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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일본 사도광산은 세계유산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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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왜냐면] 강동진 |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세계유산분과)

일본 후쿠오카의 지쿠호 탄광은 지독한 강제동원의 현장이었다. 2011년 세계기록유산이 된 ‘야마모토 사쿠베에 컬렉션’이 여기서 나왔다. 평생을 이곳에서 광부로 지낸 사쿠베에가 그린 697점의 생활기록화는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던 시기 광부들의 삶과 노동환경을 보여주는 ‘손으로 적고 그린 인권선언’으로 불린다. 세계인은 이 컬렉션을 통해 서양의 산업기술이 동양에 미친 폐해를 이해한다. 그러나 탈출을 시도하다 잡혀와 거꾸로 매달린 채 고문받는 그림 속의 광부가 누구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왜일까? 기억 속의 본질은 묻어둔 채, 겉으로 포장된 가치에만 집중하게 한 일본의 고도화된 논리 때문이다.

일본이 이번에는 ‘사도섬의 금산’이란 광산(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시키려 한다. 사도광산은 강제동원의 현장이었다. 어떤 교묘한 반전의 책략을 준비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만큼은 세계유산 등재를 막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니 이 기회를 19세기 중반 이후 100여년 동안 이어졌던 그들의 온갖 침탈과 만행, 그리고 속임수와 왜곡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2015년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유산의 ‘전체 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의 지적은 한정된 시기(1850~1910년)만을 택해 강제동원의 역사를 피하고자 했던 일본의 꼼수를 무력화하는 해법이 되었다. 결국 유네스코 일본대사가 ‘강제적인 노역’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은 7년이 지나도록 전체 역사를 알리기로 했던 등재 조건이자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 도리어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참여였다며 왜곡에 나서고 있다. 전체 역사의 전시장으로 조성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유산 현장과 무려 1천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도쿄의 총무성 별관에 설치되었다. 자국의 이익에 배치된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가리거나 우기는 것이 그들의 특기인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유네스코 아니 전 인류 앞에서 맺은 최소한의 약속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국가가 무슨 염치로 또다시 강제동원 현장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그들의 속내를 이해할 수가 없다.

세계유산은 인류 화합을 최고 가치로 천명하는 유네스코 정신하에 인정되는 것이기에, 국가 간의 분쟁 가능성이 있는 유산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사실들에 대한 객관적인 인정과 갈등 해소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세계유산은 진정성과 완전성이란 조건 아래 한 점의 거리낌도 없어야 한다. 유산에 대한 모든 것이 진짜이며 진실되어야 하고 완전해야 한다.

그런데 사도광산은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걸었던 길을 똑같이 가려 한다. 시기를 ‘센고쿠 시대 말~에도 시대’로 한정하여 강제동원의 시기를 벗어나게 하고, 강제동원과 관련된 유산들도 제외시키려 한다. 눈앞에 펼쳐진 광산 모습은 19세기 말 이후 동아시아 전체를 전쟁에 몰아넣었던 침략 시대의 결과물인데 어찌 땅속 깊이 묻혀 있는 이전 시대 것만으로 세계유산을 노리려 하는가. 탄생, 발전, 쇠퇴, 소멸에 이르는 광산의 온전한 역사를 설명하지 못하고, 어릴 때의 모습만을 광산 역사로 보아달라는 일본의 태도에 분노와 함께 애처로움(?)마저 느낀다.

이러한 일본의 행태는 지난 수십년 동안 메이지와 쇼와 시대에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으로 저질렀던 만행들을 미화·왜곡하여 자국민에게 가르쳐온 거짓 역사가 드러남에 대한 강박적인 현실도피 증세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침략과 약탈이 식민사관으로 정당화되고, 오히려 그들이 피해자로 인식될 수 있음을 전세계가 함께 경계해야 한다. 이 일은 결코 사도광산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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