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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지역 생산자 묶어 경쟁력 강화… 친환경 농가 소득 ‘쑥쑥’ [지방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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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농수산진흥원, 위기극복 전략

지역 농가들과 함께 생산량 예측

초과·부족한 물품 적극 대응 가능

가격경쟁력 높여 시너지 효과 기대

남는 농작물로 간편식 만들어 판매

톡딜·라이브 커머스 등 SNS 홍보

다양한 판로확보… 소득 증대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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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농수산진흥원 청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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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기 평택시 청년숲 통북시장에는 ‘팜마켓’이란 샐러드바가 있다. 시장이라 국밥이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30대 청년 농부 최린씨는 오전 7시 정장을 입고 출근해 직접 재배한 유기농 농산물을 판매한다. 가게 인근 4600여㎡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연중 치커리·케일·파프리카 등 채소가 자라는데, 매일 오전 9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개된다. 농대 졸업 후 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던 최씨는 2016년 귀농해 지난해 ‘뉴스타 청년농부 톱10’에 선정됐다. 그는 “농업은 다른 분야보다 경쟁력 있고 역량을 발휘하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2. 지난해 9월30일 경기 안성시 안성출하회 사무실. 도내 모범 출하회인 이곳은 아침부터 주민들 목소리로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이날은 친환경 생강 시료 채취가 예정된 날. ‘생강 반장’으로 불리는 허춘만씨를 비롯한 농민들은 경기도농수산진흥원 담당자와 한 명씩 조를 이뤄 생산 농가로 떠났다. 충남 서산시 처가에서 생강 종자를 구해 파종했다는 허씨는 “학교급식 물량으로 계약재배하는 생강이라 농약이 검출되면 계약이 취소된다”며 “그럴 경우 농가가 직접 일반농산물로 판매해 제값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가치소비 확산으로 친환경 농산물 인기

경기도 산하 경기도농수산진흥원이 건강한 먹거리를 공급하고 친환경 농업인에게 소득 증대를 꾀하기 위해 ‘산지조직화’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봄 경기지역 농가들 사이에선 ‘파테크’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대파 출하량이 급감하면서 파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대파값이 오르지 않아 재배면적은 줄었고, 폭우와 장마, 한파까지 겹쳤다. 파값이 고공행진하면서 경기지역에선 ‘산지조직화’가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산지조직화는 농업·농가 위기 극복을 위한 대표적인 전략이다. 가격 결정과 유통에 대응하기 힘든 농가들이 뭉쳐 비용 절감 등 생산의 한계를 함께 극복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특히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친환경 농가에선 시너지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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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원 관계자는 “농가의 수입이 보장되고 소비자도 안정적으로 소비하려면 산지생산자 조직이 꼭 필요하다”며 “지역별 생산자를 유기적으로 묶어 생산량을 예측하고 초과한 품목을 부족한 품목으로 전환해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진흥원은 친환경농산물 산지를 중심으로 ‘광역산지조직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2년 단위의 사업을 이어오는데, 5만3000여 도내 친환경 농가가 대상이다. 목표는 △교육 및 조직화 △산지 및 안전성 관리 △마케팅 및 시장개척 △유통물류 시스템 구축이다. 산지관리요원들이 농가 현황을 파악하고 생산을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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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마킹 모델은 벨기에 메헬렌지역의 협동조합 ‘벨오타’이다. 벨오타는 1600여 농가에서 50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평일 오전 이뤄지는 700대 분량의 경매에는 대형 유통점, 도매상 등이 참여하는데 70%가량이 인근 국가로 수출된다.

친환경 농가를 육성하려면 판로 확보가 우선이라는 게 업계 통설이다. 학교급식 외에 군납, 임산부꾸러미, 건강 과일 공급사업 등이 대표적 판매처다. 경기 도내 조직화 사업은 시·군별 출하회를 중심으로 꾸려지고 있다.

2013년 출범한 경기 안성출하회는 회원 수 46명으로 생강 외에 마늘, 양파, 감자 등 친환경농산물을 진흥원을 통해 학교급식용으로 납품 중이다. 이곳의 경우 한 해 동안 얼마큼의 땅에 어떤 작물을 심을지 계획하고 이를 배분해 생산재배 단계부터 계획적 관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성출하회 강명선 사무국장은 “품목별 반장을 정해 작황을 확인하고 병충해 여부 등을 파악한 뒤 자료를 공유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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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서 운영하는 농산물 온라인 쇼핑몰 '마켓경기'를 홍보하는 오프라인 설명회에 관람객이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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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조직화는 작물 변경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도는 지난해 ‘경기밀 육성 지원사업’을 시작하면서 28개 농가를 밀생산자 조직으로 선정했다. 이들 농가가 생산한 밀은 도가 전량 수매한다.

