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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우크라 와중에 친러 행보 보일라… 터키 전투기 판매 두고 고심하는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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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신형 F-16 전투기 추가 구매 등 요청
2017년 러시아 무기 구입 두고 美와 갈등
친러 돌아설 경우 대서양 동맹 흔들릴 수도
한국일보

터키 공군 소속 F-16 전투기.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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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신형 F-16 전투기를 팔아야 할지를 두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의회 내에서는 터키가 러시아제 무기를 구입했던 전력 등을 이유로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터키에 마냥 등을 돌리기도 쉽지 않다. 자칫 러시아의 ‘반미(反美) 연합’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탓이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행정부가 터키 정부의 F-16 전투기 구매 제안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전했다. 터키는 지난해 10월 미국에 신형 F-16V 전투기 40대 추가 구매와 기존 F-16 전투기 약 80대 개량에 사용할 부품 판매를 요청했다. 구애는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브라힘 칼린 터키 대통령실 수석보좌관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해 해당 내용을 재차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미 정치권 안팎 기류를 보면 성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무기수출통제법에 따라 외국에 무기를 판매하려면 의회 승인이 필요한데, 의원들이 터키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는 탓이다. 하원에서는 이미 의원 41명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반대 입장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 터키가 몇 해 전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무기를 구입했다는 이유에서다. 니콜 말리오타키스 하원의원은 “미국의 지적재산권이 러시아에 공유되는 것을 우려한다”며 “터키는 여러 면에서 적(敵)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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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020년 4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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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터키는 미국 주도의 최신예 F-35 스텔스 전투기 제작 공동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2017년, 돌연 러시아 첨단 방공미사일 시스템 S-400 도입을 발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터키의 러시아제 무기 도입에 서방 국가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은 곧장 터키를 프로젝트에서 퇴출하고 F-35 전투기 100대 수출을 금지하며 맞불을 놨다. 의원들의 반발은 결국, 이미 한 차례 터키가 미국에 등을 돌린 상황에서 무엇을 믿고 이들에게 무기를 쥐어주냐는 의미로 해석된다. 상원은 해당 사안을 두고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외교위원회 내에서도 회의론이 짙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입장에선 러시아로 핵심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까지 무릅쓰고 판매에 나설 이유가 크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터키는 인권문제 등을 두고 줄곧 서방국가와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해에는 반(反)정부 인사 석방을 요구하는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국 대사를 ‘내정 간섭’을 이유로 추방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냥 반대하기도 마뜩하지 않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행동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터키가 내민 손을 뿌리칠 경우 이들이 친(親)러시아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세 규합에 나서고 있는데, 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러시아와 밀착할 경우 대서양 동맹이 흔들릴 공산도 크다. 이미 지난해부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밀착해 미국의 대 러시아 및 서방 전략을 흔들고 있다는 외신들의 분석이 이어지던 터다.

미국과의 계약이 무위로 돌아갈 경우 터키가 또다시 러시아제 무기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지난해 러시아는 터키에 “필요한 경우 언제든 러시아의 4.5세대 전투기 수호이(SU)-35나 최신예 스텔스기 SU-57을 구매할 수 있다”고 러브콜을 보낸 상태다. 제임스 제프리 전 터키 주재 미국대사는 WSJ에 “F-16 판매는 (미국에) 훌륭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며 “반면 협상이 결렬될 경우 터키는 러시아로 향할 수 있고, (양국은) 잘못된 방향으로 더욱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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