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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과 세상]못다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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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설원을 달렸다

숨이 몸보다 커질 때까지

숨만 쉬어도 지구 반대편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 너를 보는 게 좋았다

여기 너무 아름답다

우리 꼭 다시 오자

겨울 별자리가 가고 여름 별자리가 올 때까지

녹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박은지(1985~ )

어떤 말은 미안해서, 어떤 말은 부끄러워서, 어떤 말은 불편해서, 어떤 말은 너무 늦어버려서 할 수가 없다. 가까운 사이라 더 속말을 꺼내놓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에게 풀어놓는 게 편할 수도 있다. 선의로 한 말을 왜곡해서 받아들여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감정이 섞인 말에는 가시가 돋아 있다. 그 가시를 삼키면 내가 다치고, 내뱉으면 상대가 다친다. 못다 한 말이 쌓여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약속이나 기다림은 익숙한 것이지만,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어쩌면 세상의 변화보다 더 빨리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인지 모른다. “우리 꼭 다시 오자”는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는다. 봄 지나 여름이 와도, 너는 오지 않는다. 사랑하다가 헤어진 것일 수도, 영원한 이별일 수도 있다. 그래도 기다린다. 시인은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정말 먼 곳’)진다고 했다. “지구 반대편 사람을 만”나다 정작 ‘가까운 사람’을 잃을 수 있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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