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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 상속세 0원에 물려받은 ‘국보’를 판다고? 간송 왜 이러나 [아무튼,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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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를 경매 내놓은 간송

문화재계 싸늘한 이유

조선일보

국보 최초로 경매에 나온 간송미술관의 '계미명 금동 삼존불 입상'이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공개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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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국보’를 경매에 내놨네요. 솔직히 이해가 안 갑니다. 지난번 보물 불상도, 이번에 경매에 나온 국보 불상도 전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아니라 간송 3세의 ‘개인’ 소유물인데 왜 자꾸 재정난을 이유로 드는지….”(문화재 전문가 A씨)

“이번에도 국가가 사주길 바라고 내놓은 건데, 사실상 여론을 내세워 국립중앙박물관을 압박하는 거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간송 전형필이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어렵게 지켜낸 공로에 대해선 더없이 감사한 일이지만, 3대째 내려오는 사유재산을 왜 국민 세금으로 사줘야 합니까?”(불교미술사학자 B 교수)

한국 문화재의 보고(寶庫)이자 상징인 간송미술관이 ‘국보(國寶)’로 지정된 불상 2점을 새해 첫 경매에 내놓은 데 대해 문화재·학계 전문가들이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케이옥션은 오는 27일 열리는 올해 첫 메이저 경매에 국보 ‘계미명(癸未銘) 금동 삼존불 입상’과 ‘금동 삼존불감’을 출품한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5월 간송미술관이 재정난을 이유로 ‘보물’ 불상 두 점을 경매에 내놓은 지 1년 8개월 만이다. 당시 간송가(家) 소장품이 처음으로 경매에 나와 문화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두 점이 각각 시작가 15억원에 나왔으나 유찰됐고, 이후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여론에 떠밀려 국립중앙박물관이 30억원을 밑도는 가격으로 두 점 모두 구입했다.

이번에 나온 건 국가지정문화재 중 최고 가치를 인정받은 ‘국보’ 두 점이다. 계미명 금동 삼존불 입상은 32억~45억원, 금동 삼존불감은 28억~40억원으로 추정가가 책정됐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2년 전 간송 측이 불교 관련 유물을 매각하겠다고 예고하긴 했지만, 이미 보물 두 점이 유찰돼 국가가 사들인 상황에서 또다시 국보까지 경매에 내놓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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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최초로 경매에 나온 간송미술관의 '금동 삼존불감'이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공개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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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0원에 물려받은 ‘국보’를 판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공식 입장문을 내고 “2013년 공익적 성격을 강화하고 시대 변화에 맞추기 위해 재단을 설립한 이후 대중 전시와 문화 사업들을 병행하면서 이전보다 많은 운영비용이 발생해 재정적 압박이 커졌다”며 “구조조정을 위해 소장품 매각을 결정하게 돼 송구하다”고 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국보 2점의 소유자는 재단이 아니라 간송의 손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문화재청 관계자는 “간송 소장품 중 현재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 대부분은 간송 후손 세 사람의 공동 소유로 신고됐다. 간송 차남인 전영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과 3세인 장남 전인건 관장, 차남 전인석 삼천당제약 대표”라며 “반면 2년 전 매각한 보물 불상 2점과 이번에 나온 국보 불상 2점은 모두 전인건 관장이 단독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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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운영하는 국가문화유산포털에 소개된 국보 ‘계미명(癸未銘) 금동 삼존불 입상’. 소유자는 전씨 개인이고, 간송미술관은 관리자(단체)로 등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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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가가 소장한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는 모두 48건.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2조에 따르면, 지정문화재에 대해선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간송재단은 “지난 2018년 전성우 전 재단 이사장이 별세한 후 상당한 비용이 발생했다”고 했지만, 적어도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를 물려받으면서 간송 일가가 낸 상속세는 0원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수십억에 상당하는 국보·보물을 상속세 없이 물려받고서, 이를 제3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것. 예술·문화재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유경 법률 사무소 아티스 변호사는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에 대해선 상속세가 비과세되기 때문에 이미 상속받은 국보를 경매나 매매를 통해 팔아서 차익이 생긴다고 해도 이후 상속세를 소급해 부과 징수할 수 없다”고 했다. 선대가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을 고이 간직해 대대손손 보존하라는 의미에서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인데, 현행법상으론 얼마든지 악용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서 변호사는 “가령 대규모 자산가가 사망 전 국보를 사들이고, 이를 상속한 다음, 상속인들이 그 국보를 처분하는 경우, 상속세는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고가의 차익을 낼 수도 있다”며 “공개 경매가 아니라 사적 거래로 이뤄질 경우 사후에 문화재청에 신고만 하면 크게 주목받지 않고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주요 문화재 소장가 중 극히 일부이기는 하나, 평생 문화재 지정을 피해오다 상속과 유산 분할을 앞두고 뒤늦게 보물 지정 여부를 검토해 달라고 나서는 경우가 있다”며 “현행 상속세법으론 국보·보물이 탈세나 절세의 도구로 악용될 여지가 분명 있다. 단서 조항이라든지 제도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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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간송미술관이 내놓은 '보물' 불상의 경매가 열리는 모습. 아무도 응찰하지 않아 유찰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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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국가가 구입?

