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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끊이지 않는 퇴역 경주마 학대 사건···경마장 떠난 그 말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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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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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대 논란이 불거진 KBS 대하사극 <태조 이방원>의 한 장면. KBS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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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장면 촬영 도중 넘어진 뒤 세상을 떠난 말이 퇴역 경주마 ‘까미’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경주마들의 도태나 은퇴 이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쓰고 버려지는’ 말의 생애 전반을 동물권 관점에서 조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장 은퇴 경주마들에 대한 보호시설 마련 등 복지체계를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23일 동물권 단체와 방송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까미’는 서러브레드(Thoroughbred)라는 품종의 말로 4~5살까지 경주마 생활을 하고 지난해 말 대여업체로 이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까미와 같은 퇴역마는 연간 1400마리에 이른다. 이들 중 42.2%가 퇴역 이후 다른 용도로 재활용(관상·교육·번식·승용)됐으며, 48.1%는 질병 및 부상 등을 입어 도축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 외 ‘기타 용도’에 속하는 9.7%는 정확한 용도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말의 행방을 추적하기 어려운 ‘기타 용도’의 비율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한국마사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타 용도 비율은 2016년 5%(70마리)에서 2017년 6.4%(89마리), 2018년 7.1%(99마리), 2019년 7.4%(103마리), 2020년 22.5%(308마리)로 증가했다. 경향신문이 한국마사회 전자조달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지난 5년 간 불용마(미활용 말) 낙찰 건수 43건 중 말과 무관한 사업장 또는 개인이 말을 매입한 비율이 83%(35건)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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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미국의 동물보호단체 페타가 공개한 말 도축 영상 캡처. 제주의 한 도축장에서 퇴역 경주마가 도살되는 현장을 약 10개월간 촬영했다.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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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들은 불법 도축되거나 사적 용도로 팔려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말들은 학대 행위가 벌어질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

퇴역 경주마 학대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국제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와 생명체학대방지포럼은 다른 경주마들이 보는 앞에서 퇴역 경주마를 도살한 작업자 5명과 제주축협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약 2년7개월이 흘렀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제주도는 최근 퇴역 경주마를 반려동물 사료로 활용하기 위한 ‘퇴역경주마 펫사료화’ 방안을 검토했으나, 동물단체와 지역환경단체에 반대에 부딪히면서 계획을 철회했다.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퇴역 경주마 전 생애에 걸친 복지 체계 구축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동물권 단체 동물자유연대와 생명환경권행동 제주비건은 성명서를 통해 “2019년 경주마 학대 사건 이후 마사회는 ‘말 복지 가이드라인’ 등을 개정하고 말 이력제를 도비했지만 실질적으로 경주마의 처우를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그러면서 “인간을 위해 달리다 고작 3~4살의 나이에 도축되는 경주마의 현실을 되새기며, 경주마의 전 생애 복지 체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매년 경마로 8조원의 수입을 벌어들이는 한국마사회 역시 도의적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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