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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자수첩] 중고차 업계 눈치 보는 중기부, 소비자는 안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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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중기부는 중고차 개방 문제와 관련해 결정 권한이 없습니다.”

중고차 시장을 대기업에도 개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관련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자동응답기처럼 되풀이하는 말이다. 권칠승 중기부 장관은 작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중기부는 판단 권한이 없고 심의위 안건으로 올리는 역할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행정 절차상으로는 맞는 말이다. 중고차 시장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인지는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되고 이 결정에 따라 중기부는 남은 행정 업무를 처리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에는 대기업이 진출할 수 없다. 그러나 심의위는 중기부 장관 소속으로 중기부의 요청에 의해서 개최되며, 중기부는 심의위에 회부되는 안건별로 심의위의 기준을 산정해 고시한다. 심의위에 사실상 중기부의 의지가 반영되는 구조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9년 2월에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한이 만료됐다. 생계형 적합업종 추천 권한이 있는 동반성장위원회는 같은 해 중고차 매매업이 적합업종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후 절차는 중기부가 관련 심의위를 열어 결론을 내는 것뿐이었으나 중기부는 법정 결정 시한이었던 2020년 5월을 훌쩍 넘긴 2021년 12월에야 심의위 개최를 결정했다.

지난해 4월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20~60대의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9.9%가 중고차 시장이 매우 혼탁·낙후됐다고 응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피해 발생 시 구제받기도 어려워서’(62.3%)였다. 또 전체 응답자의 56.1%는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투명하고 선진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56.3%), ‘정확한 중고차의 품질, 투명한 거래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가격으로 사고팔 수 있어서’(44.1%)라는 이유가 많았다.

중기부가 중고차 업계의 눈치를 보면서 결정을 미루는 사이 소비자 피해는 계속 발생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공정거래위원회의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중고차 중개·매매 관련 상담 건수는 총 1만8924건으로 집계됐다. 심각한 피해를 입어 구제를 신청한 건수는 353건이었다. 중고차 시장 개방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중기부를 감사원에 고발하겠다는 시민단체까지 등장한 이유다.

을지로위원회에서 중고차 시장 이해 관계자들의 소통위원으로 활동한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재 대기업에 유리한 상황을 새 정부에서 바꿔보려는 중고차 업계와 골치 아픈 문제를 다음 정부로 넘기려는 중기부가 결국 시장 개방에 대한 결론을 대선 이후로 미룰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차 업계 종사자는 대기업의 진출을 반기지 않고 있는데, 이들의 숫자가 10만명에 달해 정치권도 대선을 앞두고 이들의 표심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김 교수의 예상대로 중고차 시장 개방에 대한 논의는 다음 정부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논의가 시작된 지 4년 차가 됐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그동안 합의를 이룬 일부 쟁점은 다음 정부에서도 유효한지, 새로 논의를 시작할 지도 미지수다. 중기부가 결정을 미루면서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들만 골탕을 먹고 있다.

민서연 기자(mins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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