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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다시 인텔 제친 삼성…세계1위 한국반도체는 왜 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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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오동희의 思見]자만해선 안될 한국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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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0년 10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왼쪽부터 ASML 관계자 2명,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피터 버닝크(Peter Wennink)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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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강국 대한민국의 반도체가 세계 1위에 올라섰다.

25년간 세계 1위를 차지했던 인텔을 2017년 제치고 1위에 등극했던 삼성전자가 이듬해까지 반짝 1위에 올랐다가 2019년과 2020년엔 다시 왕좌를 인텔에 반납했었다.

그런 삼성전자가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호조로 다시 왕좌를 탈환했다. 삼성전자에 이어 10년 전만 해도 8위권이었던 SK하이닉스도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2012년 인수한 후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반도체 시장 3위를 당당히 차지했다. 두 회사의 지난해 반도체 매출 합계가 1000억 달러를 넘어선다.

앞으로 이같은 순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가 득세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과 자율주행, 인공지능(AI), e-러닝, 메타버스, 로봇의 시대가 오면서 메모리 수요확대는 장기화될 전망이다. 데이터를 기록하는 저장장치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이는 인류의 진화와 맞닿아 있는 메모리 반도체의 운명이다.

인류의 진화는 기록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몸에 기억돼 있는 DNA가 후손으로 이어진 것이 첫 기록의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신체 내에서의 DNA 정보의 후세로의 전달은 더디다. 돌연변이로 인한 진화 과정은 더디게 진행되고 전달되는 정보도 한계가 있다.

진화를 위한 정보전달은 몸짓이나 언어 등 휘발성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졌고, 선사시대 암각화나 벽화 등 비휘발성 기록으로 발전했다.

벽화는 메모리(저장) 기능과 디스플레이(전시) 기능을 동시에 가진 매체였지만 휴대성이 불편했다. 암각화나 벽화를 들고 다닐 수 없으니 그 기록의 정보 전달은 그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에 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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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2015년 8월 25일 이천 본사에서 열린 M14 준공 및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SK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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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파피루스나 죽간 등 휴대성을 가진 저장장치가 만들어졌다. 그 후 만들어진 저장장치의 결정체가 5000년전 닥나무로 만든 종이다. 종이는 장기간의 저장기능과 표시 기능을 동시에 가지면서도 휴대의 편리성으로 인류의 사랑을 받았다.

인간은 기록을 선호한다. 휘발성 메모리인 우리 뇌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이 '사진'이나 일기장 등 종이로 인쇄된 기록매체다. 그 기록매체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이 1947년 미국 AT&T 벨 랩에서 만든 세계 최초 트랜지스터다.

21세기의 기억들은 암각화나 종이에 남아있지 않고 모두 '0'과 '1'의 전기적 신호에 의해 디지털화돼 저장된다.

이런 방식이 인류에게는 어색해보이지만 사실 인간의 몸이 작용하는 기전이 이런 전기적 신호에 의한 것임을 감안하면 정보전달 방식은 인간을 닮아간다고 할 수도 있다. 뇌의 신경세포 속 뉴런의 전기적 신호나 심장을 뛰게 하는 Na+의 전기자극이 반도체 작동의 원류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기억을 넘어서 진화하는 사회에서 메모리반도체의 수요는 인텔 창업자 중 한명이었던 고든 무어가 내놓은 '무어의 법칙(18개월에서 2년에 두배씩 성장한다)'을 크게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연산 중심의 프로세서를 주로 하는 인텔에 비해 기억을 담당하는 메모리를 주로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선전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가 강한 이유는 이런 기록매체 기술에 뛰어난 민족이라는 점이다.

고려 500년 역사나 조선 600년의 역사를 한자도 빼놓지 않고 기록해 놓은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은 말할 것도 없고, 앞선 신라 시대의 세계 최초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나 고려의 세계 최초 금속활자로 만든 '직지심체요절' 등에 사용된 인쇄술은 반도체의 깎고 찍는 회로설계 기술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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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반도체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2021년 4월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에서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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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세계 반도체 기술의 진화에 있어서도 벨랩의 강대원 박사(MOS-FET 세계 최초 개발)나 한국반도체 강기동 박사, KAIST 김충기 교수 등 초기 엔지니어와 학자는 물론, 이병철·정주영·구인회·최종현·이건희 회장 등 초기 기업가들의 피와 땀이 한국 반도체 1위의 밑거름이었다. 그와 함께 한 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 SK하이닉스, 동부하이텍 등에서 힘쓴 임직원들의 노력이 반도체 강국을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반도체 산파인 인텔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른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를 더욱 이어가야 한다. 다만 이 시점에서 1위라는 타이틀에 흥분할 일은 아니다. 글로벌경쟁의 냉혹한 현실은 '반도체강국 코리아'에 따뜻한 시선이 아닌 시기와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당장 미국과 일본, 대만, 중국 등 경쟁국들의 견제는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이 반도체굴기를 내세웠던 중국을 ASML 노광장비 금수조치로 한 순간에 무너트리는 것을 세계에 보여줬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정부는 반도체특별법이 제대로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에 보탬이 되도록 살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이 반도체 기업에 지원하는 것과 우리 정부의 지원을 비교하면 안타까울 정도다. 우리 국민들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대해 자부심과 적극 지원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런 응원 속에 기업들과 기업가들은 1위에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경계하고 조심하고 주위를 살펴야 한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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