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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1940년 英은 왜 프랑스 배신했나…北 두둔만 하는 한국 착각 [뉴스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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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의 픽: 캐터펄트 작전



1940년 7월 3일 오후 5시 54분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메르스엘케비르 항구에선 포격전이 벌어졌다. 영국 해군과 프랑스 해군과의 한판이었다.

중앙일보

1940년 7월 3일 알제리의 메르스엘케비르 항구에서 프랑스 해군의 전함인 브레타뉴함이 영국 함대의 포격을 받고 있다. 위키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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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는 얼마 전까지 동맹을 맺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맞섰다. 동맹국끼리 해전이 왜 벌어졌을까?

냉엄한 국제정치의 셈법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그해 6월 22일 독일과 휴전협정을 맺었다. 마지노선이란 철벽 요새만 믿다 전격전에 허를 찔린 프랑스는 사실상 독일에게 항복한 것이다.

그러자 홀로 남게 된 영국은 불안해졌다. 프랑스에서 34㎞(최단 거리 기준)짜리 도버 해협만 건너면 영국이다. 용감한 모험가들이 수영으로 횡단한 거리다.

독일 해군은 보잘것없는 수준이었지만 프랑스 해군은 달랐다. 프랑스 해군은 세계 5위권 안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독일이 프랑스 해군을 접수한다면 영국 상륙작전은 해볼 만 했다.



그런데 프랑스 해군참모총장인 프랑수아 다를랑 제독은 수시로 말을 바꿨다. “프랑스가 항복하더라도 영국과 함께 싸우겠다”→“프랑스 함정을 독일 손에 넘기지 않겠다”→“프랑스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식이었다.

독일과 프랑스 휴전 협정엔 독일이 프랑스 함대를 전력으로 사용하지 않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은 그동안 협정을 제멋대로 깬 전적으로 악명이 높았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캐터펄트 작전을 승인했다. 메르스엘케비르 일대에 정박하고 있는 프랑스 해군의 최신예 전투함을 무력화하는 작전이었다. 프랑스 해군에게 ▶영국 편에 붙던가 ▶영국 항구로 이동하던가 ▶서인도 제도의 프랑스 식민지로 가 무장해제하거나 미국으로 배를 넘기거나 등 셋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할 예정이었다.

처칠은 고뇌했다. 이는 프랑스의 등에 칼을 꼽는 작전이기 때문이었다. 영국 해군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뱃사람은 나라가 달라도 마음은 서로 통한다.

하지만 처칠은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영국 함대가 출동했다.



메르스엘케비르 항구에서 영국 해군은 프랑스 해군에게 순순히 뜻을 따라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프랑스 해군은 자존심을 지키기로 했다.

그 결과 프랑스 해군은 1척의 전함과 1297명의 생명을 잃었다. 영국 해군의 손실은 항공기 5대와 조종사 2명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반영(反英) 여론이 들끓었다.

처칠은 그해 7월 4일 하원에서 캐터펄트 작전에 대해 보고하며 “서글픈 조치”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당위성은 따지고 말고 할 게 없다”고 덧붙였다.

나중에 전쟁이 끝난 뒤 독일 측 문서와 관계자 증언을 종합해보면 독일은 당시 프랑스 해군을 접수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독일 해군은 자기 앞가림도 겨우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안보에선 늘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는 게 기본이다. 낙관론자보다 비관론자가 더 필요한 분야다.

프랑스와의 의리를, 독일 해군의 능력을, 영국의 체면을 생각해 캐터펄트 작전을 취소한다고 생각해보자. 독일이 프랑스로부터 전투함을 뺏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국제정치에선 ‘보장’의 신용도는 정크본드보다 못하다. ‘국익’이란 이름 앞에서 배신도 하고, 말도 갈아타는 법이다.

눈을 한반도로 돌려보자.

중앙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열린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대미 신뢰구축 조치를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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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9일 조선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우리가 선결적ㆍ주동적으로 취했던 신뢰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재개하겠다는 해석이다.

앞서 북한은 새해 벽두부터 4차례 미사일 도발을 벌였다. 19일 중대 지시의 밑밥을 깐 행동인 셈이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선 ‘유감’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시험발사한 의도에 대해서는 단정하지 않고 (계속) 분석하겠다”고 말했다. 20일 김정은 위원장이 발언이 북한 관영매체를 통해 알려졌는데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더 한심한 건 국방부다.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자처하며 북한이 5일 쏜 미사일이 북한 주장대로 ‘극초음속 미사일’이 아니라 ‘일반 탄도미사일’이라고 강했다. 그러다 11일 북한 미사일의 최고 속도가 마하 10이 넘자 “진전된 것으로 평가한다”고 살짝 말을 바꿨다.

한국 외교안보 당국은 가장 좋은 경우의 수에만 기대서 방향을 결정하나 싶다.



영국이 82년 전 최악을 생각해, 체면을 버리고, 동맹국 프랑스와의 의리를 저버린 동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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