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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나토에서 군 철수” vs “그건 당신 생각이고”… 우크라 사태로 갈라진 크로아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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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무력 충돌 시 나토군에서 철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도 반대"
외무장관 "나토와 협력할 것" 수습
정기 파견부대는 이미 귀국, 후속 파병 없어
한국일보

지난해 11월 25일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는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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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원국인 크로아티아가 우크라이나 문제로 내분을 겪고 있다. 대통령은 분쟁에서 발을 빼겠다며 나토에 반기를 들었고, 내각은 그런 대통령에게 반발하며 나토에 납작 엎드렸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정치 체제에서 비롯된 ‘엇박자 행보’이긴 하지만, 나토 회원국에서 다른 목소리가 처음으로 나왔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25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에 따르면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대통령은 이날 자국 제과기업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나토에서 크로아티아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나토가 러시아에 맞서 동유럽 지역 병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회원국 수반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낸 건 처음이다.

밀라노비치 대통령은 “나토의 병력 증강 및 정찰선 파견 보고서 등을 예의 주시해 왔다”며 “우리는 이런 계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고 못 박았다. 나아가 “크로아티아는 나토에 군대를 보내지 않을 것이며 유사시에는 나토군에 파견된 우리 군인을 마지막 한 명까지 고국으로 불러들일 것”이라고 선언했다.

밀라노비치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정작 당사자인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와는 무관하며 되레 미국의 국내 정치 이해관계 싸움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도록 민주당과 공화당 내 ‘매파’ 의원들에게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안보 이익을 수용하고 우크라이나 영토를 보존할 수 있는 합의”를 분쟁 해결 방법으로 제시했다. 같은 맥락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한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대통령의 발언으로 크로아티아 정치권은 혼란에 빠졌다. 내각은 “정부 입장과 다르다”며 즉각 선을 긋고 나섰다. 크로아티아에서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 외교와 국방 등 상징적 권한만 갖고 있고,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행정부 수반으로 주요 실권을 행사한다. 군 통수권자는 엄연히 대통령이지만, 나토 파병은 의회 승인을 거쳐 국방부가 결정한다. 중도좌파 사회민주당 대표를 지냈던 밀라노비치 대통령은 크로아티아민주연합 안드레이 플렌코비치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부와 국정 전반에서 충돌하고 있다.

고단 그릴리치 라드만 외무장관은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밀라노비치 대통령은 크로아티아가 아닌 자기 자신을 대변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런 때일수록 회원국 간 연대를 보여주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크로아티아는 나토의 충성스러운 회원국으로서 앞으로도 유럽연합(EU), 나토와 협력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크로아티아는 이미 나토와 거리두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 주둔 나토군에 정기적으로 파견되는 크로아티아 군 병력이 임무를 마치고 이번 주 초 귀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폴란드 나토 부대는 “곧 새로운 크로아티아의 파견군을 맞이할 것”이라는 트위터 글도 올렸지만, 후속 부대는 도착하지 않았다. 크로아티아 유력 일간 유타르니 리스트는 “올해는 나토에 파병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더라도 철수할 병력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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