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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아침햇발] 오미크론 태풍, 희망과 절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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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미크론 변이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25일 신규 확진자 수가 8571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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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24일치 이 지면에 ‘바이러스의 시간표는 바이러스가 정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델타 변이에 돌파 감염까지 번번이 코로나19에 뒤통수를 맞고 있는 형편이니, 머잖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접고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이는 게 낫겠다는 넋두리였다. 정부가 그달 1일부터 시행한 ‘단계적 일상 회복’ 조처가 위중증 환자 급증으로 좌초할 위기에 놓일 무렵이었다. 정말 코로나19는 끝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며칠 뒤 오미크론 변이가 세상에 존재를 알렸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3번째 변이이자, 델타에 이은 5번째 ‘우려 변이’다.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돌연변이가 32가지나 생겼다는 소식에 다들 아연실색했다. 그런데 좀 묘한 반응이 나왔다. 델타보다 더 센 놈이 나타났다며 각국이 앞다퉈 국경을 틀어막고 있는 와중에, 일부 감염병 전문가들 사이에서 오미크론이 ‘성탄절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낙관론이 제기된 것이다. 오미크론이 전파력은 강하지만 병독성은 낮아 코로나19 팬데믹의 종식을 앞당길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성탄절 선물은 없었다. 오미크론 변이가 급속하게 퍼지면서 미국과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연일 최대 확진자 기록을 갈아치웠다. 확진자 급증으로 입원 환자가 늘면서 의료체계에도 과부하가 걸렸다. “확진자 쓰나미가 전세계 보건의료 시스템을 압도하고 있다”(WHO)는 탄식도 나왔다. 이에 따라 상당수 나라가 방역의 고삐를 조였다. 네덜란드의 경우, 지난달 중순부터 술집, 식당, 카페 등의 문을 닫는 강력한 봉쇄에 나섰다. 지난해 7월 가장 화끈하게 방역 규제를 풀었던 영국마저 마스크 착용 의무화, 백신 패스 등 강화된 방역 조치를 담은 ‘플랜 비(B)’를 가동했을 정도다.

전세계가 오미크론에 긴장하는 이유는 가공할 만한 확산 속도 때문이다. 국제 통계 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 자료를 보면, 미국의 하루 확진자는 지난 15일 80만명(7일 이동 평균값 기준)으로 정점을 찍기까지 한달 새 6.7배나 늘었다. 지난 5일 정점(18만명)에 이른 영국도 한달 새 3.9배가 늘었다. 지난해 연말까지 300명대로 안정세를 유지하던 일본은 이달 들어 오미크론 유행이 본격화한 이후 3주 만에 100배 넘게 확진자가 폭증했다.

확진자 규모만 보면 재앙에 가깝지만, 낙관적인 전망에도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중증도가 델타 변이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는 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치명률은 최근 한달 새 1.15%에서 0.25%로 급감했고, 영국도 0.22%에서 0.18%로 낮아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오미크론 유행을 겪고 있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치명률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물론 치명률이 낮다고 안심할 일은 결코 아니다. 피해가 작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짧은 기간에 워낙 빠르게 감염이 확산되다 보니, 중환자와 사망자의 절대적인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 미국의 하루 사망자 수는 최근 한달 새 1300명대에서 2000명대로 늘었다. 급증하는 환자를 감당하지 못해 의료체계가 마비되고, 확진자 접촉에 따른 자가격리가 늘어 사회 필수 기능을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이 빚어졌다.

결국 오미크론의 위험성은 병독성이 아니라 확산 속도에 있는 것 같다. 오미크론의 이런 특징은 양면성을 갖는다. 우선, 전파 속도가 빠르다 보니 유행의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다.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전례를 보면, 대략 한달 남짓인 듯하다. 이미 영국은 지난달 중순부터 적용한 ‘플랜 비’를 오는 27일부터 해제하기로 했다. 오미크론이 코로나19를 ‘엔데믹’(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풍토병)으로 바꿔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그러나 유행 확산부터 정점까지의 시간이 짧다는 것은 그만큼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환자와 사망자 급증, 의료체계 붕괴, 자가격리 폭증에 따른 업무 마비 등이 그 예다.

오미크론의 피해를 줄이려면 방역·의료 체계의 재정비와 함께 백신 접종률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과 영국 두 나라를 비교해 보면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유행이 정점에 이르렀을 무렵 미국의 100만명당 중환자실 입원 환자 수는 77명으로, 영국(13명)의 6배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3차 접종(부스터샷)에서 원인을 찾는다. 영국의 3차 접종률은 55%인데 비해, 미국은 25%에 머물고 있다. 최근 국내 연구에서도 3차 접종을 하면 오미크론에 대한 중화능(바이러스를 무력화할 수 있는 능력)이 최대 29배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

오미크론 유행이 우리나라에선 어떤 양상을 띠게 될까? 3차 접종률(49%, 60살 이상은 85%)이 비교적 높은 것은 희망적인 요소다. 국민들이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한다는 점도 확산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기존 감염자 수가 다른 나라와 견줘 훨씬 적다는 것은 위험 요소다. 재감염자는 중증도가 큰 폭으로 낮아진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중증화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100만명당 누적 확진자 수는 1만4000여명으로, 영국(23만여명)의 16분의 1밖에 안 된다.

오미크론과의 싸움에서 관건은 가공할 확산 속도를 누그러뜨려 확진자 발생 곡선을 최대한 완만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고위험군 피해를 최소화하고 의료체계 등 사회 기능이 마비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어쩌면 ‘경험해보지 못한’ 규모의 감염이 몇달간 이어질 이번 고비가 진짜 ‘위드 코로나’(코로나와 공존)의 시험대일지 모른다.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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