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지휘봉 내려놓는 이상민 감독, 씁쓸한 퇴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삼성 지휘봉 잡은 지 8년 만에 감독직 사퇴, 당분간 이규섭 코치 체제로

이상민 감독이 결국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삼성은 지난 26일 이상민 감독이 성적 부진과 선수단 관리 부족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감독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로써 이상민은 2014년 4월 삼성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약 8년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공석이 된 감독직은 당분간 이규섭 코치의 감독대행 체제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최근 음주운전을 한 사실이 적발되어 팬들의 공분을 샀던 천기범은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오마이뉴스

▲ 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이상민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는다. 삼성 구단은 "이상민 감독이 성적 부진과 선수단 관리 부족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감독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26일 밝혔다. 사진은 2021년 12월 20일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경기를 지켜보는 이상민 감독.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선수로서는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농구 최고의 전설이었지만 지도자로서는 너무나 초라한 퇴장이다. 현역 시절 이상민은 1990-2000년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였다. 연세대 재학시절이던 1994년 당시 국내 최고의 농구대회였던 농구대잔치에서 서장훈-문경은 등과 함께 '대학팀 최초의 우승'을 달성했고, 프로무대에서는 대전 현대(현 전주 KCC)을 3번이나 챔프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정규리그 MVP(최우수선수)도 2번이나 달성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오랜 시간 활약하며 1997년 아시아선수권(현 FIBA 아시아컵) 우승, 2002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에 기여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기는 동시대의 스타들 중에서 단연 독보적이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오빠부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팬들을 몰고다녔고, 프로에서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9년 연속 올스타 투표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컴퓨터 가드' '영원한 오빠' '산소같은 남자' 등 멋진 별명들이 유난히 많았던 것이 그의 인기와 화제성을 증명한다.

이상민의 농구인생은 그동안 별다른 실패나 위기 없이 내내 꽃길만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성기에서 말년까지 오랫동안 정상급 기량을 꾸준히 유지했으며, 농구 외적인 구설수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나마 이상민의 현역 시절 가장 큰 시련이라고 하면 2007년 친정팀 KCC에서 FA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삼성으로 전격 이적한 사건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당시만 해도 KCC의 원클럽맨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이상민과 팬들 입장에서는 충격이기는 했지만, 이후 이상민은 새 팀에 바로 적응하며 '삼성맨'으로 거듭났다. 삼성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이후 코치와 감독으로까지 승승장구했으니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측면도 있다. 이적 후에도 친정팀이던 KCC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영구결번까지 받을만큼 레전드로서의 위상도 흔들림이 없었다.

2010년 서울 삼성에서 은퇴한 이상민은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거쳐 2년 뒤 삼성 코치로 돌아와 본격적인 지도자로서의 '농구인생 2막'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성적부진으로 사임한 김동광 감독의 뒤를 이어 마침내 사령탑까지 올랐다. 농구계는 허재의 뒤를 잇는 '전설적인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의 등장에 기대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선수시절부터 뛰어난 리더십을 인정받았던 이상민은 일찌감치 농구계에서 '감독이 되어서도 성공할 선수'로 자주 거론될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삼성 감독직은 이상민의 농구인생에 '흑역사'를 남기고 말았다. 이상민 감독은 두 번의 재계약을 거치며 삼성에서 총 8시즌간 무려 401경기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역대 삼성 감독중 최장수 감독 기록이다.

하지만 임기는 성과와 비례하지 못했다. 7시즌 중 무려 5번이나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고 그중 두 번은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 타이기록(2014-15, 2018-19시즌 11승 43패)을 세우며 꼴찌에 그쳤다.

2015-2016시즌 6강 플레이오프 진출, 2016-17시즌 준우승으로 짧은 봄날도 만끽했지만 그마저도 이상민 감독의 지도력이라기보다는 당시 KBL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라건아(당시는 리카르도 라틀리프)와 득점왕 출신 귀화선수 문태영(은퇴)의 덕을 봤다는 시선이 많았다.

두 선수는 바로 직전 소속팀이던 울산 현대모비스에서는 함께 전대미문의 챔프전 3연패까지 달성했지만, 삼성에서는 전성기 기량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우승에 실패했기에 감독의 리더십 차이가 더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라건아가 부상으로 고전했던 마지막 시즌, 그리고 라건아가 이적한 이후의 삼성은 더 이상 플레이오프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선수를 보는 안목이나 육성 능력에 있어서도 이 감독은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삼성은 2010년대 들어 주로 하위권을 전전하며 신인드래프트 상위픽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나마 이관희와 김준일 같이 주축이 될 수 있었던 선수들은 트레이드 카드가 되어 다른 팀으로 떠났고, 차민석-이원석 등은 아직 육성에 더 시간이 필요한 유망주들이다. 심지어 가드진을 책임져줄 것으로 기대했던 김진영과 천기범은 연이은 음주운전으로 실망을 안겨줬다.

2021-22시즌을 앞두고 삼성은 일찌감치 유력한 꼴찌 후보로 예상됐다. 시즌 초반에는 아이제아 힉스와 김시래의 활약으로 5할에 근접한 승률을 유지하며 선전했으나, 단순한 패턴이 점차 노출되고 에이스 힉스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는 악재까지 겹치며 결국 추락하기 시작했다.

새해 초에는 올 시즌 최다인 11연패를 당하기도 했으며, 현재도 4연패에다가 원정 경기만 놓고보면 무려 17연패가 진행중이다. 삼성은 7승 27패(승률 .206)로 10개구단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지 못하고 최하위에 머무르며 사실상 6강진출은 멀어진 분위기였다.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던 이상민 감독은 사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민 감독은 삼성 역사상 유일하게 한팀에서 400경기 이상을 지휘한 사령탑이 되었지만 통산 승률은 고작 .399(160승 241패)에 불과하다. 이는 역대 삼성 감독중 단 1시즌만에 사임한 김상준(13승 41패, 승률 241)을 제외하면 최악의 성적이다.

결과적으로 이상민 감독은 '명 선수는 명 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스포츠계 격언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며 안타깝게 퇴장하게 됐다.

이준목 기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마이뉴스에서는 누구나 기자 [시민기자 가입하기]
▶세상을 바꾸는 힘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