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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취재썰] 광주붕괴사고 현장 옆, 난장판 된 상가 찾아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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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가던 '내 일터'가 무서워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바로 옆,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금호하이빌 상가 상인들 이야기입니다. 밀착카메라 취재진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고 현장을 찾았습니다.

■ "포근한 일터였는데... 상가 근처로 오기가 싫어졌어요"

취재진을 만난 상인들은 하나같이 “막막하다”고 했습니다. 당장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됐는데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부 모습은 어떨까. 금호하이빌에서 17년 동안 식품잡화도매점을 운영해온 김기홍 씨의 안내를 받아 상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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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하이빌 상가 상인 김기홍 씨와 함께 상가 안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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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게인데) 남의 집 보는 것 같고, 제가 여기 17년 동안 장사를 했는데요. 겁이 나요. 상상이 자꾸 돼요. 시멘트 떨어지는 소리 이런 게요. 전에는 가게가 생활 터전이니까 포근하고 했는데요, 이쪽 근처로 오기가 싫어졌어요. 저 건물만 봐도 넘어질 것 같아."

김 씨에겐 포근한 일터였던 가게는 드나들기조차 겁나는 공간이 됐습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흩어져 있는 스티로폼·유리 조각들과 콘크리트 가루가 눈에 띄었습니다. 안쪽엔 파란 천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원래 유리 벽이 있던 곳인데 완전히 깨져버려서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이 임시로 붙여둔 거라고 했습니다. 책장은 엎어져 있었고, 책상과 의자 위엔 먼지가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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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 씨가 17년째 운영해온 식품잡화도매점 가게 바닥 모습. 유리벽이 깨지면서 생긴 조각들이 바닥에 널려 있다. 〈사진=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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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나 봤지 이런 경우는 처음이잖아요. 멀쩡한 아파트가 저렇게 되리라는 상상을 못 했죠. 지진 난 줄 알았어요."

아파트가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김 씨는 “쾅”하는 소리에 넘어졌습니다. 동시에 정전이 돼서 온 건물의 불이 꺼졌다고 합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당장 생계가 걱정입니다. 도매 상가 특성상, 오래 영업을 하지 못하면 거래처와의 거래가 끊길 우려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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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 김기홍 씨가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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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먹는 간식을 파는 곳이니까 학교라든가 체육관이 주 거래처인데요. 코로나로 힘든데 엎친 데 덮친 격이죠. 식품은 유통기한이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또 살아가야 하나, 그게 우선 걱정이죠. 크게 모아놓은 돈도 없고."

바로 옆 문구도매점은 피해가 더 컸습니다. 사장 국경리 씨는 사고 순간 큰 소리가 나고 강한 바람이 불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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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도매점을 운영하는 국경리 씨. 사고 상황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떨린다고 한다. 〈사진=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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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창문 쪽에서 제트기처럼 회오리바람 소리가 '삐' 하고 1초 동안 나서 무슨 일인가 했어요. 굉음이 들리면서 파편이 밀려 들어오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도 않고, 누가 나를 끌어냈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어떻게 기어서 밖으로 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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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도매점 바닥에 물건들이 떨어져 있다. 상인들은 사고 당시 날아들어온 스티로폼 덩어리를 미처 치우지 못했다. 〈사진=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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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 선반 사이사이엔 슬리퍼, 필통, 색종이, 고무공 등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미처 치우지 못한 크고 작은 콘크리트 덩어리들, 스티로폼 가루도 보였습니다. 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직접 들어보니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로 컸습니다. 국 씨는 대목인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습니다.

"구정엔 완구도 많이 팔리고. 신학기 되면 학생들 준비물이 많이 팔릴 때예요. 가게 밖에 무너진 잔해에 묻힌 물건이 수백 박스 있어요. 언제 회복될지도 모르고, 진짜 망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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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리 씨 가게 유리벽을 깨고 들어온 콘크리트 덩어리. 기자가 직접 들어보았으나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다. 누군가 맞았다면 크게 다칠 수 있었다. 〈사진=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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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있는 꽃 도매상가는 아예 불이 모두 꺼져 있었습니다. 꽃 상가 상인들도 원래 이 시기엔 대목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졸업식과 입학식,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까지 주문이 많은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상가 곳곳에선 아직 팔지 못한 꽃과 나무가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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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하이빌 상가 지하 꽃 가게에서 시들어가고 있는 나무. 〈사진=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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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은 다시 영업한다고 해도 이전과 같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더 힘이 듭니다.

"이런 상태가 몇 년 갈 것 같아요. 회복된다고 해서 누가 이 상가에 물건 사러 오겠어요, 귀한 애들 손 잡고. 언제 또 무너질지 모르는데."

■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서로 보듬은 피해자들

처음엔 상인들도 생계 얘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한 피해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고 말하는 꽃 상가 상인 김남필 씨도 그랬습니다.

"며칠 동안은 이야기도 못 했고, 그냥 뒤에서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죠. 그분들이 더 가슴이 아프니까요."

하지만 피해 가족들은 오히려 상인들에게 “괜찮다”고 했습니다. 금호하이빌 피해상가대책위원회장 홍석선 씨는 그 마음이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만날 때마다 자기들 신경 쓰지 말라고 계속 이야기를 하세요. 상인들도 피해자인데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하라고.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죄송하고 죄스럽죠."

취재진은 피해 가족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상인들도 '같은 피해자'라며 그들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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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족협의회 대표 〈사진=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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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피해자 아닙니까. 저희는 인명 피해가 생긴 거고, 상인분들은 재산상의 피해나 생계 아닙니까. 저희는 언젠가 가족을 찾아서 가겠지만, 저분들은 지금 이야기하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이건 누구의 아픔이 크고 작고가 아닌 겁니다."

상가 상인들은 피해자들끼리 서로 사과하고 보듬는 지금 상황이 더 화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정작 이번 사고를 일으킨 현산은 제대로 된 사과나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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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선 금호하이빌 피해상가대책위원회장 〈사진=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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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가족분들은 본인들 때문에 저희 상인들이 생업도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고, 저희는 실종자 가족분들도 못 찾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죄송하다고 했고. 피해자들끼리 서로 '죄송하다' 하는 상황이죠. 정작 현산 관계자들은 진심 어린 사과도 없는 상태인데.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진정한 대책을 세워주면 좋겠습니다."

피해 가족들, 금호하이빌 상인들, 예비 입주자들은 힘을 합하기로 했습니다. 여럿이 한목소리를 낸다면 피해자들의 요구를 현산에 더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섭니다. 이들은 논의를 거쳐 곧 함께 행동에 나설 예정이라고 합니다.

"국민분들도 많이 아셔야 하거든요. 저도 몰랐어요. 제게 이런 일이 생길지. 저희가 바라는 건 딱 하나입니다. 저 추운 곳에서 우리 가족을 데리고 집에 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해달라는 것."

사고가 난 지 12일째, 아직 5명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피해 가족도, 상인들도 이들을 찾기를 오늘도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이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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