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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중대재해법 처벌 1호 될라" 기업도 정부도 '살얼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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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석환 기자] [편집자주] 산업 현장의 안전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0명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시행된다. 모호한 법 내용과 과도한 처벌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사업 현장에선 사고를 줄이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히고 있다. 초읽기에 들어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둔 기업들의 준비 상황, 유의해야 할 점, 산업에 미칠 영향, 보완 입법 방향 등을 짚어본다.

[MT리포트]'중대재해처벌법' 방아쇠는 당겨졌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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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오는 27일부터 산업재해 발생 시 원청의 최고 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3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아파트건설 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202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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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위반 기업이 분명히 나올텐데 최고경영자(CEO)를 구속시켜도 부담이고 안시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한 정부 관계자가 털어놓은 속내다. 보완 입법을 촉구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재계는 물론이고 당장 법 집행에 나서야 하는 정부의 고민도 읽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법안 심의 2주만에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사고를 포함한 중대재해 발생시 기업인 1년 이상 징역형, 법인에 대한 벌금, 징벌적 손해배상책임까지 중첩해 부여하고 있다. 정부의 법령 해설서까지 나왔지만 모호한 규정으로 산업 현장의 혼란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유사한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의 경우 산재 사망사고에 한해 법인의 벌금형만 도입했지만 수많은 논의와 분석, 평가를 거쳐 법 제정까지 13년이 걸렸다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법 시행을 앞두고도 시행규칙이 안나오는 등 해석이 모호하다보니까 준비나 대응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무조건 1호(첫 위반 기업)가 되지 말자는게 산업계 전반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기업들도 대부분 판례가 나와봐야 그것에 준용해 대비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1호 기업이 되면 안된다는 시각"이라며 "모호한 법령에 대해 자문을 구하려다보니 로펌만 특수를 맞고 있다"고 꼬집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이재명·윤석열 대선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거듭 중대재해처벌법의 부작용을 부각하는데 주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입법 보완 없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많은 기업인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은 현실에 맞도록 수정해야 하고 재해의 예방 활동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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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는 현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최근 코스닥협회와 공동으로 회원사 215개 기업의 안전관리 실무자 43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애로사항으로 '모호한 법조항(43.2%)'이 가장 많이 꼽혔다. 그 뒤를 △경영책임자에 대한 과도한 부담(25.7%) △행정·경제적 부담(21.6%) △처벌 불안에 따른 사업위축(8.1%) 등이 이었다. 특히 기업 담당자들 10명 중 8명(77.5%)은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경영책임자 처벌 규정이 과도하고 봤으며 해당 응답자의 대부분(94.6%)은 추후 법 개정이나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경총이 중소기업중앙회와 314개 국내 기업( 50~300인 미만 중소기업 249개+300인 이상 대기업 65개)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응답 기업의 74.2%가 중대재해처벌법 중 가장 시급히 개정해야 할 사항으로 '고의·중과실이 없는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경영책임자 처벌 면책규정 마련'을 꼽았다. 여기에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 완화'(37.3%)와 '경영책임자 의무 및 원청의 책임범위 구체화'(32.5%), '산업현장의 준비기간을 고려하여 시행시기 연장'(25.8%), '경영책임자 개념과 범위 명확화'(18.2%),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는 사망자 범위 변경(12.7%) 등도 개정 목록에 포함됐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령이 갖고 있는 불명확성이 매우 커 의무주체와 의무이행방법 등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 해석이 횡행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이 점에 유의해 구체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성규 가천대 길병원 교수도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은 모든 질병이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지 않는 만큼 인과관계 확인이 중요하다"며 "업무상질병 사망을 예방하기 위해 전문가에 의한 체계적이고 정상적인 보건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 이후 중대재해처벌법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자조섞인 반응도 나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아직 법 시행 전이지만 이미 국민정서법으로 중대재해처벌법보다 더한 심판과 처벌이 가해지는 것 아니냐"며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건설안전 관련 법으로 충분히 책임과 처벌을 물을 수 있지만 여론이 대표이사 형사처벌에 집중되고, 정부 부처는 아예 면허취소까지 공개적으로 거론하는데 이것은 회사를 망하라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산재예방이라는 본질로 가야하는데 법의 체계나 구조 때문인지 본말이 많이 전도되고 있다"며 "현장에서도 안전업무 부서에 더 많은 요구가 집중되고 사내에서도 타 부서에서 책임 넘기기식 발언이나 업무회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로펌 관계자는 "근로자들이 부주의로 현장에서 사고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책임을 기업이나 CEO가 다 져야 하는 애매한 사례가 속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안전관리 관련 예산과 시스템 마련, 교육 등 기업이 의무를 다했을 때 처벌에 대한 면책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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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황희규 기자 = 21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사고' 현장에서 사고 수습당국이 기울어진 타워크레인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3시46분쯤 해당 공사 현장 201동 건물이 38층부터 23층까지 무너져 작업자 6명이 실종됐다. 실종자 중 1명은 숨진 채 수습됐고, 나머지 5명은 구조하지 못하고 있다.(소방청 제공) 2022.1.21/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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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환 기자 neokis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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