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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그날, 아덴만에는 목숨을 건 전투가 벌어졌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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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 작전에 투입된 해군 특수전전단 요원들이 삼호주얼리호에서 선원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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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입니다. 안심하십시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11년 1월 21일 새벽, 소말리아 아덴만에서는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과 해적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해적들을 소탕하고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한 ‘아덴만 여명 작전’에 투입된 해군 최정예 특수전 요원들은 선박 내부를 하나씩 수색하며 해적을 제압했다.

작전 시작 5시간여 만에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던 해적은 8명이 사살, 5명은 생포됐다. 선원들도 석해균 선장이 부상했지만 무사히 구출됐다.

해외 파병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아덴만 여명 작전’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해군의 원양 작전 범위나 방법 등에 대한 논의는 작전 직후 11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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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 작전에 투입된 해군 특수전전단 요원들이 삼호주얼리호 갑판을 오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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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성공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았다

‘아덴만 여명 작전’이 성공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작전을 총괄했던 황기철 당시 해군작전사령관(현 국가보훈처장)은 2019년 발간한 자서전 ‘바다에서 새벽을 보다’에서 그때 상황을 일부 공개했다.

2011년 1월 15일 삼호주얼리호 피랍 직후 아프리카 지부티에서 현지로 급파된 청해부대 6진 한국형구축함 최영함(4400t급)은 18일 일부 해적이 자선(모선에 딸린 배)에 옮겨 타자 작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해적이 백기를 들자 공격을 멈췄다. 이때 해적이 사격해 특수전요원 3명이 부상했다. 작전은 중단됐다.

다음날 아침. 합참의장이 황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전이 실패했는데 청해부대를 지휘해 구출작전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황 사령관은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에 합참은 청해부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넘겼다.

작전을 맡은 황 사령관은 특수전전단 요원들과 함께 삼호주얼리호와 내부 구조가 비슷한 삼호헤렌호에서 사전훈련을 실시했다. 최영함에서 삼호주얼리호로 이동하는 과정, 갑판에 올라서는 순서, 인질 구출 등을 분초 단위까지 세밀하게 작전에 반영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357정 조타실에 있던 인원이 철판 벽에 맞고 튕겨져 나간 총탄에 맞아 숨진 것을 감안, 선교 주위로는 총을 쏘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작전 하루 전날 황 사령관은 해군 특수전여단장 강신도 대령을 비롯한 참모들과 점심 식사를 위해 장교식당에 갔다. 메뉴는 추어탕이었다. 그는 “다른 국은 없는가?”라고 물었다. 추어탕을 먹으면 특수전 요원들이 배에 오르다 미끄러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식당 관계자는 병사식당에서 가져온 닭개장으로 메뉴를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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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특수전전단 요원들이 선박 돌입 훈련을 위해 고속단정에서 선박 위로 올라가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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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당일. 청해부대는 해작사에서 보낸 메뉴얼에 따라 작전에 들어갔다. 황 사령관은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서 특수전요원들의 헬멧에 부착된 카이샷(무선영상전송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영상을 보며 작전 지시를 했다. 요원들은 해적을 상대로 필요한 곳에 2∼3발씩만 정확히 사격해 그들을 무력화했다.

작전 종료 직후 황 사령관은 요원들의 안전과 작전 성공을 기원하며 자신을 도왔던 강 대령을 찾았다. 강 대령은 상황실장 방에서 울고 있었다. 그는 “사령관님,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작전이 실패해서 부하들이 죽는다면 저도 여기서 죽으려고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도 작전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셈이다.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오만으로 옮기기 전 응급치료를 할 때, 한 특수전요원이 갖고 있던 장비가 도움이 됐다. 이 요원은 작전 전에 미군이 쓰던 응급처치키트를 개인적으로 구입해 소지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한국군에 보급되지 않은 장비였다. 이 응급처치키트는 석 선장을 후송하기 전에 응급치료를 하는데 유용하게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인접국 오만에 주재했던 최종현 당시 대사 등 외교관들과 현지 관계자들의 도움도 컸다.

