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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할머니 살해 10대형제에 판사가 준 '자전거도둑'…무슨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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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류원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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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완서 작가의 동화집 '자전거 도둑'. 출판사 다림./사진=네이버 책


"이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보길 바란다."

재판장은 존속살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10대 형제에게 실형을 선고한 뒤 책을 건넸다. 형제는 잔소리한다는 이유로 10년 가까이 자신들을 키워준 친할머니를 흉기로 무참히 살해했다.

형제가 받은 책은 고(故) 박완서 작가의 '자전거 도둑'이다.


박완서 1999년작, 서울서 자전거도둑이 된 시골소년

지난 20일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1형사부(김정일 부장판사)는 존속살해 등 혐의로 기소된 형 A군(19)에게 징역 장기 12년, 단기 7년을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10년간 부착을 명령했다. 동생 B군(17)에게는 범행을 도운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선고를 마친 뒤 재판장은 "이번 사건은 재판부에서도 고민이 많았던 사건"이라며 "자전거 도둑이라는 책은 박완서 작가가 아주 예전에 썼던 동화책이다. 읽으면서 본인 행동을 되돌아보고, 삶에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도 한 번 고민해보기 바란다. A군에게는 편지도 함께 넣어 뒀다"고 말했다.

이어 "B군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해 석방한다. 보호관찰 명령이 같이 나가기 때문에 판결이 확정되면 보호관찰소에 바로 신고해서 지시에 잘 따라야 한다"며 "할아버지한테는 찾아뵙고 꼭 사죄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1999년 출판된 '자전거 도둑'은 박 작가가 쓴 6개 단편을 모은 동화집. 그 중 자전거 도둑은 1970년대 눈앞의 이익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잃어버린 어른들 속에서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소년은 시골에서 올라와 힘든 서울 생활에 찌들어 자전거 도둑이 되고 만다. 본인의 잘못을 질타해 줄 어른이 없다고 여긴 소년은 진정한 어른이 있는 고향을 향해 짐을 싼다. 소년의 모습을 통해 박 작가는 올곧은 양심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자전거 도둑을 비롯해 이 책에 담긴 총 6편의 동화는 모두 용기 있는 주인공들을 통해 사회를 혼탁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있다. 특히 어린이의 맑은 시선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일깨워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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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친할머니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형 A군(19, 왼쪽)과 범행을 도운 혐의를 받는 동생 B군(17)이 지난해 8월31일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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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의지 있다…동생은 집행유예"

재판부는 A군에 대해 "범행의 죄질이 매우 나쁘다"면서도 "심리분석 결과 내면에 우울감과 공허감, 자존감 저하 등 부정적 정서가 있었다. 당시 할머니의 언행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받아들여 한순간에 억눌렀던 정서가 폭발한 점을 감안하면 우발적 범행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부모 이혼으로 양육자가 계속 바뀌는 등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A군이 학교에서 원만하게 생활한 점과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교화 개선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B군에 대해서는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과 충돌조절 장애로 입원치료를 받은 점, 양육자가 계속 바뀌어서 평소 형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A군은 지난해 8월30일 0시10분쯤 대구 서구 비산동 한 주택에서 친할머니(77)가 잔소리하는 것에 화가 나 흉기를 60여차례 휘둘러 숨지게 하고 이를 목격한 할아버지(93)도 살해하려고 했지만 B군의 만류로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았다. 할머니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머리와 얼굴, 팔 등 전신에 부상 정도가 심해 결국 숨졌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A군은 범행 후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도 간 것 같은데 할아버지도 같이 갈래" 등 패륜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또 범행 전 포털사이트에서 범행 수법도 검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A군은 "평소 할머니가 게임하지 말라는 등 잔소리해서 싫었다"는 이유로 범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B군은 직접 범행에 가담하진 않았지만 형이 범행할 때 할머니의 비명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닫고, 할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현관문 앞에서 지키는 등 범행을 도운 혐의다.

이들 형제는 부모 이혼 후 2012년부터 9년간 신체장애를 가진 조부모와 함께 생활해 왔다.

류원혜 기자 hoopooh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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