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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옛말… 녹용도 캡슐로 복용하는 시대 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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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재 경희대한방병원 병원장 인터뷰

동아일보

정희재 경희대한방병원 병원장은 한의가 시대에 맞춰 표준화, 대중화에 힘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경희대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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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이 쓰고 먹기 번거롭다는 것은 옛말이다. 한방 목캔디로 불리며 기관지염 환자에게 인기가 높은 ‘청인유쾌환’, 한약을 진액으로 추출해 만든 가루형 과립제와 간편한 캡슐 한약까지 경희대한방병원은 한약물연구소와 공동탕전실을 운영하며 한방 대중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새로운 특화 전략으로 한의학의 미래를 그리는 정희재 경희대한방병원 병원장을 만났다.

△홍은심 의학기자=한약물연구소에서는 무슨 일을 하나.

△정희재 경희대한방병원 병원장=한약의 제형을 개발해 새로운 형태의 복용약을 만든다. 달이고 끓이던 기존 한약을 분말이나 캡슐 형태로 만들어 환자가 복용하기 편하게 한다. 제형 개발은 한약의 표준화, 대중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시도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다음은 신약 연구와 한방의 산업화를 위해 매진할 계획이다.

△홍 기자=한약의 제형이 바뀌면 효능이나 효과가 감소하지 않을까.

△정 병원장=한약물연구소는 오랜 경희대 한방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시설을 갖추고 성분 분석과 동물실험, 임상시험을 통해 효능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있다. 현재 과립이나 캡슐, 캔디, 젤리 같은 제형 변화가 기존 한약의 약효와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 중이다. 물론 환자에 따라서는 여전히 따뜻한 액체 형태의 한약을 선호하는 분들도 있다.

△홍 기자=새로운 형태의 한약 제제를 만드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정 병원장=제형 개발은 환자들이 좀 더 편하고 간편하게 한약을 복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처음 시도하는 만큼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약재가 많이 들어가는 한약을 복용하기 편한 알약 형태로 만들려고 하니 약효를 내기 위해서는 한 번에 10알 이상씩 복용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알약을 먹어야 하는 것도 환자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한약을 캡슐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 번에 너무 많은 약재를 넣을 수 없다. 약효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약재의 가짓 수를 줄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입안에서 천천히 녹으면서 약효를 내는 트로키제를 만들었더니 여름에 더울 때는 상온에서 바스러지는 일도 있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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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탕전실: 오랜 임상과 제형 개발을 통해 안전하고 과학적인 표준 한약제제 개발을 선도해 온 경희대한방병원은 이를 전체 한의계와 공유하고 국내 한방 진료의 선진화를 도모하고자 공동탕전실을 운영하고 있다. 경희대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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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기자=다음 목표는 신약 개발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

△정 병원장=캔디 형태의 청인유쾌환을 구상한 해가 1996년이고 상용화된 지는 벌써 10여 년이 훌쩍 넘었다. 한방 분야에서 캔디 형태로 한약을 만든 건 기침에 효과가 있는 ‘청인유쾌환’이 최초였다. 제과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제조 과정 하나하나를 익히면서 계절에 따른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공한 제품이다. 이 덕분에 아이들도 쉽고 간편하게 한약을 접할 수 있게 됐다. 항암 치료 등으로 입이 마르는 암 환자를 위한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은 ‘한방 가그린’도 개발했다. 효과가 꽤 좋다. 또 젤리 제제의 한약은 치아가 약한 어르신들도 쉽게 복용할 수 있다.

신약 개발은 전에 없던 새로운 약재를 개발한다기보다 신약의 형태로 갈 수 있는 제제를 연구하고 개발한다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가령 녹용을 지금처럼 꼭 달여서 먹는 게 아니라 한약을 복용할 때 녹용 캡슐 하나를 톡 넣어 먹는 방법이다. 한방 시장이 아직은 현대의학처럼 넓지 않지만 제약사 입장에서는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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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물연구소: 한약물의 과학화와 현대화 연구로 동서의학의 기반을 조성하고 한약물 요법의 시스템화를 이뤄 임상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환자 접근성과 요구를 반영한 제형 개발을 통해 차별화된 기능성 한약과 식품을 개발 중이다. 한약물의 안전성 확보와 약효 검증 방법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등 고부가가 치 한방 신약 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경희대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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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기자=그런가 하면 경희대한방병원에서 운영하는 공동탕전실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곳인가.

△정 병원장=탕전실은 한약을 만드는 곳이다. 전국에 수많은 한의원이 있지만 모두 탕전실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약재 검증과 더불어 시설도 필요하고 한약 냄새에 대한 민원도 많기 때문에 일반 한의원에서 갖추기가 쉽지 않다. 국내에 공동탕전에 관한 법안이 통과되면서 하나의 공동탕전실을 많은 한의원이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경희대한방병원 공동탕전실은 대학한방병원(동의대, 부산대 등)을 포함해 현재 전국 160여개 한의원이 이용하고 있다. 사업 목표는 1000개 한의원과 공동탕전 네트워크를 맺는 것이다. 공동탕전실에서 만드는 한약의 효능과 품질이 우수하다는 것은 이미 안팎으로 유명하다. 경희대 한방이 쌓아온 전통과 노하우의 결정체를 우리만 쓰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다른 한의원도 동일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 공동탕전 사업이 지닌 진정한 의미다. 한약물연구소의 오랜 실험과 임상 논문을 통해 성공하고 검증된 우수한 약재들을 사용한다. 과립제, 환제, 캡슐제, 트로키제, 젤리제 등 전국 일선 한의사의 처방을 각각의 제형에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홍 기자=경희대한방병원 병원장으로서 앞으로 계획과 목표가 있다면….

△정 병원장=한약물연구소와 공동탕전 사업은 국내 최고 수준의 경희대 한의대와 한방병원 구성원들의 시너지가 모인 플랫폼이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환자들의 질환 양상과 요구도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당연히 한의도 처방을 비롯해 많은 부분이 달라져야 한다. 경희대한방병원은 21세기에 맞는 한방병원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기존 의료분과 중심에서 질환 중심으로 변화하고자 한다. 환자들이 한방병원에 내원했을 때 어느 분과로 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 없이 류머티즘, 비만, 노인질환, 한방 미용 등 특정 장소에서 질환을 중심으로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바로 연결하는 형태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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