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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각 수사기관 연 600여만∼1300여만건 조회… 사찰 논란 [심층기획 - 공수처 ‘통신자료 조회’로 본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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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자료, 이용자 이름·주민번호 등 담겨

통신사와 공문 주고받는 방식으로 확보

검·경뿐 아니라 고용부·식약처도 들여다봐

2014년 박근혜 정부 2년차 때 가장 많아

공수처, 기자 100명 이상 조회 전례없어

가족·친구들까지 포함 드러나 파문 확산

법조계 “공수처 무분별 조회 과했다” 평가

김진욱 공수처장 “조직·시스템 재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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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통신자료 조회’로 촉발된 ‘언론 및 민간 사찰’ 논란이 “적법한 절차에 따른 수사행위”라는 공수처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쉽게 꺼지지 않는 모습이다.

급기야 야권에선 ‘사찰 의혹’까지 제기했지만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검경 등 수사기관에서 연간 600여만∼1300여만건씩 통신조회가 이뤄졌다. 다만 이번에는 대선 정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다 검찰개혁의 상징이자 정치적 중립성이 핵심인 공수처마저 언론인을 비롯해 시민단체 관계자, 야당 인사까지 다수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확대됐다. 공수처의 무분별한 통신조회 논란을 계기로 검경까지 포함해 수사기관의 통신조회와 관련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 인권침해를 막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를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통신조회란 무엇인가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선 ‘통신자료’와 ‘통신사실확인자료’부터 구분해야 한다. 현재 논란이 불거진 건 통신자료다. 통신자료란 이용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을 말한다. 이 자료는 수사기관이 통신사와 전용 라인을 구축해 임의수사, 즉 공문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확보한다. 수사기관이 이 자료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전 단계에서 확보한 통신사실확인자료 때문이다.

21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통신사실확인자료는 통신자료와 달리 법원이 통제한다. 수사기관이 수사하려거나 수사 중인 사건의 개요, 수사 대상자의 관련성을 담은 ‘통신사실확인자료 요청허가서’를 법원에 제출한 뒤 법원이 발부한 허가서(통신영장)를 통신사에 제출하고 집행(자료 확보)한다. 이 자료의 실물은 반복되는 숫자의 나열로 수사대상인 전화번호, 이 번호와 통신한 상대 번호·내역·위치정보 등이 담겨 있다. 수사기관은 이들 정보 중에서 의심되는 기간, 빈도 등을 종합해 범죄 연관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번호를 추린 뒤, 수사대상과 어떤 관계인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가입자 정보, 즉 통신자료를 통신사에 요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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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수사 대상인 A의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조회하면 이 사람이 언제, 누구와 몇 차례 통신을 주고받았고 해당 지역은 어디쯤인지 등을 알 수 있다. 이런 흔적 중에서 추려낸 ‘010-××××-××××’ 번호의 소유자를 확인하는 절차가 통신자료 조회다. 그 결과 가족, 취재기자 등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되면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고 자료도 폐기된다. 수사 실무상 기본 중 기본에 속하는 절차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공수처뿐 아니라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사법경찰권이 있는 행정 각 부처에서 조회한 통신자료는 규모가 막대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검찰과 경찰은 각각 59만7454건, 187만7582건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국정원도 1만4617건에 이르고 사법경찰권이 있는 관세청과 법무부, 고용노동부, 식약처 등은 총 6만9651건의 통신자료를 들여다봤다. 공수처는 지난해 상반기 135건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특정 정권의 문제로도 보기 어렵다. 검찰과 경찰을 기준으로 최근 10년간 조회내역을 보면, 박근혜정부 2년차인 2014년 총 1263여만건(검찰 426만7625건, 경찰 837만1613건)으로 가장 많았다.

◆사찰 논란으로 번진 배경은

이번 사건이 일파만파 확산된 이유는 공수처가 언론인을 비롯해 수사대상과 무관해 보이는 일반인까지 마구 조회한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100명이 넘는 현직 기자를 조회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특히 공수처를 곤혹스럽게 했던 ‘이성윤 서울고검장 황제 조사’ 의혹이나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을 보도한 매체에 조회가 집중됐고, 이들의 어머니와 아내, 동생, 친구 등의 통신자료까지 조회된 사실이 드러나며 파문이 커졌다. 한 법조계 인사는 “수사 경험의 유무가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의식이 부재하다는 것을 드러낸 사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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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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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수사 사안의 성격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간 수사 대상으로 오른 적 없는 검사들이 타깃이 되면서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언론인,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 등의 통신자료가 조회됐을 가능성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적법한 통신자료 제공 요청”이라며 “검경도 하는데 왜 저희만 가지고 사찰이라 하느냐”고 반발했다.

검경 등 다른 수사기관도 이번 논란에 심경이 복잡한 기류다. 이들 역시 수사 초기에 피의자와 관련해 통신조회를 하는 것을 관행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부인 김건희씨만 해도 공수처가 3회, 1회씩 통신조회한 사실이 크게 부각됐지만, 검찰과 경찰에서 이들을 조회한 내역이 각각 7회와 6회로 더 많았다.

검경에서는 절차가 까다로워질 경우 수사가 힘들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긴급한 수사 필요성이 있거나 피의자의 인맥 등을 파악하고 범죄 구성의 밑그림을 그리는 수사 초기 단계에서 통신자료 조회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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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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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공수처의 통신조회 양태가 과했다는 게 중론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경과 달리 수사 대상이 명확히 제한된 공수처가 기자의 가족까지 통신조회를 한 것은 권한을 넘어서는 수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도 “이번 통신조회 논란은 수사상 필요성을 충족했는지가 쟁점인데 공수처장이 ‘합법’ 만을 강조하면서 사안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김 공수처장은 공수처 출범 1주년을 맞은 이날 “혹여나 (수사)성과를 내기 위해 서두른 것은 아닌지, (통신)조회 범위가 과도했던 것은 아닌지 등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인권 침해 논란이 일지 않도록 더욱 유의하겠다”고 밝혔다. 김 처장은 또 “국민의 눈높이에 발맞춰 조직과 시스템을 재정비하겠다”며 “정치적 중립성·독립성 논란이 일지 않도록 처장이 사건 입건에 관여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박미영·이희진·김청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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