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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시대와의 불화’ 이종왕 전 삼성전자 법률고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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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출신… ‘옷로비’ 수사 때 상부와 충돌 후 사표

노무현 前대통령과 친분으로 탄핵 때 변호 맡기도

세계일보

이종왕 전 삼성전자 법률고문(오른쪽 3번째)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이던 1999년 검찰청 기자실에서 언론에 브리핑을 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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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미래의 검찰총장’으로 불릴 만큼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웠으나 시대와의 불화 탓에 일찌감치 검찰을 떠나 대기업으로 옮겼던 이종왕 전 삼성전자 법률고문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경북 경산이 고향인 고인은 경북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7기)에 다니던 시절 같은 연수생이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무척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인지 2003년 노무현정부 출범 후 정상명 전 검찰총장, 이종백 전 국가청렴위원장, 김종대·조대현 전 헌법재판관, 서상홍 전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다른 17기 동기생들과 더불어 노 전 대통령의 법조계 핵심 인맥으로 지목된 ‘8인회’ 회원으로 알려지며 본의 아니게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 검사로서 고인의 행보는 순탄했다. 검찰의 최고 요직으로 꼽히는 법무부 검찰1과장(현 검찰과장),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등을 거쳤다. 당시 그를 알던 지인들은 스스럼없이 ‘미래의 검찰총장’이라고 불렀다. “연수원 7기생 중에서 총장이 나온다면 당연히 이종왕일 것”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검찰 내 대구·경북(TK) 출신 인사 상당수가 주춤하고 호남 출신이 득세한 김대중(DJ)정부 시절 고인의 운명이 바뀌었다. 1999년 이른바 ‘옷로비’ 의혹이 불거졌을 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이던 고인은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박주선 당시 청와대 사정비서관의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고 상부에 건의했다가 미운털이 박혔다. 호남 출신인 박 전 비서관은 DJ정부에서 검찰 실세로 꼽히던 인물이었다. 이 일로 검찰 지휘부와 충돌한 그는 결국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났다. 검사장 승진 ‘0순위’로 통하는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의 사직은 검찰을 넘어 법조계 전체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왔다.

세계일보

검사를 그만둔 고인은 잠시 개인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1년 국내 최대 법무법인(로펌) 김앤장에 들어갔다. 2003년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사건 수사가 시작되며 SK, 현대차, LG 등 국내 굴지 대기업의 변호를 맡았다. 한때 검찰에서 가장 날카로운 ‘창’이었던 고인이 재벌 그룹들의 ‘방패’로 변신한 것을 두고 솔직히 비판적 시선도 많았다. 일각에선 “재벌 사건만 싹쓸이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2004년 고인이 변호사를 그만두고 삼성그룹 법무실장으로 옮기며 비난의 강도는 더 높아졌다.

하지만 이미 검찰과 한 차례 불화했던 고인은 재계에서도 순탄한 행보를 하지 못했다. 삼성 법무실장으로 일한지 3년 4개월만인 2007년 11월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이 의혹을 언론에 폭로한 이는 뜻밖에도 삼성 법무팀장을 지낸 내부 인사였다.

“저는 삼성에서 많은 인재들을 만나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세상에서 완벽하게 깨끗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삼성은 제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우리 사회의 어느 조직보다 상대적으로 청결하고 건강한 조직입니다. 그리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인사관리 시스템 등을 잘 갖추고 있고, 그러한 것들이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삼성이 전직 법무팀장의 파렴치한 행위로 비리집단으로 매도되어 임직원 모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실을 생각하면 한없이 안타깝고 죄송합니다.”

당시 고인이 삼성 직원들한테 보낸 이메일 일부다. 그렇게 삼성 법무실장에서 물러난 고인은 2010년 삼성전자 법률고문으로 다시 위촉되긴 했으나 언론 노출을 최대한 피하는 등 대외활동을 자제했고, 2015년 삼성전자 법률고문에서 물러났다.

고인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연은 각별하다. 노 전 대통령이 2004년 3월 야권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에 의해 선거법 위반, 측근비리, 경제파탄 등 혐의로 탄핵소추를 당해 직무가 정지됐을 때 당시 변호사이던 고인은 대통령을 돕기 위한 법률 대리인단에 참여했다.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소추안은 결국 헌재에서 기각됐는데,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고인을 비롯한 법률 대리인단 소속 변호사들한테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족으로 자녀 이석호·유진씨, 며느리 이은형씨, 사위 김덕헌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5일 오전 6시30분, 장지는 분당휴추모공원이다. (010)9357-2181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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