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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실패한 1년’ 평가 자극됐나 힘 빼는 공수처… ‘조건부 이첩’·‘선별 입건’ 포기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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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진욱 공수처장./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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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규원 검사 등 사건을 계기로 검찰과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공수처장의 ‘공소권 유보부 이첩’(조건부 이첩) 권한을 사실상 포기했다. 또 처장이 고소·고발된 사건 중 수사할 사건을 정해 입건하는 ‘선별 입건’ 제도도 없애기로 했다.

잇따른 정치적 중립성 논란과 공수처의 무능에 대한 정치권과 법조계의 비난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26일 공수처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이하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먼저 처장이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하면서 수사 완료 후 사건을 다시 공수처로 이첩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규칙 제25조 2항 단서 및 규칙 제14조 3항 1호 나목과 다른 수사기관의 수사절차 진행 중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규칙 제24조 3항을 모두 삭제했다.

이들 규칙은 공수처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가진 사건의 경우 검찰에 사건을 이첩하면서 기소권을 유보할 수 있도록 한 조항들로 ‘공수처법 해석상 조건부 이첩이 가능한지’를 놓고 공수처와 검찰이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을 주장하던 와중에 공수처가 사건사무규칙을 제정·공포하면서 의도적으로 넣었던 조항들이다.

문제의 발단은 ‘김학의 불법출금’에 연루된 이 검사 사건이었다. 수원지검에서 사건을 이첩받은 공수처는 다시 사건을 수원지검으로 이첩하면서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최종 판단할 테니 수사를 마친 뒤 사건을 다시 공수처로 송치해달라’는 조건부 이첩을 했다.

하지만 수원지검이 ‘듣도보도 못한 해괴망칙한 논리’라고 반발하며 자체 수사를 마친 뒤 이 검사를 재판에 넘기면서 공수처와 검찰의 갈등은 점점 심화됐다. 이 검사는 재판에서 ‘공수처가 기소해야 될 사건을 검찰이 기소했기 때문에 공수처법에 위반된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수처는 규칙에 명문 규정을 넣어서 사태를 해결하려 했지만 검찰이 따르지 않고, 법원마저 공수처 편에 서지 않으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조항들이었다. 하지만 공수처가 스스로 이들 조항을 삭제하면서 기존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은 의미가 적지 않다.

공수처는 최근 ‘공수처법 주석서’를 발간했는데 주석서에는 공수처장이 검찰에 수사권한만을 분리해 이첩하는 조건부 이첩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담겼다. 물론 공수처는 주석서 내용이 공수처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업무 수행에 참고하기 위해 주석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던 만큼 이번 조치는 다소 이례적이다.

공수처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조건부이첩이 필요하나, 다른 수사기관과의 협력적 관계 구축 등을 위해 그동안 검찰과 갈등 요인이 된 조건부이첩 문제는 조건부이첩을 명문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이나 향후 사법부의 판단 등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한편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제기됐던 ‘선별 입건’ 제도도 폐지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공수처는 접수된 사건을 조사분석 단계를 거쳐 처장이 직접 입건 여부를 결정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관련된 사건을 4건이나 입건하면서 편향성 시비가 일기도 했다. 개정안은 검찰이나 경찰과 마찬가지로 모든 고소·고발 사건이 접수와 동시에 자동으로 입건되도록 했다.

또 개정안은 경찰이 판·검사 등을 수사할 때 신병 확보를 위한 체포·구속영장을 검찰이 아닌 공수처에 신청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 규칙 제25조 3항도 삭제했다. 역시 검찰이 반발했던 조항이다.

공수처는 다만 압수수색 영장이나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 등 수사를 위한 허가서는 현행 그대로 경찰이 공수처를 통해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공수처는 개정 규칙에 대한 의견을 오는 3월 7일까지 수렴한 뒤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1월 출범 이후 1년간 제기된 정치적 중립성 논란, 공수처의 무능에 대한 정치권과 법조계의 비난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공수처는 이성윤 서울고검장 황제조사 논란부터 시작해 최근 무분별한 통신조회, 위법한 압수수색까지 부족한 수사 실적과 정치 편향성 등 이유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출신으로 공수처 출범에 크게 기여한 바 있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마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공수처의 지난 1년은 거의 실패했다. 아마추어 수사, 인권침해적 수사에 우려가 깊다”고 밝혔을 정도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21일 1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고 미흡했던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면서 중립성·독립성 논란이 있는 선별 입건 제도를 개정해 입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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