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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일본 ‘미투 상징’ 이토, 2심도 승소…“목소리 내면 반드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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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고등법원, 성폭행 인정해 330만엔 배상

검찰 불기소 처분했으나 1·2심 법원은 인정

일본에서 처음으로 신분 공개하며 피해 알려


한겨레

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인 이토 시오리가 25일 오후 도쿄에서 변호인단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쿄고등법원은 이토가 자신을 성폭행했다며 야마구치 노리유키 전 <티비에스>(TBS) 방송 기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위자료 등 330만엔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도쿄/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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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내면 시간은 걸릴지 모르지만, 반드시 전달됩니다. 저를 도와준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인 이토 시오리(32)가 25일 오후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 7년간의 싸움을 돌아보며 소회를 밝혔다. 도쿄고등재판소는 이날 이토가 자신을 성폭행했다며 야마구치 노리유키 전 <티비에스>(TBS) 방송 기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위자료 등 330만엔(약 3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9년 12월 1심에 이어 2심도 이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토의 인생을 뒤바꾼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15년 4월이었다. 언론인 지망생이던 이토는 당시 티비에스 방송 워싱턴지국장이던 야마구치가 잠시 도쿄에 머물 때 만나 저녁 식사를 했다. 술을 조금 마신 상태에서 이토는 의식을 잃었고, 야마구치가 묵던 호텔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이토는 “사과를 받고 싶다”고 전달했지만, 돌아온 건 ‘그런 적이 없다’는 발뺌이었다.

결국 경찰 신고로 이어졌고, 그 뒤 이토는 언론계에서 일할 수 없을 것이라는 협박부터 어떻게 성폭행을 당했는지 인형으로 재연하라는 요구에까지 응해야 했다. 여러 증거를 제출했는데도 검찰은 2016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가해자로 지목된 야마구치는 아베 신조 당시 총리를 주인공 격으로 등장시킨 <총리>라는 책을 쓰는 등 아베 전 총리와 가까운 기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현재는 티비에스를 퇴사했다.

이토는 일본의 법과 사회 시스템이 성범죄 피해자들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2017년 5월 기자회견에서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일본 성폭력 피해자 중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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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인 이토 시오리가 2019년 12월18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승소’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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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재판부는 이토의 호소에 응답했다. 재판부는 이토가 피해 직후 친구, 의사, 경찰에게 자신의 상황을 반복해 호소하는 등 사실 관계에 대해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진술을 하고 있으며, 허위 진술을 할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야마구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토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이 제 인생에 준 영향은 상상 이상이었다. 만약 오늘 패소하면 일본에서 살 수 없게 된다는 두려움도 컸다. 그렇지만 목소리를 높였던 것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이토는 도중에 감정이 북받쳐 울먹이기도 했다. 이토는 “(법무성이 진행하는) 형법 개정 검토에서 성관계에 대한 동의 여부가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게 일어난 일이 법적으로 확실하게 심판받는 세상이 올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쓰노다 유키코 변호사는 <마이니치신문>에 “이토는 ‘피해자 에이(A)’가 아닌 ‘여기에 있는 실재의 인물’로서 자신의 피해뿐 아니라 사회나 사법의 문제를 호소했다. 성폭력을 숨겨온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현재 이토는 프리랜서로 해외 매체에 영상 뉴스와 다큐멘터리 작품을 내보내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야마구치는 재판 뒤 “전혀 납득할 수 없다”며 최고재판소에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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