양평군 다대2리 최봉우 이장은 5년간 친환경 밀을 재배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풀어놓아 ‘선도농가’로 불린다. 최 이장은 지난해 9월 밀생산자 교육에서 “제초제를 사용할 수 없으니 때맞춰 잡초를 뽑아야 하고, 봄이 되면 흙의 상태가 느슨해져 뿌리가 말라 죽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직화가 되면 유통·판매를 고민할 필요가 없고 ㏊당 400만원의 생산장려금도 받는다”며 “친환경 밀 재배가 규모화되면 급식뿐 아니라 국수나 과자, 빵 등 다양한 형태로 소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지조직화부터 친환경 간편식까지

진흥원의 친환경농산물 장려는 30대 초반의 청년을 귀농으로 이끌기도 했다.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 김상기 회장은 2000년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파주로 이사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난해 생산한 친환경 배는 전량 학교급식용으로 출하됐다. 김 회장은 “획일화된 도시라는 환경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위해 ‘한번 바꿔보자’고 결심한 게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경기친농연의 경우 현재 28개 지역 출하회에서 1200여 농가가 계약재배로 110여개 품목의 친환경농산물을 학교급식용으로 출하 중이다. 2010년 300여 농가(15개 품목)에서 4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김 회장은 “화학농약을 쓰면 해충은 물론 미생물까지 모두 죽고 지하수를 오염시킨다”면서 “친환경 급식은 경기도농수산진흥원과 협의해 결정하는데 토양을 지키고 환경을 보전하며 학생에게 건강한 식사까지 제공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린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조직화하고 수요를 예측하더라도 농작물을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 아닌 만큼 잉여농산물은 나오기 마련이다. 지난해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며 학교급식이 급감하자 진흥원은 친환경 잉여농산물의 판로 확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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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친환경 간편식 '경기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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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출시한 가정간편식(도시락) ‘경기한끼’가 대표적이다. 최근 식품시장의 흐름인 안전성을 기본으로 건강, 기능성, 편의성 등을 강조해 포장재까지 환경친화 소재를 사용했다. ‘간장불고기’, ‘간장찜닭’ 2종으로 도시락으로선 처음 무농약원료 가공식품 인증을 받았다. 주 메뉴인 간장불고기와 간장찜닭에 취나물밥과 반찬 3종(볶음김치, 새송이볶음, 애호박볶음)이 제공되는데, 지난해 4월부터 판로 확보와 복지사각·취약계층 대상 대체 식사 마련을 위해 기획돼왔다. 진흥원은 ‘톡딜’이나 ‘라이브커머스’ 등 SNS를 통해 판로를 개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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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한끼' 관련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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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원 관계자는 “친환경농산물은 우리 인생처럼 비 오고 바람 부는 날 등 모든 순간을 거치고 이겨내야 수확할 수 있다”며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듯 서로 도움을 주고받도록 농업인들의 산지조직화를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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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성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 “친환경 농산물 임산부까지 누구나 안전한 먹거리 보장”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 확대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안대성(사진) 경기도농수산진흥원 원장은 먹거리전략의 실행기관이자 책임기관으로서 진흥원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생산을 배려하는 소비’와 ‘소비를 생각하는 생산’을 조직화하고 연결하면 농촌과 도시가 서로 결핍을 줄여갈 것이란 설명이다.

안 원장은 “경기도가 먹거리 생산자원과 소비자원을 보유한 자족 지자체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도민 누구나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듯이 농민은 더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내 초중고에 한정된 친환경 급식을 유치원까지 확대하고 임산부도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며 “먹거리를 시장재가 아닌 공공재로 인식해 소득, 학력 격차에 상관없이 누구나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받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300여만명 도민을 위한 67곳의 로컬푸드 직매장을 인구 규모에 맞게 확대하고, 수원 등 대도시에 거점 매장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올해 수산분야까지 업무가 확대되는 만큼 도내 수산물이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하도록 돕고, 간편식 등의 개발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도내 공공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이전(경기 광주시 친환경농산물유통센터)을 마친 만큼, 리모델링된 센터 시설을 도민과 농업인에게 적극적으로 개방할 것이란 계획도 공개했다.

안 원장은 지난해 8월 취임 전까지 전북 완주군에서 로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공공급식센터 상임이사, 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농업·농촌 관련 정책 실행 경험을 바탕으로 도와 시·군의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안 원장은 “경기도 농·어업이 처한 환경 극복을 위해 노력하며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체계를 구축해 도민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기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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