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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IT서비스 일감 개방하자…정부 으름장에 삼성·SK 등 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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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27일 간담회서 '자율준수기준' 소개하고 이행권고

"대기업 계열 70여 IT서비스 발주사·수행사에 도입 독려"

공정위 "강제성·불이익 없다"…기업들 "규제 더 강화될 것"

과기정통부 없이 기준 논의…IT서비스 특수성 반영 의문

IT서비스협 "내부살림 업무…투자위축 등 역효과 우려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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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조만간 각 그룹의 내부 정보시스템 구축과 유지보수 사업을 외부 기업에 '적극적으로 발주해 달라'는 취지의 권고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사실상 삼성SDS·LG CNS·SK㈜ C&C 등 시스템통합(SI) 자회사 몫을 줄여 다른 IT서비스 기업에 넘기라는 얘기다. 기업들이 괜한 속앓이를 할 판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오는 27일 'IT서비스 공정거래 및 상생협력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선 작년부터 만들어 온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회사의 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기준'을 설명한다. 삼성·SK·LG 등 주요 기업집단의 IT서비스 사업 발주사와 수행사를 대상으로 이행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 기준은 그룹의 발주기업이 단지 자기 계열회사라는 이유로 거래상대방(IT서비스 사업 수행사)을 결정하지 말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선정하라고 요구한다. 효율성·보안성·긴급성이 요구되는 사업에는 종전대로 내부거래를 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해당 IT서비스 사업의 발주목적, 일반적인 거래구조, 수행가능한 기업 수 등을 따져 그 조건에 맞는 기업과 경쟁입찰·수의계약 등을 진행하라는 것이다.
"주요 공시대상 대기업 70여개사에 자율준수 도입 권고…금융권도 안내할 것"

공정위는 간담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은 현대자동차·롯데·포스코 등 다른 대기업 계열사들 역시 자율준수기준 이행 권고 대상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상협 공정위 부당지원감시과장은 "코로나19 때문에 소수 기업에만 간담회 참석을 요청했지만 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기준은 주요 대기업 계열(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상의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그룹 소속) 70여개사에 반영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독려할 계획"이라며 "(일반 IT서비스기업 대비 내부거래 비중이 월등히 높은) 금융업종같은 경우에도 이런 자율준수기준을 사용해 달라고 추후 안내 공문이나 협조요청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 기준이 법적인 강제성이나 불이행에 따른 제재수단이 없는 '연성규범'이자 '권고사항'일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권고 대상이 된 기업들은 결국 일감개방 '이행점검'이나 '비율 관리' 등과 맞물려 이행을 강제할 규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실제로 공정위는 기존 하도급분야 상생정책 중 하나인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 제도에 IT서비스의 일감개방 실적을 감안한 가산점을 반영하는 등 연동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요 대기업 그룹 발주사는 민감한 내부정보와 기밀 유출 부담이 없는 IT서비스 계열사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요도가 높아진 디지털전환 혁신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IT서비스 사업을 외부에 개방하라는 공정위의 권고는 이같은 흐름과 상반된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분야라면 일감개방을 쉽게 할 수 있겠지만 IT서비스는 일종의 내부살림을 맡는 것이라 정부의 권고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며 "공정위의 자율준수기준에 들어가는 내용 중 일부는 기업에 의무로 부과된 '공시'와 연동돼 있고, 자율준수에 따라 기존 평가제도의 가산점을 주는 방식도 도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IT서비스 사업을 수행하지 않는 한 중견 패키지 소프트웨어(SW) 기업의 관계자도 "그룹의 IT서비스사업은 민감한 정보와 보안성이 요구되는 정보시스템의 구축·운영을 맡기는 것"이라며 "소모성 자재구매대행(MRO) 사업처럼 접근해서 개방할 수 있는 일감이 많지 않을뿐더러 개방하더라도 그에 걸맞는 역량을 갖춘 중견·중소 IT서비스 기업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3년 전부터 추진된 공정위 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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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일감개방 유도 정책 자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정부·산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미 작년까지 IT서비스 사업 발주 기업 대상으로 자율적인 일감개방을 논의하는 자리를 4~5회 마련했다. 자율적 일감개방 대상 업종에 IT서비스를 포함시키는 방안이 2021년부터 지속적으로 논의돼 왔다는 의미다.

