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이범의 불편한 진실] 민주당, 위기에 빠지다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18일 오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열린민주당 합당수임기관 합동회의가 열렸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들고나오자 이대남(20대 남성)이 열광적으로 반응했고, 이를 계기로 윤 후보 전체 지지율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을 추월하고 있다. 왜 여가부는 이대남의 타깃이 되었을까?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고 여성을 ‘불공정하게’ 우대하는 정책·담론·교육이 여가부에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가부가 취약 가정·청소년에 대한 지원 등 ‘선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해명은 핀트가 어긋난 것이다. 이대남의 요구는 ‘잠재적 가해자론’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그리고 여성 우대 정책을 폐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민주당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매우 어렵다. 민주당에는 사회운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든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활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가치와 ‘국가정치’의 가치가 상충할 때, 섣불리 사회운동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를 들어 성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유죄 추정’의 원리를 적용하면, ‘법 앞의 평등’이라는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가 흔들린다. 윤석열 선대본부는 이를 포착하여 ‘무고죄 처벌 강화’를 내놓았다. 이것이 ‘영리한’ 대응인 이유는, 이대남의 젠더 정체성이 시장주의라는 이념과 커플링된 것이 이 지점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해 7월8일자 칼럼 ‘이대남은 왜 시장주의자가 됐을까’에서 이 과정을 설명하며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사회운동의 가치를 국가정치에 활용하는 데는 또 다른 난관이 있다. ‘비판’은 타당한데 ‘목표’는 모호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예를 들어 남녀 간 임금격차를 보자. 한국은 3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압도적 최고다(평균은 12.5%). 이를 줄이려면 여성이 고소득 분야로 더 많이 진출하도록 유도하고, 출산·육아 지원을 강화하며, 고강도·장시간 노동을 대가로 고임금을 받는 이른바 그리디 워크(greedy work)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에 모두 동의한다 할지라도 임금격차를 ‘0’으로 만드는 것이 타당한 목표인지는 의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남성이 여성보다 3.1% 적게 받는 룩셈부르크의 경우 이러한 정책들을 역행시켜야 한다는 역설에 도달한다.

‘비판은 타당한데 목표는 모호한’ 것은 진보운동의 고전적 문제다. 카를 마르크스부터 그랬다. 그는 노동자가 외관상 동등한 계약주체로서 자본가와 근로계약을 맺지만(형식적 평등), 이 계약의 이면에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깔려 있음을 지적했다(실질적 불평등). 그렇다면 ‘실질적 평등’은 어떤 상태인가? 기업을 노동자들이 소유하는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소유하는 것인가? 시장경제인가, 계획경제인가? 마르크스의 어느 저작을 봐도 무엇이 ‘실질적 평등’인지 답이 없다. 이러한 사정은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양성평등이 어떤 상태인지 ‘구체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드물다. 주디스 버틀러쯤 되면 아예 ‘양성’ 평등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한다. 물론 목표가 불명확해도 ‘가치’를 방향타 삼아 나아가는 것이 ‘운동가’로서는 미덕일 것이다. 하지만 정책과 예산을 결정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선 결격사유다.

가장 해선 안 될 일이 청년수당으로 돈을 나눠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20대이다. 나는 15년 넘게 주요 커뮤니티들을 관찰해 왔는데, 요새 청년 남초(男超) 커뮤니티들의 여론주도세력은 저출생에 의한 미래의 극단적 인구 구조를 공포스러워한다. 이들은 육아휴직에 대해 매우 관대하고(출생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므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용서하지 못한다(가뜩이나 낮은 출생률을 ‘박살냈다’면서). 기본소득이나 보편복지 확대는 ‘극혐’의 대상이다. 그럴 여력이 있으면 고령화로 인해 장차 증가할 조세 부담률을 조금이라도 낮춰주는 데 써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가정치의 가치보다 사회운동의 가치를 앞세우고, 정치인이면서도 운동가인 양 행동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에토스의 위기). 무엇보다 사상적 지표이던 ‘평등’이나 ‘복지’가 뿌리째 불신받고 있다(로고스의 위기). 대선 전에 새로운 면모를 보이는 것이 가능할까? ‘민주당’은 어렵겠지만 ‘이재명’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는 기본적으로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상대 후보를 앞섰던 시기는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실용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을 때였다.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 RPG 게임으로 대선 후보를 고른다고?
▶ [뉴스레터]교양 레터 ‘인스피아’로 영감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