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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취재파일] 사표 쓰며 '사노라면' 노래 부른 검사…성남FC 사건을 둘러싼 검찰 내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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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언젠가 좋은 날도 오겠지"…한 검사의 사직 인사



박하영 수원지검 성남지청 차장검사가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사직 인사 글을 게시한 건 그제(25일) 오후 5시 50분쯤이었습니다. 이날(25일) 오전 법무부는 평검사와 부부장급 이상 검사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박하영 차장검사가 성남지청에 발령이 난 시기는 지난해 7월로, 통상적으로 부임 1년이 되는 올해 하반기 인사 대상자인 박하영 검사는 이번 인사 명단에 이름이 빠져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달 초부터 고검검사(부부장급 이상)급과 평검사급 인사가 예정돼 있던 터라 검찰을 나가기로 마음 먹은 검사들은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고, 법무부는 사표가 수리된 검사의 빈자리를 메꿀 새로운 인사들을 발령냈습니다. 박하영 검사의 퇴사 통보는 다소 갑작스러워 보이긴 합니다.

다음은 박 검사의 사직 인사 글 일부입니다.
이제 정들었던 검찰을 떠납니다. 예전에 생각했던 것에 비하여 조금, 아주 조금 일찍 떠나게 되었습니다. 더 근무를 할 수 있는 다른 방도를 찾으려 노력해보았지만… 이리저리 생각을 해 보고 대응도 해보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중략)
끝으로 노래를 잘 못하지만 꼭 함께 공유하고 있는 노래가 있어서, 제가 부른 노래 하나를 음성파일로 첨부합니다.

<박하영 검사가 직접 불러 첨부한 노래 '사노라면'의 가사>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박 검사의 글 게시 후 관련 사정에 밝은 일부 구성원들은 '터질 것이 터졌구나'라고 반응했다고 합니다. 특히 "더 근무를 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았고 대응도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구절과 "내일은 해가 뜬다"는 노래 가사 때문이었을 겁니다.

박하영 차장검사는 성남지청에서 이른바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박하영 검사의 상관인 박은정 성남지청장과의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이재명 후보 연루 사건…경찰은 3년 3개월 수사 후 '불송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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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은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015년~2017년 성남시장 재직 당시 성남FC 구단주로서 6개 기업으로부터 후원금과 광고비 명목으로 160억 원을 받고 해당 기업들에 각종 인·허가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그 골자입니다.

2018년 당시 바른미래당이 이재명 후보를 제3자 뇌물 제공 혐의로 고발했고 사건은 분당경찰서로 갔습니다. 경찰은 3년 3개월 동안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재명 후보를 대면 조사하지 않고 지난해 9월 '불송치'하기로 결정합니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자신들의 사건에 한해서 자체적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기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반드시 사건을 '불기소'든 '기소'든 검찰로 보내 수사지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자 고발인 측이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사건 관계자가 이의 제기를 하면 사건 전체를 검찰로 넘겨야 하는데, 박하영 검사는 성남지청 차장검사로서 이 사건 기록을 검토하게 됩니다.

후배의 "직접 수사 · 보완 수사 건의" vs 선배의 결정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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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복수의 검찰 관계자로부터 '간접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성남FC 사건의 담당 검사와 박하영 차장검사는 경찰이 혐의없음 처리한 사건을 검찰이 직접 재수사하거나 아니면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박은정 성남지청장의 의견은 달랐던 걸로 전해집니다. 지난해 9월 검찰로 사건이 넘어온 후 후배 검사들의 의견에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수사권 조정 후 달라진 수사준칙에선 1)검찰이 불송치한 사건에 대해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하거나 2)영장 청구가 필요한 사안이나 검찰로 송치된 사건에 대해선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경찰의 과도한 수사권 남용을 위한 일종의 방어 장치인데, 이 부분에서 박은정 지청장과 박하영 차장검사 및 담당 수사팀의 의견이 엇갈렸던 걸로 보입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박하영 검사가 수사 진행과 관련된 어려움을 주변에 '어떻게 해야 하나'며 토로한 걸로 알고 있다"고 했고 박하영 검사와 친분이 있는 또 다른 인사도 "특히 상관인 박은정 성남지청장과 업무 관계에서 힘들어했다"고 전했습니다.

