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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미신고 시설서 폭행당해 숨진 장애인…법원 “지자체도 배상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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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장·지자체 손배 책임 인정…국가책임은 인정 안 해

“지자체에 장애인 인권보장 책임 최소기준 제시 의의”


한겨레

장애인 관련 단체가 27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평택 미신고시설 폭행·사망 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결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자회견에는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등이 참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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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시의 미신고 장애인거주시설에서 폭행으로 숨진 장애인의 유가족이 국가와 평택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재판부는 평택시와 시설장의 손해배상책임은 인정했지만, 정부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재판장 임기환)는 김아무개씨의 유가족 5명이 정부와 평택시, 시설장 ㄱ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27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ㄱ씨를 상대로 청구한 2억2천만원 중 1억2천만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고, 평택시에 대해서는 8500여만원을 원고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중증장애인인 김씨는 2020년 3월 평택의 한 미신고 장애인거주시설에서 활동지원사에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고 숨졌다. 활동지원사는 김씨가 새벽예배 참석을 거부하고 커피를 바닥에 쏟았다는 등의 이유로 머리를 쳐 숨지게 했다. 김씨의 사인은 외상성 뇌출혈 및 뇌부종이었다. 해당 활동지원사는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당초 김씨는 신고시설에 입소했지만, ㄱ씨가 건물을 개조해 같은 부지 위에 신고시설과 미신고시설을 나란히 운영하면서 김씨를 미신고시설로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유가족들은 가해 활동지원사를 감독하는 시설장이자 미신고시설을 운영한 ㄱ씨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미신고시설을 적발하지 못하고 시설을 폐쇄하지 않은 평택시와 보건복지부에도 책임이 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ㄱ씨와 평택시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ㄱ씨에 대해 “활동지원사를 지휘·감독하는 사용자 내지 감독자로서 활동지원사가 피해자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고로 망인과 원고들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평택시에 대해서도 “관련법에 의하면 담당 공무원은 반기별 1차례 이상 시설을 정기점검해야 하는데도 2018년에는 지도·점검을 하지 않았고, 2019년에는 지도·점검을 연 1차례로 축소해 실시했다”며 “이 사건 시설에서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장애인 폭행이 일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평택시 공무원이 법령보다 적은 횟수의 지도·점검을 하는 등 장애인복지법령을 위반한 행위는 이 사건 사고 발생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다만 복지부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사회복지시설 평가가 3년마다 이뤄지고, 이 시설이 2016년 사회복지시설 평가에서 ‘에프’(F) 등급을 받긴 했으나 곧바로 시설폐쇄 등의 처분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 점 등이 재판부가 든 이유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이 법령을 위반했거나, 이 사건 사고 같이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상당한 우려가 있다고 인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이 부분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국가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국가의 장애인에 대한 인권보호책임과 장애인 복지시설에 대한 지도·감독 의무는 인정된다”고 했다.

원고 쪽은 일부승소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시설장과 지방정부에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 건 처음”이라고 밝혔다. 소송을 수행한 김남희 변호사(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는 선고를 마친 뒤 “오늘 소송에서 국가 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건 아쉽지만, 직접 책임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장애인 인권보장의 최소 기준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나동환 변호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이번 소송의 목적은 사망한 사람만 있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그릇된 구조 속에서 방치된 미신고 거주시설과, 실질적으로 책임 있는 시설장 및 국가, 지자체에 책임을 지워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며 “대한민국의 책임이 인정받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시설장과 평택시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은 부분은 소기의 성과”라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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