최 대사는 피랍 사건 직후 오만 해군사령관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 19일 오만 해군 300t급 경비정 1척이 아덴만에 파견됐다. 경비정은 최영함, 미 해군 P-3C 초계기 등과 함께 삼호주얼리호를 포위하는 형태를 취하며 청해부대를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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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인도양에서 해적에게 피랍된 후 해군 구조작전을 돕다 중상을 입은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의 11년 전 상흔이 예술작품으로 탄생했다. 경북 칠곡군은 20일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당시 위중한 상태에 놓여 있던 석해균 선장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공개했다. 사진은 곽호철 작가의 작품과 함께 선 석해균 선장(왼쪽). 칠곡=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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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정부는 경비정 제공 외에도 아랍에미리트(UAE) 왕실 전용기로 해적을 이송하는 과정, 석해균 선장의 귀국을 위한 공항 이용 등의 지원도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사살된 해적의 시신 처리 문제에서도 외교적 노력이 빛났다. 정부는 한때 시신을 수장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소말리아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시신을 소말리아측이 인수토록 하라는 지시를 받은 최 대사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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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작전 11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21일 부산작전기지에 세워진 아덴만 여명작전 전적비에서 강동훈(중장) 해군작전사령관과 참가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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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을 소말리아로 보내려면 현지 소말리아 대사를 만나야 했다. 자국민 8명을 사살한 나라 대사의 면담 요청을 거부하거나 시신을 인수하지 않으려 할 수 있었다.

오만 정부 방침 때문에 시신 처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삼호주얼리호는 오만 입항이 어려운 상태였다.

최 대사는 치밀하게 논리를 구성, 소말리아 대사를 만났다. 그는 해적이 소말리아인이라는 언급은 하지 않은 채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무장집단이 석 선장에게 소말리아로 가라고 했다. 그러면 무장집단과 소말리아가 관련이 있지 않느냐. 우리가 조사한 결과를 줄테니 사망자가 소말리아 국민이면 가족에게 시신을 보내는게 인도주의 측면에서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같은 노력 덕분인지 소말리아 측은 시신 인수 의사를 밝혔다.

◆해군의 작전을 어디까지 넓혀야 하나

‘아덴만 여명 작전’ 이후 청해부대의 해적 퇴치 및 상선 호송은 국제사회에서 재평가를 받았다. 소말리아 해역에서 활동하는 다국적군 내에서 한국군의 위상도 높아졌다. 리비아 내전 발발 당시 지중해를 건너오는 난민이 급증하자 유럽연합(EU)으로부터 지중해 작전 참여요청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제미니호 피랍선원 구출, 리비아 교민 철수 지원, 가나해협 피랍국민 구출 등의 작전을 수행하면서 실전경험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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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 소속 해군 특수전전단 요원들이 갑판에서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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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구역도 확장됐다. 2020년부터 아덴만에 그쳤던 활동 무대가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까지 넓어졌다.

해군은 매년 아덴만 여명작전 기념식을 개최, 그들의 공로를 기리고 있다. 해군에게 있어 역사적 전환점이 된 작전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해군 활동에 대한 근본적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해군 작전 범위나 지역, 방식을 어디까지 확장해야 하는가다.

경항공모함 건조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중국과 일본이 항모를 건조해 인도태평양에 투입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해양 이익을 수호하고 미국과의 공동 해상작전을 펼치기 위해서는 경항모가 중심이 된 전투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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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 소속 해군 특수전전단 요원들이 갑판에서 사격훈련을 하면서 해상에 설정된 가상 표적을 총으로 겨누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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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항모 대신 대함탄도미사일을 비롯한 비대칭전력을 확보해 맞서야 한다는 반론도 많다.

경항모 건조는 해군의 고정적인 활동영역을 인도태평양 일대로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비대칭전력 증강은 북한 위협에 맞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해상작전에 비중을 둔다.

사실 미국조차도 전 세계의 바다에서 동시에 작전을 펼치기는 어렵다. 국가안보와 국익을 고려해 ‘선택과 집중’을 한다. 최근 미 해군 핵항모와 강습상륙함들이 인도태평양 해역데 대거 집결해 있는 것도 중국 견제가 우선이라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아덴만 여명 작전’과 청해부대의 활약상은 한국 해군의 지위와 활동영역을 한 단계 넓힌 사건으로 평가된다. 대양해군을 추구하는 해군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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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1함대 3특전대대 특수부대원들이 강릉시 강릉항에서 해상 대테러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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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해군이 어디까지 나아가서 활동할 것인지, 국가안보 전략과 국익을 해양전략과 결합할 방법은 있는지 등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해군 전력 증강에 투입해야 할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셈이다. ‘아덴만 여명 작전’ 직후 11년이 흐른 상황에서 해군 전력의 도약을 위한 실질적 전략과 작전 개념의 준비를 지금부터 서둘러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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