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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둘째딸 3시간, 넷째딸 2시간"…강원 오지 장애학생들 '산 넘어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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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인구밀도 낮은 지역 특수학급 폐급 잇따라

근본원인 '특수교사 부족'…법 바꿔 정원 늘려야

뉴스1

지난 17일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둔내중학교 앞에서 하연종씨가 자신의 넷째딸 하다빈양(13·가명)이 입학하게 될 학교의 교정을 바라보고 있다. 2022.1.17/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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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아이들 얼굴을 좀 볼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하연종씨(45)는 스마트폰을 한참 뒤지며 아이들이 함께 나온 사진을 골랐다. 마침내 찾아낸 사진 속 네 명의 여자아이는 모두 연종씨의 딸이었다. 연종씨는 아이들이 사진을 찍은 뒤에 막내가 태어나서 이제는 일곱 식구가 됐다고 했다.

다시 살펴본 사진 속 아이들은 하얀색 드레스를 똑같이 맞춰 입고 있었지만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그중에서도 넷째 다빈이(13·가명)는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 천진한 다빈이의 성격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이런 다빈이를 두고 최근 연종씨는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겉으로 보기에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다빈이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일반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 특수학급에서 특수교사에 도움을 받았다. 문제는 이제 중학교에 진학할 시기가 됐는데 동네 중학교에는 특수학급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특수학급 1시간 거리 …언니도 27㎞ 등·하교

다빈이가 3명의 언니, 남동생,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는 특수학급이 둔내초등학교 한 곳에만 있다. 2020년까지 둔내중학교에 특수학급 1곳 더 있었지만 지난해 학생이 없다는 이유로 폐급됐다. 연종씨는 교육이 필요한 학생이 다시 생기면 당연히 학급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지만 둔내중에는 올해도 특수학급이 생기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도청에도 문의를 해보고 횡성교육지원청에도 질의를 해봤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강원도교육청은 지난해부터 학생이 적은 소인 수 특수학급 유지를 지양하고 폐지를 유도하고 있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 지역 학교의 특수학급이 학생 수 과밀로 여러 문제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다수의 학생들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우선적으로 특수교사를 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도교육청의 입장이다.

연종씨는 "'근처에 다른 학교에 특수학급이 있다고 거기에 진학을 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 말이 더 열 받았다"라고 했다. 올해 횡성군 내에 특수학급 있는 중학교는 공근중, 안흥중, 우천중, 횡성중 4곳이다. 둔내중을 기준으로 했을 때 공근중은 34.8㎞, 안흥중은 13.9㎞, 우천중은 23㎞, 횡성중은 27.3㎞ 거리다. 가장 가까운 안흥중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배차간격 등을 고려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시 편도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지적장애를 가진 다빈이에게는 너무 먼 길임을 연종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미 몇년 전 비슷한 문제를 겪었기 때문이다. 연종씨의 다섯 아이 다영이, 다은이, 다선이, 다빈이, 다훈이(모두 가명) 중 다빈이를 포함 3명의 아이가 비슷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중 다은이의 경우 둔내중을 졸업하고 고등학교로 진학하던 시기 둔내고등학교에 특수학급 없어 횡성군 군내에 있는 횡성여고에 입학했다. 집에서 27㎞ 정도 떨어진 학교까지 통학하는데 왕복 3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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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이가 특수학급 진학을 원할 경우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중학교인 안흥중학교에서 둔내중학교까지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면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출처 네이버 지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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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 고등학생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버스 타기'는 다은이에게는 훈련이 필요한 일이었다. 번호가 다른 여러 노선의 버스 중 어떤 버스를 타야하는 지, 버스마다 왜 경유하는 정거장들이 다른 지, 정류장에 가만히 않아 있으면 왜 버스는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지 다은이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정류장에 앉아 있으면 무조건 버스가 서는 줄 알고 하염없이 정류장에 앉아만 있다가 타는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정차하지 않는 버스를 몇대씩 보내기도 했다. 이후 다은이를 맡게 된 횡성여고의 특수교사가 함께 집을 오가는 훈련을 거듭한 후에야 다은이는 차츰 적응해 갔다. 하지만 여전히 다은이에게 등·하교는 그 자체로 위험이다.

연종씨는 "만약 제가 회사에 늦게 나간다고 하면 (학교에) 데려다 줄 수는 있는데 또 올 때가 문제에요. 중학교는 3시 반이면 학교가 끝날 텐데 제가 퇴근을 해서 가면 가는 시간이 있잖아요. 아이는 3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거죠"라며 "또 제가 야간 근무에 들어가면 오후 10시가 넘어서 끝나요. 그렇다고 학교 측에 제가 애를 데리고 갈테니 데리고 와달라고 할 수도 없는 거 잖아요"라고 말했다.

