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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안전수칙 준수했는데 사고 났다면…CEO 책임 물을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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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황인혁 경제부장

매일경제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본청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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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를 잔뜩 긴장시키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 시행된다. 이 법은 산업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대표이사가 법에 따른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대표이사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 법이다. 일부 기업이 "1호가 되지 말자"면서 사업장 가동을 일시 중단하는 현실은 중대재해법의 파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매일경제가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났다. 안 장관은 기업의 경영책임자들이 안전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적극 투자한다면 긍정적 효과가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 시간 남짓 진행한 인터뷰에서 "처벌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는 없다"며 시간이 지나면 안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대재해법이 27일 시행된다. 현장 준비 상황은 어떤가.

▷지난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는 828명으로 전년 대비 54명 감소했다. 안전보건에 대한 산업계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최근 한 중소기업 사장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30년간 회사를 운영해왔지만 업계가 요즘처럼 안전관리에 관심이 높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고 하더라. 듣고 보니 그렇다.

―경영책임자의 노력으로 산재가 사라지면 좋겠지만 경영책임자 통제 밖에 있는 업계 관행이 있다. 억울한 처벌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나 역시 중대재해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광주 아파트 사고 같은 대형 사고가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계기로 안전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경영책임자들은 산업안전보건 분야를 '비용'으로 인식해왔다. 이제는 이를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원청이 하도급 업체를 선정하는 기준이 '최저 가격'이었다면 이제는 하도급 업체가 산재 예방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중대재해법은 산업현장에 이런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극약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장에서는 '경영책임자의 의무' 부문이 모호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한데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고용노동부는 체크·컨펌·클린(Check·Confirm·Clean)을 줄여 '3C'라고 표현한다. 먼저 체크는 과거 사고 이력을 파악하고 현장 의견을 청취하는 등 사업장에 유해·위험 요인이 있는지 점검하라는 것이다. 또 전문가 진단 등을 통해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컨펌)하고 확인된 유해·위험 요인을 제거(클린)해야 한다. 특히 경영책임자가 개별 현장을 직접 점검하라는 취지가 아니라 회사 내에 이 같은 유해·위험 요인을 모니터할 수 있는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해 보고를 받고 체크하라는 것이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경영책임자가 이 같은 의무를 다했다면 처벌도 없다.

―안전보건 확보 의무와 관련해 어느 정도면 충분한 것인지 컨센서스가 있나. 예를 들어 달라.

▷아직 없다. 기업 업종·규모별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예를 하나 들자면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했을 경우 경영책임자가 근로자에게 안전모를 제공했는지, 작업할 때 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지도했는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근로자의 공사장 출입을 금지했는지 등이 경영책임자의 의무 이행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조치를 취했는데도 사고가 발생했다면 경영책임자에게 중대재해법상 책임을 묻기 힘들다.

―기업들이 중대재해법 처벌을 피하기 위해 심혈관질환 등 기저질환을 가진 구직자를 채용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까지 감지되는데.

▷무조건 기업의 책임은 아니라고 본다. 근로자가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 고혈압, 당뇨, 개인 생활습관 등 다양한 요인이 사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판단하기 위해 의료 전문가들이 포함된 수사심의위원회를 두는 것이다. 기업들이 지나치게 우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산업계에서는 누가 '1호'가 될 것인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과도한 수사가 이뤄지진 않을지 우려가 크다.

▷법 시행 이후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는 사례가 발생하면 수사가 진행된다. 그러나 첫 사례니까 더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2~3년이 지난 후 소극적으로 수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것이다. '혐의도 없는데 무리하게 수사했다'는 비난은 정부도 원하지 않는다.

―한국 기업의 해외 사업장도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가.

▷국내 기업 소속으로 본사가 실질적으로 관할하는 해외 사업장은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된다고 본다. 하지만 미국 법인이나 중국 법인처럼 그 나라에 설립된 별도 법인이라면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또한 그 나라 형법이 속지주의냐 속인주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재해자가 한국인이냐 외국인이냐에 따라 법 적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산재 사망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어느 정도인가.

▷지난해 한국의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재로 인한 사고 사망자 비율)은 0.43퍼밀리어드로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여전히 독일이나 일본 등 선진국과 비교해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고용부는 올해 산재 사고 사망자 수를 700명대 초반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영책임자들이 얼마나 경각심을 갖고 안전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안전 선진국'에 진입하는 시점도 달라질 것으로 본다.

―법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완 입법 계획이 있는가.

▷시행 전부터 법 개정을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 중대재해법은 여야가 합의해 만든 법이다. 고용부가 나서서 법을 고치긴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법이 시행되면 문제점도 하나둘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 게 쌓이면 올해 말이나 내년쯤 보완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인턴 뽑는데 '인턴경력' 내라니…정부가 먼저 일자리 경험 늘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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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고용 상황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지난해 12월 고용동향을 보면 취업자가 77만3000명 증가하면서 9개월 연속 50만명 이상 증가했고,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20년 2월 대비 100% 이상 고용이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3% 내외가 된다면 취업자 수가 약 28만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여전히 엄중하고 불확실성이 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지표상으로 좋은 추이를 보여도 실상은 다른 경우가 있다. 특히 청년 취업 문제가 그렇다.

▷그렇다. 청년의 경우 지표상으로는 좋게 나타나지만 그들이 취업한 일자리가 모두 '좋은 일자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청년 취업 문제를 다루면서 정말 많은 청년을 만나 봤는데 대기업과 공공기관 선호도가 높았다. 그런데 기업에서 신입 공채를 줄이고 수시채용, 경력채용을 늘리면서 청년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심지어 기업 인턴을 지원한 청년에게 인턴 경력을 묻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기업들이 채용 문턱을 다소 낮출 필요가 있고 동시에 정부도 취업 정보 제공, 일 경험 기회 제공 등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제와 비정규직이 늘면서 고용 질이 하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고령인구가 증가하면서 적은 시간에 비정기적으로 일하는 수요가 늘었고, 플랫폼·비대면 일자리도 증가하고 있다. 고용의 질이 하락하는 것이라기보다 한국의 고용 형태가 다양화돼 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설 명절을 앞두고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임인년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다 돼 간다. 무엇보다 올해는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코로나19 종식과 일상 회복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또 노동자분들과 경영자분들이 계신 일터에도 건강과 활력이 넘치기를 기원한다.

▶▶ 안 장관은…

△1963년 강원도 홍천 출생 △춘천고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행정고시 33회 △2009년 8월 노동부 안전보건정책과장 △2011년 1월 고용노동부 대변인 △2014년 4월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 △2016년 1월 고용노동부 서울청장 △2017년 2월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 △2017년 9월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 △2019년 1월 고용노동부 기획조정실장 △2021년 5월 고용노동부 장관

[정리 =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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