공정위는 지난 1월 11일 발표된 공정위 2022년도 업무계획을 통해 "적극적인 일감개방 유도 필요성이 있는 분야 발굴을 위해 시장 현황과 거래관행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물류·IT서비스 일감개방 노력이 시장에 확산될 수 있도록 업계와 소통·홍보"를 지속 추진한다고 밝혔다. 또 핵심 추진과제인 "대기업집단의 건전한 지배구조 및 거래질서 정립"을 위해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물류·IT서비스 업종에 대한 내부거래 정보공개를 매출뿐아니라 매입까지 확대해 거래관행 개선을 유도"하겠다고 예고했다.

지난 2019년 12월 공정위는 중소벤처기업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를 열고 '대·중소기업 거래관행 개선 및 상생협력 확산 대책'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당시 IT서비스 업종을 겨냥하진 않았지만, 상생협력 증진 방안 가운데 하나로 "대기업의 주요 분야 일감 개방도 및 비계열사 거래로 전환한 실적을 공정거래 협약평가에 반영"한다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정부가 자율적 일감개방이란 접근 방식을 도출하게 된 배경을 짚어 보면 IT서비스 업종을 주시해 온 공정위의 움직임은 3년 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공정위는 지난 2019년 3월 '대기업집단 계열사와 소속 SI업체간 내부시장 고착화 원인 분석 및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 사업을 발주했다. 이상협 공정위 부당지원감시과장은 관련 문의에 "해당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이번 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기준을 마련했다"고 확인했다.

당시 공정위는 이 사업의 과업지시서를 통해 연구자에게 IT서비스 사업 발주사의 자발적 개선유도 방안과 더불어 "사익편취 예규 제정에 반영할 수 있는 효율성·보안성 항변 관련 사항(법적용 제외 요건 등) 법·제도 개선 방안 제시"를 요구했다. 자율적 일감개방과 별개로 총수가 지정된 대기업집단의 총수일가에 부당이익을 주는 내부거래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금지규정'과 관련 지침을 만들 때도 이 연구 결과를 참고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감개방 자율준수, 시장확대 아닌 투자위축 역효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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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기준 자체는 대기업집단 계열사 간의 거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공정위의 중점과제가 최우선으로 반영된 결과다. 공정위가 물류·IT서비스 분야에 자율준수기준을 우선 권고하려고 한 이유부터가 두 업종이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사의 부당지원과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제한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의심되곤 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27일 공정위 간담회에는 국내 SW산업의 한 영역으로 IT서비스 업종을 규율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사들도 배석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의 박윤규 정보통신정책실장과 조민영 SW산업과장이 참석해 부처에서 마련한 'SW표준계약서'를 각 그룹의 IT서비스 사업 발주사에 소개하고 활용을 독려할 계획이다.

김정삼 과기정통부 SW정책관은 "IT서비스라는 업무 특성상 어려운 점이 있다고 보는데, 무조건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란 것이 아니라 절차적으로 외부 기업도 (수주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고, 기업에서 비핵심 분야로 판단한 업무라면 개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 "이걸 계기로 SW산업과 시장에서 대·중소기업 상생에 도움이 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부처 의견을 공정위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과기정통부는 작년까지 수 차례 개최된 공정위와 각 그룹 IT서비스 사업 발주사의 회의에 공식적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SW산업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공정위의 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기준 내용을 구성하는 과정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공정위의 요청에 따라 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 권고안에 대한 IT서비스 산업계 의견을 모아 전달한 것이 사실상 전부다. SW산업과 IT서비스 업종의 특수성이 반영될 여지가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 전문성이 부족한 공정위에서 섣불리 IT서비스 분야를 규제해 '교각살우'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극단적으로 보면 자율개방이 중견·중소기업의 시장 확대가 아니라 오히려 대기업 계열사의 혁신 투자와 IT서비스 사업 발주를 위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산업 전반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규제도 물론 있지만 (수범자들의) 호응보다 부정적인 반응이 큰 제도를 추진할 경우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주경제=임민철 기자 imc@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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