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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개인이 사회에 연결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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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요즘 나는 차별금지법이 급하다. 사회를 만드는 게 급하기 때문이다. 한국엔 국가와 개인만 있을 뿐, 사회가 없는 게 문제라고들 한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을 때는 차별금지법이 별로 안 급했다. 하지만 일단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는 그렇지 않다.

경향신문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내가 이해한 사회란 이런 것이다. 내게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는 최저임금 노동자 출신이란 것인데, 이건 사회에 연결되어 ‘발굴’된 이름이다. 청년이란 이름은 쉽게 붙는데, 최임노동자란 이름은 그렇지 않다. 이 이름이 없던 시절엔 내가 하던 것이 노동이 아니라 ‘아르바이트’였고, 천 원 단위 아래 시급이 몇백원씩 깎이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주말마다 열 시간씩 일해도 생활비가 모자랐다. 최저임금을 넘어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활 여건을 고려한 생활임금을 줘야 한단 얘기를 하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내 문제를 그렇게 풀 수도 있단 걸 알게 됐다.

사회란 매개체다. 그걸 통해서, 나와 비슷한 대접을 받고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해결책을 고안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 연결된 사람이 많아질수록 국가는 제대로 돌아간다고 한다. 개인이 사회에 연결되지 않는다면, 내 문제는 나만의 것이다. 세금 아닌 주식과 코인만이 믿을 구석이 되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덕에 많은 걸 배웠다. 개인적 불운을 사회적 힘으로 헤쳐 나왔는데, 예를 들어 건축물에 대한 단열 기준이 올라간 덕에 내가 사는 임대주택에도 이중 ‘샷시’가 있다. 그게 칼바람을 막아줄 때마다 이사 전 가벽을 쳐서 만든 베란다의 얇은 창을 뚫고 들어오는 추위를 못 이겨서 눈물이 난 경험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돈 없는 사람들이 모두 따뜻하게 겨울을 나는 세상도 꿈꿔본다.

지역에 살던, 다소 세계가 좁은 기독교인 부모 아래서 나고 자란 나는 이제 비슷한 사람뿐 아니라 다른 지역 출신, 서울 토박이, 실업계 졸, 특목고·명문대 졸, 여러 직업군, 남성과 트랜스젠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여러 종교인과 무신론자들과 친구로 지낸다.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에 동의하는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보이는 것을 서로 말해준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가장 넓은 범위로 상상하면,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서로를 자세히 모르는 곳에서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많이 나눈다. 가령 어제 친구들과 트랜스젠더 추모 집회에 다녀왔는데, 오늘 회사에서 만난 사람은 성소수자 욕을 한다. 다름이 저절로 숨겨져서 대화가 안 되는 사회인 것이다.

다 똑같이 여겨져서 숨막히는 경험은 거의 모든 한국인에게 있다. 학교와 군대에서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던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전 사회적으로 차별을 문제화하는 것은 이 상황을 해소할 마중물이다.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선 각자에게 시작점이 필요하다. 내가 이 틀에 맞지 않다고 자유롭게 말하는 시작점. 요즘 한국은 그게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 내가 요즘 어떻게 차별금지법이 급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건 더 많은 개인이 사회에 연결되는 입구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 간의 대화를 위한 판을 까는 차별금지법이 이번 대선의 중요한 쟁점이 되길 바란다.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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