을 따라다녔다. 성적수치심을 유발하는 언행을 지속했고, 급기야 메타버스 상 ㄱ양의 집 담벼락에 ‘XX년’이라고 낙서까지 했다. ㄴ계정은 ㄱ양에게 거짓 소문을 퍼트리겠다고 협박하면서 이를 막으려면 아바타를 탈의한 채 유사성행위를 하는 듯한 행동을 반복하라고 요구했다.

메타버스 안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크게 두 갈래다. 위 사례처럼 메타버스 안에서만 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등 성폭력을 행하는 경우와, 메타버스를 ‘경유’해 오프라인 만남을 가진 뒤 신체 접촉이 있는 성폭력을 행하는 경우다. 후자는 현행 형법, 성폭력 처벌법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

문제는 전자다. 피해자의 ‘아바타’에게만 행한 비신체적, 비접촉적 성폭력을 처벌해야 하는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아직 공백 상태에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 등 14명이 27일 ‘메타버스 매개 아동·청소년 성착취 현황과 대응방안 토론회’를 개최한 배경이다. 이 자리에는 박선옥 여성가족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장, 이병귀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과장, 서지현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TF 팀장, 정희진 탁틴내일 팀장,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 김현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 등이 참석했다. 수사기관과 피해자 지원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메타버스를 매개로 발생하는 각종 성폭력 현황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위 사례는 이 자리에 발제자로 참석한 신민영 변호사가 논의를 구체화하기 위해 직·간접적 체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허구다.

한겨레

27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 등 14명이 공동주최한 ‘메타버스 매개 아동·청소년 성착취 현황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메타버스 파출소’ ‘메타버스 용 바디캠’ 등 메타버스 성착취를 막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사진: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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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완전 ‘허구’는 아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날로 증가하고 그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탁틴내일에 따르면, 에스엔에스(SNS)·사이버공간·휴대폰에서 발생한 성폭력 범죄는 2016년 전체의 4.7%에서 2020년 12.9%로 세배 가까이 증가했다. 성범죄 가운데 디지털성범죄 비율이 23%에 달하며, 피해자의 89.1%는 10∼20대다(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TF). “아직까지는 메타버스를 매개로 일대일 대면에서 발생한 범죄가 주를 이룬다”(이병귀 과장)고 하나, “아이가 메타버스 안에서 음란물 주고 받는 걸 봤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문의도 있다”(정희진 팀장)고 한다. 메타버스가 더 대중화되면 성폭력 이슈 또한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계’(부계정)와 ‘멤놀’(멤버놀이)이 주된 문화인 메타버스 특성상 성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이기에 법적·제도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희진 탁틴내일 팀장은 “아동·청소년은 가입 시 부모님 동의를 받으나, 가입 이후 부계정을 운영할 수 있고 아바타의 성별·나이 등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그 안에서는 ‘왕과 노예’ ‘아이돌 멤버 놀이’처럼 역할놀이가 주로 이뤄지며, 상대방에 대한 경계도 비교적 약하다. 이 모든 조건들이 성폭력 발생에 유리하다”고 했다.

정 팀장은 “메타버스 내에 경찰 및 사법서비스 도입, 메타버스 내 성범죄자 계정 차단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온라인 영역에도 경찰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신민영 변호사와 서지현 팀장도 냈다. 오프라인에서 경찰은 가정폭력 등 일부 긴급한 사안에 한해 가해자를 제지하고, 가·피해자를 분리하는 등의 임시·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이를 온라인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아동·청소년이 메타버스에 입장할 때 일종의 ‘바디캠’을 착용하게 하자”는 아이디어(정준화 입법조사관)도 나왔다. 메타버스는 영상물도 방송도 아니어서 성폭력을 당해도 아무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메타버스 안에서 발생하는 비접촉, 비신체적 성폭력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법체계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지현 팀장은 “메타버스 안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대부분 언어적 성희롱이다. 그런데 현행법상 이런 성희롱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모욕·명예훼손 같은 ‘비성범죄’뿐”이라며 “이 경우 신상공개, 전자발찌 같은 처벌은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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