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김월회의 행로난]‘사회적 젊음’의 정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곳곳에서 청년, 청년 한다. 언론에선 ‘이대남’, ‘이대녀’가 연신 운위된다. 2030세대의 표심이 대통령 당선을 좌우한다며 시끌시끌하다. 마치 청년의 전성시대인 양 싶다. 물론 그게 아님은 온 우주가 알고 있다. 호명하는 이들이 행세하는 무리일 수는 있어도 잇따라 호명된다 하여 잘나가는 건 분명 아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든 청년을 품음은 정치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청년 정치가 상수여야 한다는 얘기다. 청년을 품음은 젊음을 품는다는 것이고, 젊음을 품음은 미래를 품는다는 것이다. 이는 젊음이 미래를 빚어내는 힘이자 원천이라는 의미다. 청년을 품는다고 함은 이러한 젊음을 품는다는 뜻이고, 이것이 청년 정치의 참된 실상이다.

이러한 젊음은 나이와 무관하다. 생물학적 젊음보다는 ‘사회적 젊음’이 미래를 빚어내는 동력이자 원천이기에 그러하다. 나이는 젊지만 정신이 쇠락한 청년도 있다. 이들의 젊음으로는 낡음을 일신하고 병폐를 혁파하며 진보를 일궈내지 못한다. 그것은 잘해야 노숙(老熟)으로 이어질 뿐 갱신과 변이, 생성으로 새로운 흐름을 빚어내지는 못한다.

청년이 올봄 대선의 관건으로 부상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낡음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낡음의 극복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우리 주변의 낡은 경계만 봐도 그렇다. 선진국으로 평가되는 마당이지만 우리 사회의 상당 부분은 중진국과 선진국의 경계에 걸쳐 있다. 우리 의식과 감각, 상상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전쟁·대결의 패러다임과 평화·공영의 패러다임 경계에서 맴돌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이 삶을 근본부터 바꾸고 있음에도 우리 일상의 상당 부분은 아날로그 문명과 디지털 문명의 경계를 오가고 있다. ‘탄소 제로’가 지구의 미래임이 확실해졌음에도 우리는 개발과 공존의 경계에서 주춤대고 있다.

낡음을 넘어선다는 건 이렇듯 말처럼 쉽지 않다. 사회적 젊음이 요청되는 이유다. 젊음은 낡음을 가로지를 수 있는 능동성과 열정을 본성으로 품고 있다. 이는 ‘신생(新生)’, 그러니까 새로움의 생성으로 발현된다. 생물학적 청년이라 하여 다 신생의 젊음을 품은 건 아니다. 정치가 젊음을 품는다고 할 때 그 실체는 어디까지나 이러한 사회적 젊음이어야 한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RPG 게임으로 대선 후보를 고른다고?
▶ [뉴스레터]교양 레터 ‘인스피아’로 영감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