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곰팡이집 참던 청년들… ‘집다운 집’ 직접 외쳤죠” [차 한잔 나누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민달팽이유니온 대표 지수 위원장

11년 전 주거문제 맞선 대학생들

세입자 권리보장 등 영역 확장해

2014년부턴 비영리 주거모델 운영

임차인 신분 탓 열악한 환경 침묵

불량주거 책임 거주자 전가 대신

사회도 청년 주거권 실현 노력을

세계일보

민달팽이유니온 지수 위원장이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청년 주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의 열악한 주거 수준은 ‘잠깐의 고생’으로 치부될 때가 많다. 잠시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에 살더라도 돈을 모으면 월세에서 전세, 자가로 이어지는 주거 사다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란 ‘신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과 달리 청년의 주거환경은 퇴보하는 중이다. 고시원 등 주택 외 거처로 분류되는 집에 사는 청년(만 19~34세) 비율은 2020년 기준 13.4%에 달한다. 특히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용여건이 악화하고, 주택 가격이 폭등하면서 청년의 주거불안은 심화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집이 없는 자신의 처지가 민달팽이와 비슷하다며 단체에 ‘민달팽이유니온’이란 이름을 붙였다. ‘주거권은 인간답게 살 권리’라고 말하는 지수(31) 민달팽이 유니온 대표(위원장)를 지난 20일 만났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은 11년 전 대학 내 기숙사 문제 해결을 위해 결성된 대학생 모임에서 출발했다. 이후 청년과 세입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활동까지 영역을 넓혔고, 2014년에는 청년들이 직접 운영·관리하는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어 ‘달팽이집’이란 비영리 주거모델을 안착하는 과정에 함께 했다. 지난해부터 대표를 맡은 지수 위원장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청년의 주거문제를 방치했다”며 “청년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가 너무 쉽게 침해됐다”고 말했다.

지수 위원장 역시 ‘주거 약자’였다. 대학 시절 집이 급하게 필요했던 그는 단체의 달팽이집을 통해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달팽이집은 협동조합 조합원들이 돈을 모아 집을 사는 형태로 운영된다. 지수 위원장은 “달팽이집 덕분에 계약을 갱신하지 못하거나 비합리적인 임대료를 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해소됐다”며 “세입자의 권리가 보장받는 경험을 처음 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첫 임대차계약서는 가지고 있던 노트를 찢어서 만든 것이었다. 지수 위원장은 “나중에서야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것을 잘 모르는 청년들이 많다”고 말했다. 민달팽이유니온이 주거상담·교육에 힘쓰는 것도 이런 이유다. 단체를 찾는 청년 대부분은 자신이 세입자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수 위원장은 “공인중개사에게 어떤 걸 요구할 수 있는지, 임대인의 부당한 요구를 받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알아도 임차인이란 신분 때문에 침묵하는 이들이 많다”며 “무리하게 쪼갠 집, 곰팡이나 해충 등으로 열악한 주거공간도 참고 견디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설명했다.

지수 위원장은 이런 ‘불량주택’을 퇴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량식품 판매자가 처벌을 받듯 부적절한 집을 거래·중개한 사람에게도 관리·감독체계가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는 불량주택 문제를 이야기하면 거주자에게 ‘네가 노력해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식”이라며 “이런 안일한 태도가 불량주택을 양산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구조적 문제, 안전·위생문제 등을 포괄해 ‘최저주거기준’의 항목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 청년 주택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공급 확대’ 정책을 내놓지만 지수 위원장은 이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지난 수십년간 주택 공급 확대는 투기 대상의 확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수 위원장은 “부모로부터 지원받는 자산이 충분하지 않으면 평생 대출을 상환하며 살아야 하고, 결국 내 집이 비싸게 팔리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사회에서의 내 집 마련은 투기세력의 반열에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이런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주택 가격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거나 민간임대계약을 통해 살더라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세입자로 살더라도 권리를 보장받고 쫓겨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주거취약계층 청년이 겪는 불안에 대해 사회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주거는 사회안전망 작동이 필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