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27일 시행 중대재해법, 원청 책임 확실히 물을수 있을까…책임회피용 ‘총알받이 대표이사’ 우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지난 11일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 한수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도 전국에서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광주 서구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로 하청업체 노동자 1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된 가운데,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는 입사한 지 보름밖에 안 된 하청업제 노동자 1명이 중장비에 끼여 숨졌다. 오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보다 한층 강화된 처벌·제재로 산업현장의 중대재해 사고를 실질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노동자가 사망해도 산안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 된 사례는 극히 드물고 양형도 낮다. 대검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20년 검찰이 산안법 위반으로 사법처리한 피의자 9916명 중 구속 기소는 2명(0.02%)뿐이었다. 재판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법원의 ‘산안법 위반사건 처리결과’를 보면 2020년 1심 법원은 산안법 위반사건 604건 중 9건(1.49%)만 집행유예 없는 실형을 선고했다.

이번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시공을 맡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사업장만 보더라도 2019년 발생한 2건의 중대재해 사건에서 기소유예, 벌금형이 나왔다.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은 2019년 3월 경기 파주시 운정지구의 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1명이 18m 높이에서 추락해 숨진 사건에 대해 HDC현대산업개발과 현장소장 등을 모두 기소유예 처분했다. 서울동부지법은 같은해 4월 강동의 한 주택건축 정비사업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1명이 무너진 단열재 더미에 깔려 숨진 사건에 대해 HDC현대산업개발 회사에 1500만원, 현장소장에게 500만원의 벌금형을 각각 선고했다.

산안법은 직접적인 의무를 부여한 ‘현장’ 사업장의 안전보건 임직원에게 방점을 두고 이들의 위법행위를 처벌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은 ‘본사’의 경영책임자에게도 책임을 물어 안전보건 관리가 소홀했는지를 조사해 위법이 있다면 경영진까지 처벌할 수 있다는데 큰 차이가 있다. 문제는 원청인 본사가 하청을 주는 경우, 원청이 하청의 시설·장비·장소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어야 원청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규정한 대목이다. ‘지배·운영·관리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한만큼 경영책임자가 법적 책임 회피를 위해 안전보건 업무를 책임지는 직책을 만들어 대응할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앞서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광주 붕괴 참사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면서도 대주주 회장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자, 화정 아이파크 예비입주자 대표회의는 “회사에 대한 실질적 지배를 유지하고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려는 꼼수로 보인다”고 했다. 벌써부터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경영책임자의 책임 회피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일찌감치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우석 법무법인 명진 대표 변호사는 “사업 대표자를 법률상 등기돼 있는 대표이사로 볼 건지 (등기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최고경영자, 속칭 회장님도 포함되는 것으로 볼 건지는 법 해석에 맡겨진 측면이 있어 향후 실제 사례를 통해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여력이 있는 대기업에서는 오너가 실질적으로 보고를 받으면서도 안전보건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을 대표이사로 앉혀 총괄하도록 하고, 정작 문제가 생기면 떠넘기는 ‘총알받이 대표이사’를 두는 편법이 사용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등기이사에서 빠지려는 관행은 우리나라에 많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보편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수사기관에 출석해 조사 받는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처벌은 둘째치고 일단 오너가 조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조직의 안전보건을 재고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책임에 따라 조사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실질적인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장의 안전보건 확보를 위한 역할을 다했는지를 ‘입증’하는 수사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모든 직함에서만 물러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대표자로 업무를 집행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처벌할 수 있다. 또 발주자라고 해도 공사현장에 깊이 있게 관여하면 처벌 받을 수 있다”며 “수사기관에서 밝혀낼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했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경영책임자의 책임 여부를 찾아내기 위한 신속한 조사 내지 수사가 필요하다. 기존에 노동부에서 접근하지 않았던 과학수사나 강제수사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경영책임자들이 안전보건 확보를 위해 유해요인을 제거하는 등 관심을 기울이고 점검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 RPG 게임으로 대선 후보를 고른다고?
▶ [뉴스레터]교양 레터 ‘인스피아’로 영감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