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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우크라이나 "러시아 걱정 말고 자자"…8년 내전에 무뎌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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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위치한 러시아 군대의 로켓 발사기에서 발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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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국경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경쟁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당장 쳐들어오는 건 아니다. 공포를 조장하지 말라”고 했다.



우크라 국방장관 "짐 싸지 말고 푹 자라"



25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과 뉴욕타임스(NYT)는 미국‧나토가 러시아의 침공을 가정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다른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우크라이나 고위 관료들은 “러시아의 위협은 사실이지만, 전쟁이 임박한 건 아니다”며 “현재의 공포는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CNN 인터뷰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직원 가족을 철수시킨 것은 시기상조”라며 “미국의 결정은 우크라이나 내부에 공포를 퍼뜨리고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 뿐”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도 이날 우크라이나의 129개 외국 공관 가운데 미국·영국·호주·독일 등 4개국 공관만 가족 철수를 발표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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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외무 장관 드미트로 쿨레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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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은 자국 ICTV에 출연해 “지난해 봄 상황과 달라진 게 없다. 공포를 퍼뜨리지 말라”고 말했다. 이어 의회에선 “걱정 말고 잘 주무시라. 짐 쌀 필요도 없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회의 의장도 “일부 서방 국가와 언론 매체가 지정학적 목적을 위해 위험을 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장관들은 발언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9일 대국민 연설에서 “새로운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러시아는 지금껏 하던 대로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 등의 대사관 철수 결정에 대해 소셜미디어에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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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드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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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미국-우크라, 메시지 단절 있다"



우크라이나 정보국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최소 12만7000명의 러시아 병력이 국경 3면을 빼곡히 포위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다음 달 벨라루스와 합동 군사훈련을 한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벨라루스-우크라이나 국경에 추가로 배치 중이다.

NYT는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타격할 거리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고 있다고 보는데,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은 (러시아군 국경 배치의) 의미를 궁금해하는 것 같다”며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메시지 단절’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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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보리스필 공항에 도착한 미국 지원 무기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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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위기의 일상화’를 지적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지속해서 러시아와 갈등 상황에 노출된 우크라이나가 위협에 둔감해졌다는 시각이다. 우크라이나는 동부 지역에서 분리주의자와 8년간 대치 중이다. 또 이 내전으로 지금까지 1만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무슨 행동을 하든 동요하지 않고 조용히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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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3면 포위한 러시아군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로한 컨설팅·뉴욕타임스]





야당 "당장 군대 동원해야", 국민 "직접 막겠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의 ‘고요한 대응’을 모든 국민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NYT는 전했다. 야당 지도자들은 지난 22일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침착하라는 요구는 그만두고 전쟁에 대비하라”고 비판했다.

야당 의원과 전직 대통령‧총리‧외무장관 등은 성명서를 통해 “대통령은 시시각각 우크라이나를 옥죄어 들어오는 러시아의 치명적인 위협을 인정하고, 이에 맞설 군대를 동원하라”고 촉구했다. 아르세니 야체누크 전 우크라이나 총리는 “젤렌스키는 지지율 하락이 두려워 국민을 안정시키려는 것일 뿐”이라며 “하지만 러시아가 침공하면, 다음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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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전투 기술을 익히기 위해 나무로 만든 모형 소총을 들고 훈련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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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우크라이나 국민은 스스로 전투부대를 조직하는 중이다. 이들은 정규군이 패퇴할 경우, 게릴라전을 통해 나라를 지키겠다며 나섰다. 은퇴한 교사인 류드밀라 슬루사렌코(73)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행정부는 러시아의 위협을 경시하며 손을 놓고 있고 푸틴을 저지하겠다는 쪽은 서방국뿐”이라고 “진짜 침공이 시작되면 우크라이나 국민이 뭉쳐 막아낼 것”이라고 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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