통상적인 상관과 부하 직원의 의견 충돌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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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인 상관과 부하 직원의 의견 충돌이었나? 이 물음이 이 사안의 본질을 바라보는 질문일 겁니다. 박하영 차장검사의 사직 인사 글이 불거진 후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공식 입장문을 냈습니다.
<1월 25일 자 성남지청 입장문>
"성남지청은 성남지청 수사과 수사기록과 경찰 수사기록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검토 중에 있습니다. 또한 수사 종결을 지시하였다거나 보완 수사 요구를 막았다는 기사 내용은 사실이 아니므로 보도에 신중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즉, "아직 검토 중인 사안이니 내부 의견 갈등을 확대 생산하여 보도하지 말아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선 박은정 지청장이 성남FC 사건에 대한 후배들의 통상적인 사건 처리(직접 수사 혹은 경찰에 보완 수사 요구)건의를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굳이 많은 분량을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박은정 성남지청장의 과거 이력 때문일 겁니다. 박은정 성남지청장은 지난 2020년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지내면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징계 국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이때 당시 직속 상관인 류혁 법무부 감찰관을 '패싱'해가면서 징계 결정 과정을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친정부 검사'로 인식되는 인물이라 이재명 후보가 피고발인인 성남FC 사건을 고의 지연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검찰총장의 진상 조사 지시…우려 섞인 시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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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수 검찰총장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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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커지자 김오수 검찰총장은 어제(26일) 신성식 수원지검장에게 경위를 파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때문에 박하영 검사의 사표 수리는 곧바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수원지검 차원에서 일종의 진상조사단이 꾸려질 걸로 보이지만 이 또한 곱게 바라보지 않는 내부 시선도 존재합니다.

신성식 수원지검장 역시 친정권 성향 아니냐는 일부 비판이 있는 데다 그렇다고 해서 마찬가지의 비판을 받는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이 있는 대검 감찰부에 이 일을 맡길 수 있겠냐는 의견입니다. 한 검찰 구성원은 "현재 수원지검 지휘부와 대검 감찰부의 인적 구성을 보면 이 사안이 진실되게 밝혀질지 의문"이라고 평했습니다. 부디 그런 생각이 기우에 그치길 바랍니다.

11년 전 박하영 검사의 인터뷰…검사의 덕목은 '강한 정의감'



자료를 찾다 지난 2011년 박하영 당시 법무심의관실 검사가 '법률저널'과의 한 인터뷰를 봤습니다. 박 검사가 평소 지론으로 여기는 검사의 덕목을 설명했더군요.
<2011년 법률저널 인터뷰 中>
"당시 지청장이시던 안대희 대법관께서 훌륭한 검사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덕목이 '강한 정의감'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신 것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귀에 생생합니다"
"훌륭한 검사란 꼼꼼함, 냉철한 판단력, 리더십 등 흔히 말하는 여러 가지 덕목 중 하나 또는 여러 가지를 갖춘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법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다른 것은 모두 노력에 의하여 해결 할 수 있지만 '강한 정의감'은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있어야 판단이 흐려지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훌륭한 검사의 덕목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선배들로부터는 항상 "어려울 때일수록 더 원칙에 맞게 수사하려고 노력하라"는 조언을 많이 들어온 그다. 그는 "이 역시 '강한 정의감'과 상당 부분 일맥상통한다"고 해석했다.


'강한 정의감'과 '원칙'. 그 어떤 검사라도 보편 타당하게 갖춰야 할 덕목들일 겁니다. 혹시 이 사태를 촉발한 성남FC 의혹 사건을 둘러싼 성남지청 내부의 업무 과정들 중 '정의'와 '원칙'에 벗어났던 일은 없었는지 취재진도 열심히 알아보려 합니다.

그리고 검찰 내부에서도 진상 조사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사안의 진실을 꼭 밝혀주길 고대합니다. 그 어떤 양심 있는 검사도 외부로부터 '친정권 검사'로 분류되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닐 테니까요.
홍영재 기자(y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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