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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이슈 미술의 세계

드라마 배경 넘어… ‘주연’ 활약하는 미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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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공작도시’에 손상기 작품 활용

두 주인공 사이 갈등 암시 핵심 장면

세계일보

드라마 ‘공작도시’에서 주인공이 화가 손상기의 1987년 작 ‘공작도시-아이러니’를 바라보는 모습. JT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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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 살던 사람들 말이에요. 어땠을까요? 실장님은 이 작품 보시면서 무슨 생각 하시는지 궁금해요.” “가슴이 시려요. 마치 하얗게 반짝이는 흙길이 버석버석하게 말라버린 것 같아서 여기 사람 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게 궁금해요. 이 사람들 쫓겨난 거잖아요. 지금 다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살아 있기는 한 건지 그것도 모를 일이지만.” “잘 살고 있을 거예요. 이 넓은 도시 어딘가에. 그럴 거라고 좋게 생각해요 우리.” “누굴 위해서요?”

#2. “이 작품은 흔히들 말하는 마스터피스는 아니에요. 도록에 실려 있는 이 ‘아이러니’라는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어요. 신기하게도 그 창피함이 위로가 되더라고요.(중략) 저기 부잣집 응접실에 걸린 그림 보이시나요? 그림 속의 저 그림도 이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에요. 자신의 그림이 좋은 가격에 판매되는 건 모든 미술전공자들의 꿈 아니겠어요? 주변부로 밀려난 도시 서민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 그 작품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부자들의 돈이 필요하다는 아이러니.”

미술이 배경이나 조연을 넘어 주연으로 맹활약 중인 JTBC드라마 ‘공작도시’의 4, 14화의 한 장면이다. 각각 가상의 지명 ‘형산동’ 철거 참사를 배경으로 대립하는 두 주인공 사이에 갈등이 암시되는 핵심 장면으로, 주인공의 내면을 이해하게 하는 핵심 기제로 미술 작품이 등장한다. 작품은 바로 천재 요절 화가로 한국 미술사에 남은 화가 손상기(1949∼1988)다. 드라마를 위해 만들어진 소재로서의 가상의 작품이나 작가가 아니라, 실제 손상기의 작품 세계가 이야기에 녹아 있다.

손상기는 1949년 태어나 1988년 39세 나이로 작고한 한국 근현대 시기 주요 화가다. 어린 시절 앓기 시작한 척추질환으로 등이 굽는 장애를 안고 살았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달동네 화실에 기거하며 소외된 도시 풍경을 담은 ‘공작도시’ 연작 등 작품을 남겼다. ‘공작도시’ 연작은 산업혁명을 거쳐 현대에 들어선 한국 도시의 무정하고 냉혹한 이면을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문명과 인간 본연의 삶과의 충돌을 담는다. 작품 ‘공작도시’는 2010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서도 등장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14회에 주인공 윤재희(배우 수애)가 1987년 작품 ‘공작도시-아이러니’를 설명하는 장면도 실제 작품에 얽힌 사연이 녹아 있다. 당시 손상기는 자신의 후원자인 컬렉터의 집에 그림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보려고 방문했다가, 그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아이러니’를 그렸다. 그 순간에 느낀 감정을 순식간에 스케치해 에스키스로 남기면서 ‘폭발하는 아이러니’라는 글귀도 함께 써두었다고 한다. 당시 컬렉터는 가난한 화가였던 손상기를 위해 자신의 집에 아틀리에를 내어 주었다.

드라마는 1983년 손상기와 인연을 맺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개인전을 열고 후원을 했던 샘터화랑의 엄준구 대표가 미술자문을 했다.

엄 대표는 “그간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훌륭한 한국 미술 작품이 잘 등장하지 않았다. 저작권 이슈 때문이었다. 요즘 들어 드라마에서 미술이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수준이 낮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제는 우리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국 미술을 제대로 수준 높게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 미술자문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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