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오늘부터 ‘이런 현장’은 위법입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오늘 시행

안전수칙 반복 위반, 노동자 개선 요구 묵살


한겨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하루 앞둔 26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무너진 슬래브 위 낭떠러지에서 잔해물을 제거하며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3월 전북 정읍의 한 공장에서 기계 청소를 하던 노동자의 옷에 크링커(고열로 단단하게 굳은 분진 덩어리)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크링커가 옷에 떨어지면서 불이 났고 노동자는 화상을 입었다. 노동자들은 사고 이전에도 “크링커 낙하 위험이 크다”고 수차례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게다가 사업주는 방열복을 입고 크링커 제거 작업을 하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걸 알면서도 작업시간을 늘리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마감시간을 맞추느라 방열복 없이 일했지만, 사업주는 이를 알면서도 방치했다. 이후 공장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재해 예방 조치 의무 위반으로 기소됐고 2019년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27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이런 현장의 사업주 혹은 경영책임자에게 예방조치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현장의 안전수칙 위주로 사업주의 산재 예방 의무를 정했다면, 중대재해법은 생산 일정 조율과 안전 예산 증액 등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별도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산안법은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현장소장 등 만을 처벌하고 있어 이를 보완할 목적으로 중대재해법이 제정됐다.

산안법은 현장에서 지켜야 할 안전 조처 의무를 목록으로 만들어졌지만, 중대재해법은 그런 의무를 지키려는 사업주의 노력이 있었는지를 들여다본다. 지난 24일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관행적으로 안전수칙·작업계획서를 준수하지 않은 경우 △재해발생 대책을 수립·이행하지 않아 동종·유사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경우 △종사자 의견청취 절차가 없거나 의견을 개진하였음에도 묵인·방치한 경우를 ‘유해·위험요인 묵인 유형 3가지’로 보고 엄정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안전보건조처 의무 위반만 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알면서도 방치하는 산업 현장을 단속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2020년 추락방호망을 설치하지 않았다가 현장 노동자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ㄱ사는 사업주가 산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 ㄱ사는 2017년에도 같은 추락 사고로 노동자가 다치는 사고가 있었고, 2019년에도 굴삭기 부품 추락 사고로 노동자를 위험에 빠뜨린 바 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ㄱ사 경영진은 유사 사고가 반복됐음에도 이를 방치한 책임을 물어 수사를 받게 된다.

법 시행을 앞두고 일각에서는 여전히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자가 처벌 받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주로 법률 자문을 홍보하는 대형 법무법인은 이런 이유로 ‘공포 마케팅’을 조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의 취지는 사업주가 평소 제 역할을 다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산재 발생만을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서 지난 20일 박화진 노동부 차관은 “(산재에 대한) 경영책임자 책임 여부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요구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처벌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