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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1호로 걸리면 큰일"…중대재해법 시행날 공장 멈추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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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재해법 27일 시행 ◆

"이대로 중대재해법이 시행된다면 중소기업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지 말라는 소리와 같습니다. 법 시행 이후 첫 사법대상자 불명예를 뒤집어쓸 순 없으니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 조업을 일단 중단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하루 앞둔 26일 방문한 경남 창원의 한 금속 제조공장 A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그의 표정은 시종일관 굳어 있었다. 중대재해법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형사처벌 조항을 대폭 강화해 사업주, 경영책임자에게 산업재해 사망사고의 경우 1년 이상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는 법이다.

법률 시행 이후 1호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시범 케이스'로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가 산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산업재해에 취약한 중소기업과 건설사들은 아예 조업 중단으로 대응할 판이다.

A대표는 "우리뿐 아니라 창원에 있는 대다수 중소 제조기업들은 중대재해법 '처벌 1호' 사례가 되는 불명예를 뒤집어쓰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며 "설 연휴를 앞두고 이번주부터 아예 직원들에게 긴 휴가를 주고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곳이 많다"고 밝혔다. 공장 주변 가게들 역시 코로나 불황까지 겹쳐 대부분 문을 닫은 모습이었다. A대표는 "경기가 좋지 않아 연휴 전 하루라도 더 공장을 돌리는 게 좋지만 법이 기업 활동을 옭아매고 있는 셈"이라며 "예방이 아니라 처벌에 방점이 찍힌 중대재해'처벌법'이란 명칭부터 잘못됐다. 법 이름부터 기업들을 공포심에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수도권에서 가전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B대표는 중대재해법 시행에 대한 걱정으로 최근 밤잠을 설치고 있다. B대표는 "회사 측에서 모든 안전장비를 갖추고 철저한 안전교육을 실시한다고 해도 사고가 나는 것을 100% 방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모든 안전사고의 책임을 경영인 한 사람에게 지운다는 것은 집에서 누군가 다치면 가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든지, 국가적인 사고가 발생하면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는 중대재해법 시행 시점인 27일부터 대부분 현장을 멈춰 세운다. 대다수 대형 건설사들은 설 연휴 주간인 다음주 통째로 현장 직원들에게 휴가를 권장하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27일부터 이틀간 현장별로 여러 위해 요소를 최종 점검하고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등 안전결의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들은 "안전관리 인력 증원과 투자를 통해 선제적으로 대비해왔다"며 "그럼에도 최근 사고가 빈발함에 따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양연호 기자 / 정지성 기자 / 연규욱 기자]

"명확한 지침없이 처벌로 겁줘…中企는 한국서 사업말라는 건가"

중대재해법 시행 앞두고
창원 등 제조현장 멈췄다


정부, 다그치기식 법시행에
"의무사항 이행 어렵다"
中企 경영인 절반넘게 난색

"해외로 공장 옮기거나
바지사장 늘어날것" 우려도

고의·중과실 없는 중대재해
면책규정 등 입법보완 필요

매일경제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부터 시행되는 가운데, `처벌 1호`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건설업계에서는 법 시행 첫날부터 미리 설 연휴에 들어가거나 당분간 주말 공사를 중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26일 서울 동대문구 한양 수자인 건설 현장에서 한 작업자가 건설용 승강기에 탑승해 이동하고 있다. 이 공사장도 27일부터 건설작업을 일시 중단한다.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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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경영인들은 생명 존중과 재해 방지를 위한 안전 규정 강화의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사고 발생의 모든 책임을 경영인 1명에게만 씌우는 현재의 징벌적 법안에는 찬성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사업부별로 임원이 있는 대기업과 달리 기업 오너 겸 대표이사 한 명이 전반적인 업무를 모두 관할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이 구속될 경우 기업 경영이 아예 '올스톱'될 수 있다는 게 현장의 우려다. 중기업계에선 법안의 초점을 '사후 처벌'에서 '사전 예방'으로 바꾸고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영인에 대해선 사고 발생 시에도 면책특권을 주는 등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한 한 2차전지 업체는 현재 대표이사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게 되면서 사실상 '부재중'인 상황에 놓였다. 만약 이 회사가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됐다면 대표가 구속돼 형사책임(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까지 질 수 있었던 상황이다.

중소기업들은 최고경영자(CEO)의 공백이 경영에 미치는 타격이 대기업에 비해 훨씬 치명적이라는 입장이다. 경기 시화공단에 위치한 한 화학소재업체 관계자는 "만에 하나 불의의 사고로 오너가 형사책임을 뒤집어쓰고 장시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경우 영업 전반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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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선 벌써부터 법망을 회피하려는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제조업체 대표는 "중대재해법 때문에 공장을 해외로 내보내거나 '바지사장'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려는 업체가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건설·조선업 등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에선 무서워서 사업을 못 하겠다는 경영인들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영자에게 관리 감독의 책임을 묻는다면 관할 공무원이나 장관은 왜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가"라며 "사고가 정말 우려된다면 사전 예방을 위한 안전 규정을 기존보다 철저히 강화하고 이를 정부가 자주 점검해 경영자가 위반했을 때 법적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맞는다"고 지적했다.

법안 시행에 맞춰 시스템을 준비하려 해도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막막하다는 경영인들도 많다. 중소기업중앙회가 50인 이상 중소제조기업 322개사를 대상으로 지난해 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0인 이상 중소제조업체의 절반 이상(53.7%)은 시행일에 맞춘 준비(의무사항 준수)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중소기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은 법안이 구체적으로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중대재해법에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재해방지대책 수립 등과 같은 의무사항이 있지만 항목별로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라는 식의 표준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업종이나 사업장마다 그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표준'을 제시하기 힘들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쉽게 말해 기업이 스스로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대기업은 수십억 원의 컨설팅 비용을 들여 대형 로펌 등에 법률 컨설팅을 맡기고 있지만 중기 입장에선 이 같은 여력도 없어 막연하게 안전교육 정도만 강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호석 한국탱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아직도 뭘 준비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이 없는 실정이라 헬멧 착용 강조 정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법 적용이 확대되는 2024년까지 조합 차원에서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인데 이 또한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들어가 정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경영자 못지않게 근로자들의 안전의식도 함께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 동해의 한 시멘트 제조업체 대표는 "아무리 회사 차원에서 안전을 강조해도 한국 특유의 요령껏 '빨리빨리' 하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건·사고가 줄어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태희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는 면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입법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양연호 기자 /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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