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30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시작과 끝이 맞물린 신앙과 예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서울 서소문성지박물관 ‘러시아 이콘-어둠을 밝히는 빛’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예수 그리스도, 성모자 등의 아이콘이 있는 성화벽이다. 아래 사진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전에 나온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 이콘 - 어둠을 밝히는 빛’

회화 57점·조각 9점·성물 14점 등
러 정교회 대표 유물 한국 첫 전시

아이콘(이콘, Icon)은 그림이나 상(像)을 뜻하는 그리스어 에이콘(eikon)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리스도, 성모, 성인 등 성경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삶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그림·조각을 뜻한다. 동방정교회의 성스러운 이미지 모두를 일반적으로 아이콘(이콘)이라고 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이 성경을 익히도록 만든 그림·조각이다.

‘러시아 이콘-어둠을 밝히는 빛’전(2월27일까지, 무료)을 주최한 서울 서소문성지박물관은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를 육화적 감성으로 표현한 신앙의 형상”이라고 설명한다.

박물관 자료를 보면, 998년 키예프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동방정교회를 국교로 받아들이며 아이콘의 역사가 시작됐다. 15~16세기 황금기를 맞았다. 17세기는 전환기, 18~19세기는 대중화 시기다.

황금기엔 “역원근법, 황금빛 바탕, 다양한 시기의 사건이 합쳐져 있는 구도 등 중세 아이콘의 규범”을 엄격히 적용하면서도, “금욕적이고 엄숙한 감성을 띠는 비잔틴 아이콘과는 대조적으로, 밝은 색채, 길게 연장된 인체 비례, 사색적인 표정 등을 통해 화려하지만 관조적인 러시아만의 독특한 조형 언어”가 나온다. 전환기에는 서구 영향을 받아 “좀 더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믿음이 투영된” 아이콘이 제작됐다. “인물과 산수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명암법을 적극 활용”하는 서양 화법이 전통 화법과 절충됐다.

19세기 대중화 시기 “러시아에는 아이콘이 없는 곳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러시아의 각 가정과 모든 곳”에 아이콘이 보급됐다. 바로크, 로코코, 고전주의, 모더니즘 등 다양한 사조의 영향을 받았다. 해부학 지식에 따라 인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아이콘도 등장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시대별 흐름을 파악하며 아이콘을 볼만하다. 박물관은 회화 57점, 조각 9점, 성물 14점 등 80점을 ‘15~19세기 시간적 흐름 속에서의 러시아 이콘의 전개 양상’ ‘성인 및 그들과 관련된 일화를 표현한 이콘’ ‘성화벽과 성소’라는 세 가지 주제로 분류했다.

관람객들이 몰린 곳은 성화벽이다. 박물관은 기획소강당에 성화벽을 재현했다. 박물관은 “성화벽은 동방교회 성당의 구조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신자들이 모여 있는 회중석과 성직자들이 전례를 집전하는 지성소를 아이콘으로 장식된 칸막이로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박물관은 러시아 성당을 본떠 성화벽을 만들었다. 예수 얼굴을 그린, 아이콘의 상징적 도상은 ‘만딜리온(아케이로포이에토스)’이다. 이번 전시엔 15세기 버전이 나왔다. 모스크바 러시아아이콘박물관 협조를 받았다. 전시작 80점은 러시아 정교회의 대표 유물이다.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이콘 영향’ 아방가르드 작가전
칸딘스키 ‘즉흥’ 3점 등 선보여

아이콘은 러시아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아방가르드가 이콘의 영향을 받은 것도 유명하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전(4월17일까지, 성인 2만원)에서 그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 49명의 작품 75점을 소개한다. 러시아 국립미술관인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 소장품이 전시작의 중심을 이룬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즉흥’ 시리즈 중 세 점이 나왔다.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대표작 ‘절대주의’(1915)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인’(1913)도 출품됐다. 나탈리야 곤차로바의 ‘추수꾼들’(1911), 미하일 키치긴 ‘과일 수확’(1918)에선 혁명 전 러시아 농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콘이 그랬던 것처럼 아방가르드도 서구 영향을 받았다. 일리야 마시코프의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의 초상’(1913)은 프랑스 야수파의 영향 아래 있다.

이덕형의 책 <이콘과 아방가르드>(생각의 나무)가 두 전시를 아우르는 역사와 분석을 담고 있다. “이콘 속에서 어떤 원시적인 것과 경탄할 만한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러시아 민중 전체의 창조적 감성을 더불어 찾을 수 있었다”(말레비치) 등 아이콘의 영향을 받은 작가와 작품도 깊게 분석한다.

아이콘의 영향은 왜곡, 역원근법, 이미지의 중첩·병렬 같은 아이콘의 탈구상적 기법과 색채 상징 등 아방가르드 조형 언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굵은 윤곽선’도 아이콘 영향을 받은 기법이다. 이덕형은 말레비치의 ‘흰색 바탕 위의 검은 사각형’(1918)을 두고 ‘얼굴 없는 이콘’으로 규정했다. 이덕형은 “(아방가르드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구현코자 하는 전위적 실험을 과거의 유산을 통해 시도할 뿐만 아니라 초월적 성스러움이 사라진 그 자리에 모든 상징적 의미를 삭제한 검은 사각형을 대입하고, 그것을 ‘현대의 이콘’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이콘과 아방가르드는 서로 상반된 모순어법”이다. 이덕형은 “새것은 옛것에 감추어져 있고 옛것은 새것 속에 있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상기하며 이콘과 아방가드르가 시작과 끝이 서로 맞물린 우로보로스(커다란 뱀 또는 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삼키는 형상)라고 말한다.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 RPG 게임으로 대선 후보를 고른다고?
▶ [뉴스레터]교양 레터 ‘인스피아’로 영감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