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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자의 시각] 감사원에 ‘짠맛’ 느껴지지 않는 요즘… “덜 감사하니 영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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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감사원 전경./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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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직전까지 정치권 주목을 받은 감사(監査)는 청와대 업무 추진비 사건이었다. 청와대 사람들이 2017년 5월부터 1년여간 주말·공휴일·심야 시간에 일식집·주점·백화점·영화관 등에서 업무추진비 총 2억5000만원을 쓰고 다녔다는 지적이 2018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제기돼 감사원 감사로 이어졌다. 당시 야당 의원이 정부 재정 정보 시스템에서 확보한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제기한 문제여서 다들 감사 결과가 세게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5개월 만에 나온 발표 결과는 허탈했다. 감사원 A 감사관은 감사 결과 발표에서 “대통령비서실 직원들이 1년 4개월간의 업무추진비 사용 2461건을 전수조사했지만, 결과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당시 발표 현장에 있었는데, 이 같은 발표에 일부 기자들 사이에선 “헐, 뭐야” “완전, 봐주기 감사구먼”이란 말이 새어나왔다. 많은 언론이 이 감사를 ‘물[水] 감사’ ‘청와대 대변 감사’라며 비판했다.

한 감사원 관계자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A 감사관이 문재인 정부 출범 때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파견 가서 분과 위원장이었던 민주당 박범계 의원과 연을 맺은 걸 참고하라”고 귀띔했다. 이후 A 감사관은 석 달 뒤 제2사무차장으로 영전했고, 다시 5개월 만에 제1사무차장으로 영전했다. 1년 뒤인 2020년 11월 감사원 원장 다음의 최고위직인 사무총장이 됐다.

B감사관의 영전도 한동안 관가에서 회자됐다. 그는 2019년 12월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을 맡았지만 제대로 감사를 하지 못했다. 그의 감사는 감사위원회에 올라갔지만 부실하다는 이유로 ‘보류’ 처분됐다. 그런데도 그는 이 감사를 마무리짓지 못한 상태에서 다들 가고싶어 하는 선임 보직으로 영전했다. 야당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관련 감사를 적당히 뭉갠 대가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반면, 그를 대신해 월성 1호기 감사를 맡은 유병호 국장은 6개월 만에 산업부가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 위해 원전 경제성을 조작한 혐의를 밝혀내며 감사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유 국장은 지난 10일 감사 부서에서 배제돼 지원 부서인 감사연구원장으로 좌천됐다. 정권을 불편하게 한 감사에 대한 인사 보복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본인이 지원한 것”이라며 발끈했지만, 감사원 안팎에선 “지원당한 것을 저렇게 포장한다”며 혀를 찼다. 감사원은 최근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에 대한 공익 감사 청구도 기각했다. “덜 감사해야 영전한다”는 걸 보아온 탓일 것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인 감사원에 ‘짠맛’이 느껴지지 않는 요즘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길가에 버려져 밟힌다는 격언이 있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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