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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WTO, 중국에 대미 보복관세 허용…통상갈등 재현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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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WTO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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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기구(WTO)가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응해 중국도 보복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관세 조치를 둘러싼 미·중 분쟁에서 중국 쪽 손을 들어준 것이다. 미국은 “실망스러운 결정”이라며 WTO 개혁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미·중 간 통상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WTO 중재인은 26일(현지시간) 중국산 제품에 상계관세를 부과한 미국의 조치와 관련해 중국이 매년 6억4500만달러(약 7730억원)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상계관세는 수출국이 특정 수출산업에 장려금이나 보조금을 지급해 가격경쟁력을 높일 경우 수입국이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부과하는 관세다.

중국은 2012년 미국이 정부 보조금 지급을 이유로 태양광 패널 등 22개 중국산 공산품에 상계관세를 부과하자 WTO에 제소했다. 이에 WTO는 2014년 미국이 제시한 보조금 입증 자료가 불충분하고 보조금 계산 과정에도 잘못이 있었다며 미국에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이 WTO 결정을 이행하지 않자 중국은 다시 2019년 WTO에 보복 조치를 할 수 있게 승인해달라고 요청했다.

WTO가 이에 대해 중국의 보복 관세 부과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WTO는 “미국이 특정 중국산 제품에 대한 상계관세에 있어 WTO의 판정을 준수하지 않았다”면서 “중재인은 중국이 미국에서 수입된 상품에 대해 역조치를 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WTO 분쟁해결기구(DSB)에 보복 관세 부과 승인을 요청할 수 있다”며 DSB가 승인하면 역조치의 효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WTO가 결정한 보복 관세 부과 금액은 중국의 요구액보다는 적은 것이다. 중국은 당초 매년 24억달러(약 2조8764억원) 상당의 미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럼에도 블룸버그통신은 WTO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중국에 새로운 ‘관세 무기’를 부여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결정으로 미·중 무역 갈등이 다시 표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이 실제 보복 관세를 시행하면 미국이 다시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식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장 “실망스럽다”며 WTO를 비난하고 나섰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성명에서 “WTO 중재인의 매우 실망스러운 결정은 무역을 왜곡시키는 중국의 보조금으로부터 WTO 회원국이 노동자와 기업을 보호할 능력을 훼손하는 잘못된 해석을 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결정은 중국의 비시장 경제 관행을 감싸고 공정하고 시장 지향적인 경쟁을 저해하는 데 사용된 WTO 규정과 분쟁 조정에 대한 개혁 필요성을 증대시킨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시절 이미 무역 갈등으로 큰 홍역을 치른 뒤 가까스로 봉합한 바 있다. 양국 사이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500억달러(약 60조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 갈등이 촉발됐고, 서로 보복 관세를 주고받다 2020년 초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하면서 겨우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

하지만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이 3500억달러(약 420조원) 규모의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 조치를 유지하고 있고, 1단계 무역합의 이후 양국간 추가 협상이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언제든 무역갈등은 재현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대한 일부 관세를 철폐할 때가 됐느냐는 질문에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에 따른 미국산 물품 구매 약속을 아직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중국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 실제 미국 상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지는 않고 WTO 결정 자체에 의미를 둘 가능성이 있다. 보복 관세 부과로 잠재된 무역갈등이 다시 촉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요구액보다 금액이 크게 줄어 관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도 크지 않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이번 안건 승소는 미국의 잘못된 반덤핑 대응 관행을 바로잡고 우리 기업의 합법적 무역 이익을 지키는 한편 다자 무역체제를 수호하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다시는 어떤 핑계를 찾지 않고 즉각 행동에 나서 대중 무역 구제·조사 과정에서 벌여온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중국 상무부는 또 이번 결정으로 6억4500만달러 규모의 대미 관세를 부과할 권리를 확보했다면서도 이 권한을 실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은 이번 사안과 별개로 2019년에도 WTO가 최대 36억달러(약 4조3200억원) 규모의 미국 상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아직까지 WTO에 보복 관세 이행을 통보하지 않았다.

베이징|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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