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돈 없어도 일 안해"···MZ세대가 시작한 '안티워크'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유행처럼 번진 일명 ‘가영이 퇴사 짤’ 이젠 너무 익숙하시죠?

MZ세대 신입사원의 퇴사율이 과거에 비해 높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MZ는 기성세대와 달리 일보다 본인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낮습니다. 그래서 한 회사를 오래 다니기보다 자아실현, 워라밸 등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찾아 이직을 하는 경우가 잦다고 하죠. 이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MZ가 공유하는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중국 등 해외 여러 나라에서 MZ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퇴사 후 이직이나 창업 등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게 아니라 아예 일을 하지 않는 ‘안티워크(Anti work, 반 노동)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건데요. 어쩌다 MZ들은 일터를 떠나게 된 걸까요?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 해봤자 행복해질 수 없어’ 무기력한 미국 MZ, 대형 커뮤니티 중심으로 ‘반 노동’ 운동

안티워크 운동은 특히 미국과 중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미국부터 들여다보겠습니다. 미국에는 ‘레딧'이라는 초대형 커뮤니티가 있는데요. 바로 이 사이트의 하위 커뮤니티 ‘안티 워크'를 중심으로 노동 거부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혹시 지난해 초 ‘게임스탑 사태' 기억 나시나요? 기관의 공매도에 맞서기 위해 MZ세대 개인 투자자들이 비디오게임 소매 기업 ‘게임스탑'의 주식 매수 운동을 펼쳐 주가를 폭등시킨 사건인데요. 이 사건도 레딧의 하위 커뮤니티인 월스트리트베츠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났어요. 게임스탑 사태는 주식을 넘어 MZ세대의 밈 주식과 암호화폐 투자 열풍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MZ세대가 레딧을 많이 이용하고 있고, 레딧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뜻이죠.

지난해가 월스트리트베츠의 해였다면, 올해는 안티워크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안티 워크’에는 2022년 1월 기준 164만 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데요. 코로나19 유행 초기만 해도 회원이 10만 명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2년 사이 15배 이상 급증한 겁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커뮤니티 안에서 유행하고 있는 콘텐츠는 유저들의 사직서 사진이나 불합리한 직장 문화에 대한 밈, 일을 하지 않는 이유, 일을 관두게 된 사연들입니다.

이 커뮤니티의 회원들은 스스로를 ‘게으름뱅이(idler)’라고 부르는데요. 일을 하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게으름뱅이들 중 4만명에 달하는 이들이 무직입니다. 이들은 왜 무직을 택하게 되었을까요?

이들이 일을 그만둔 이유는 일하지 않아도 풍요로워서가 아니라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일을 해봤자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져서 입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40대 초반이던 1989년 이들의 평균 자산은 11만 3,000달러였는데요. 이에 비해 2019년 밀레니얼 세대의 자산은 9만 1,000달러로 20%가량 줄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밀레니얼 세대들은 가질 수 없는 부를 쫓기 보다는 잘못된 상황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급등하는 자산 가격을 보면서 노동 임금만으로는 자산가들이 쌓는 부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요. 그에 비해 열악한 노동 환경을 지닌 직장은 직원에게 모욕감만 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심화하자 임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상황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직장을 관두고 배달과 같은 긱노동이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을 택하게 됐죠.

레딧의 무직자들은 일을 그만두고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동거인을 구하기도 하고요. 식비를 아끼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집니다. 혹시나 먹다 남은 음식물이 있을까봐요.

이런 미국인들의 퇴사 열풍은 숫자로도 확인됐습니다. 지난해 11월 기준 미국의 퇴직자는 453만명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는 2000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대치입니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더 나은 직장으로 이직을 했겠지만 새롭게 취직한 사람의 수는 여전히 적고, 미국은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습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MZ, ‘평평하게 드러눕자’...정부 단속에도 여전해

중국의 안티 워크 운동은 ‘탕핑 세대'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국의 MZ세대는 일하기를 거부하고 ‘평평하게 드러누워 살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덜 풍요롭고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수는 있지만 단순하고 편하게 살자는 취지입니다. 이유는 미국이나 우리나라와 비슷해요. 모두가 치열하게 경쟁해서 좋은 스펙을 갖췄는데 취직하긴 힘들고, 주택을 비롯한 자산가격은 폭등해서 스트레스 받으며 회사를 다녀도 경제적 풍요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MZ들이 이런 무기력한 태도를 보이자 중국 정부는 ‘탕핑'을 금지어로 지정하는 등 단속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 커뮤니티에는 드러누운 동물 등의 밈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연봉 높여줘도 일 안해" 기업은 구인난···인건비 부담은 소비자가 떠안아

그렇다면 더 이상 일하지 않으려는 전세계의 MZ들, 이대로 괜찮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MZ들이 떠난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기업들은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을 제공해야 하는데요.

인건비가 계속 올라가면 안 그래도 살인적인 물가는 계속해서 더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로봇들이 인력을 대체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당장은 그 정도의 기술 수준이 갖춰지지도 않았고요. 고스란히 그 부담은 소비자인 우리에게 돌아올 거예요.

게다가 임금을 올려준다고 MZ세대가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기준 미국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해 비어있는 일자리는 1,103만 개에 달합니다. 한국의 대기업도 입사한 MZ들이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퇴사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하죠.

이들이 일터로 돌아오지 않는 건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앞서 말했듯 ‘자산 가격이 폭등해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부는 쌓을 수 없는데, 불합리한 조직 문화 탓에 스트레스만 받아야 하는 사회’에 대한 무력감이 크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들은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일을 할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안티워크 운동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들의 근로 의욕을 다시금 불러일으킬 해결책, 나올 수 있을까요?

정현정 기자 jnghnjig@sedaily.com정민수 기자 minsoojeong@sedaily.com조희재 기자 heej0706@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