국보든 보물이든 경매에 내놓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도 개인 소장품인 경우에는 해외에 반출하지 않는 한 소유자 변경 신고만 하면 사고팔 수 있다. 문화재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7~2021년 보물 23점이 시장에서 팔렸고 그중 7점이 경매로 성사됐다.

하지만 벌써부터 여론은 국립중앙박물관을 향하고 있다. 워낙 가격대가 높은 유물이고,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상태에서 쉽게 응찰자가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경매에 나오는 다른 문화재와 동일한 입장에서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며 “간송 소장품이라고 해서 박물관 예산을 전부 써버리면 정작 꼭 구입해야 할 유물이 나왔을 때 난감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중앙박물관의 한 해 유물 구입비 예산은 40억원. 이번에 나온 두 작품을 합하면 80억원에 달한다. 박물관이 한 작품만 구입한다고 해도, 1년 예산을 거의 쏟아부어야 하는 셈이다. B교수는 “박물관이 경매에 참여해 민간과 경쟁하며 가격을 높이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박물관의 한 해 구입 예산이 전부 남아있는 새해 첫 경매에 내놓은 것부터 의도가 뻔히 보인다. 유찰되더라도 또 국가가 사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공익 재단을 만들어놓고도 상속세 없는 국보·보물은 유족들의 개인 소유로 등록한 채 연이어 경매에 내놓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경매 출품 전 박물관과 먼저 상의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최대한 비싼 값에 팔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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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경매에 나왔다가 유찰된 '금동보살입상'(왼쪽)과 '금동여래입상'.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두 점 모두 구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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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 건립 등 투입된 세금만 78억원

간송미술관은 1938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일제강점기에 간송 전형필(1906~1962)이 문화재 수집을 위해 헌신하며 지켜낸 유물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부터 불쏘시개가 될 뻔했던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을 거두고,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을 대한해협 건너 찾아온 스토리가 감동을 줬다. 최고 문화재를 보유한 미술관이지만 ‘은둔의 미술관’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1971년부터 매년 봄·가을 열리는 특별 전시회에만 미술관을 열었기 때문이다.

2대인 장남 전성우 전 관장, 차남 전영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거쳐 3대인 손자 전인건 관장이 맡으면서 변화를 시도했다. 2013년 공익적 성격을 강화하겠다며 재단을 설립하고, 2014년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5년 협업으로 외부 전시를 펼치는 등 활로를 모색했다. 그동안 ‘지원받으면 간섭도 받는다’는 이유로 거부해온 ‘사립 미술관 등록’도 2019년 9월 마쳤다. 미술관으로 ‘공식 등록’한 덕에 적지 않은 세금을 지원받고 있다.

간송 전형필이 1938년 지은 성북동 서울 보화각은 노후화와 항온·항습 유지 등 어려움으로 전시 관람은 물론 유물 보존에도 어려움이 컸던 게 사실. 재단은 보화각을 보수정비하고 현대식 수장고를 신축하기로 했는데, 오는 3월 완공 예정인 새 수장고 건립에 국비 45억2700만원과 지방비 19억4000만원이 각각 투입됐다. 간송 측이 부담하는 비용은 없다. 국보 ‘동국정운’ 보존 처리 및 영인본 제작, 보물 ‘이징 필 산수화조도첩’ 보존상태 진단 및 기록화, 간송미술관 내 비지정문화재 보존 처리 등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지원된 액수는 총 78억원. 착공을 앞둔 대구간송미술관 역시 대구시 사업으로 건립 예산이 약 400억원 잡혔다. 이광표 교수는 “간송이 어렵게 지킨 유물이니 당연히 국가가 사야 한다는 인식을 이제는 재고해야 한다”며 “더 이상의 온정주의는 간송의 미래에도 좋지 않다”고 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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