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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세상]오빠는 풍각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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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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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풍각쟁이야, 머(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 먹는 거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고/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얼마 전 TV에서 외국 합창단이 서툰 발음으로 ‘오빠는 풍각쟁이’를 부르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다. 지난해 말 쿠바의 한 도시에서 열린 국제합창작곡 콩쿠르에서 작곡가 서지웅이 편곡한 이 노래가 1위(편곡 부문)를 차지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노래는 1938년 발매된 만요(慢謠)로 당시 10대 후반인 가수 박향림이 귀엽고 깜찍하게 불렀다. 풍각쟁이는 ‘유랑극단 악사’를 지칭하는데 얄미운 오빠를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이 노래를 만든 김송규(김해송)는 노래, 연주, 작곡, 지휘까지 하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오빠는 풍각쟁이’를 발표할 즈음 ‘개고기 주사’ ‘전화 일기’ ‘청춘빌딩’ 등 여러 곡의 코믹송을 박향림과 콤비를 이뤄 선보였다. 지금 들어도 낡은 느낌이 들지 않는 모던한 멜로디와 리듬, 재미있는 노랫말이 돋보이는 곡들이다.

김송규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의 남편으로 ‘다방의 푸른 꿈’을 아내에게 선물하여 히트시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를 모른다. 1911년생으로 생존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조선악극단 출신의 박향림은 깜찍한 콧소리를 곁들인 노래로 인기를 얻었고, 재즈풍의 노래도 곧잘 소화했다. 그러나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불과 25세에 요절했다.

노래 속에서 오빠(남편이나 남자친구일 수도)는 안달쟁이, 주정뱅이, 모주꾼, 모두쟁이로 묘사된다. 예나 지금이나 속 썩이는 남자는 늘 있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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