결국 고민을 하던 끝에 연종씨는 다빈이를 둔내중의 일반학급으로 진학시키기로 했다. 수업 내용을 따라 가지 못하겠지만 먼 통학길을 혼자 보낼 수도 없고, 그래도 아이의 장애를 알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다빈이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봤다. 다행히 일반학급에 다니더라도 특수교육 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주 2회 정도 도교육청에서 순회교사가 방문해 다빈이의 학습을 돕게 된다.

연종씨는 마음을 정한 뒤 다빈이에게도 둔내중에 가서 다른 아이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게 것이라고 말했다. 다빈이는 아빠의 고민을 이해하는지 모르는지 "나도 친구들이랑 같이 놀면서 공부할거야"라며 답했다. 하지만 연종씨의 고민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빈이가 고등학교에 가게 될 3년 뒤 또 선택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강원도 농촌·벽지 특수학급 연이어 폐급…근본적 교원 부족 문제 해결돼야

"아이가 친하게 지내던 동네 친구들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어요"라는 소박한 바람, 오히려 비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라면 당연하게 느꼈을 일이 장애 아동을 둔 부모에게는 이루기 어려움 소원이 되곤 한다. 특히 연종씨와 같이 강원도 농촌·벽지 지역에 살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현행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27조는 초등학교·중학교의 경우 특수교육 대상자가 1인 이상 6인 이하의 경우 특수학급 1개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고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그 기준이 1인 이상 7인 이하다. 더불어 같은 법 시행령 22조는 특수학급에 배치되는 특수교육 담당교사가 학생 4명마다 1명이 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강원도의 경우 농촌·벽지 지역에는 특수교육 대상자가 1~2명만 있는 경우가 있는 반면, 춘천·원주 같은 도심지역에는 특수교사 1명이 10명의 학생들을 맡는 과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과밀학급은 2020년 57개, 2021년에는 51개였다. 도교육청의 입장에서는 학생 수가 많은 과밀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 학생 수가 적은 소인 수 학급을 유지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물론 특수교육을 확대한다는 정책에 따라 특수학급 자체 숫자는 늘어났다. 강원도 교육청의 '특수학급 학급편성기준 및 신증설·감축·폐급 계획'을 보면 2020년부터 전체 특수학급 수는 386개에서 2022년 396개로 늘었다. 하지만 같은 학생 수가 적거나 없는 초등학교 6곳, 중학교 5곳, 고등학교 2곳에서 특수학급이 폐급됐다. 앞으로 몇년간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여 학생 수가 적은 학교의 특수학급 문제는 계속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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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관계자들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장애학생 교육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차별없는 통합교육을 촉구하고 있다. 2022.1.4/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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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이 문제가 도교육청과 학부모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진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 폐급이 결정됐던 고성군 고성중학교의 경우에 입학 예정자였던 장애 학생의 부모가 특수학급이 갑자기 폐급된 것에 반발하면서 논란이 됐다. 결국 지역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대책위원회가 세워지고 교원단체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현재는 학급 존폐를 두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특수교육 대상자가 있음에도 그 수가 적다는 이유로 도교육청이 폐급을 결정하는 것을 두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원도 내에서 근무하는 한 특수교사는 "'과밀학급 해소를 위해 과소학급을 폐급은 불가피하다'는 도교육청의 주장은 특수교육과 강원교육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주장"이라며 "이러한 정책이 특수교육의 특수성을 앞세워 강행된다면 이것은 도교육청의 명백한 장애인 차별 행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도교육청은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최선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마치 학생 수가 적으면 무작정 특수학급을 없애버리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김건훈 강원도교육청 미래교육과 특수교육과정 장학사는 "특수학급 폐급이 소인 수 학급 폐급 정책 때문에 아무런 절차도 없이 행정적으로 갑작스럽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통학 거리 문제, 학생의 장애 정도, 앞으로의 학생 진학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폐급을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장학사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법 개정을 통해서 강원도에 배정되는 특수교사의 수를 늘리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원도 전체의 특수교사 수와 장애학생 수를 비교하면 시행령에서 기준으로 하는 1:4의 비율을 이미 충족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교육부에서 교원을 추가로 배정받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장학사는 당장의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특수교사당 학생 수의 비율을 줄이거나 특수교육만이라도 교원배치 기준을 학생 수가 아닌 학급 수로 정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청 단위의 정책이 아니라 법이 바뀌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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