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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최악 취업난에도 일자리 11만개 비었다…기이한 일자리 미스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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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에서 소규모 차량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박모(62)씨는 늘 일할 사람을 구하는 중이다. 많을 땐 50명 가까운 인원이 있었는데, 퇴직자 자리를 충원할 수 없어 지금은 30명이 일한다. 박씨는 “금형 제조업은 숙련도가 중요해서 짧게 일할 사람이나 외국인은 채용할 수 없다”며 “이 일을 5년 이상 해야 한 사람 몫을 하는데, 지원자가 없다. 기술의 대가 끊길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채용시장에서 ‘일자리 미스매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매출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인력 부족으로 허덕이지만, 청년층은 희망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실업 상태로 남는 현상이다. 대졸자 비율이 높은 사회구조에 대-중소기업 격차가 극심해진 탓으로 분석된다.



민간 '미충원 인원' 10년만에 최대



20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5인 이상 민간사업체의 ‘미충원 인원’은 11만4000명으로 2011년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기업은 총 80만4000명을 필요로 해 공고를 내는 등 노력했지만 69만명을 뽑는 데 그쳤다. 이런 미충원인원은 1년 새 5만명(76.9%)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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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최고인 미충원인원과 미충원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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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주요 미충원 사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전체 미충원인원의 91.6%가 300인 미만 사업체에 집중됐다. 미충원 사유로는 ‘근로조건이 구직자 기대에 맞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23.3%로 가장 많았다. 영세한 기업일수록 취업 기피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 중 중소기업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관련 통계 집계 후 처음으로 90% 밑으로 떨어졌다.

반면 대졸 취업률은 바닥을 찍었다. 지난달 교육부가 발표한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2020년 대졸 취업대상자 48만149명 중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31만2430명이다. 4년제ㆍ전문대ㆍ일반대학원 졸업자 등을 모두 합친 것으로 취업률은 65.1%다.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1년 이후 가장 낮았다.



대졸이 70%, 높아진 눈높이



취준생은 일자리를 못 찾고, 반대로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을 못 뽑는 미스매치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청년이 선호하는 직장은 주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공무원에 한정됐다. 중소기업이 급여나 복리후생, 사회적 평판 모두 뒤처진다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육체노동을 꺼리면서 제조업을 기피하는 현상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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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률.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상대적으로 높아진 구직 '눈높이'가 이를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청년층(25~34세)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69.8%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가장 높다. 미국 51.9%, 프랑스 49.4%, 독일 34.9% 등 주요 선진국과도 차이가 컸다. 너도 나도 대졸자이지만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는 그만큼 늘지 않아 '미스매치'가 발생한 것이다.



“수도권 선호, 지방 인프라 키워야”



또 구직자는 수도권을 선호하는데 중소기업은 비수도권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이 많이 오르다 보니 현실적으로 중소기업 급여가 이보다 그리 많지 않다. 지방 중소기업보다는 수도권 알바를 선호하는 것”이라며 “비수도권은 그 안에서 교통이나 인프라가 안 좋아 출퇴근 자체부터 문제가 생긴다. 경제권역별로 지역을 묶어서 인프라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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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성수동 수제화업체에서 장인이 제품을 만들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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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의 변 “중소, 적게 벌고 많이 일해야”



그렇다고 임금과 워라밸을 좇겠다는 청년을 탓하긴 어렵다. 지난해 10월 2년간 다닌 중소기업을 퇴직한 김모(29)씨는 “졸업하고 원하던 회사에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취업했던 건데 체계가 부족한 탓에 배우는 게 없다고 느꼈다”며 “임금도 불만족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업무량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대학을 나온 김씨는 공기업 신입 공채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임금근로자 소득 통계를 보면 대기업 근로자는 월평균 515만원, 중소기업 근로자는 245만원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평균 월급이 중소기업의 2배가 넘는다. 각종 복리후생까지 비교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노동ㆍ교육ㆍ사회인식 다 손봐야



미스매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환경뿐 아니라 교육구조까지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생산 효율을 높이는 등 중소기업 지원을 통해 대기업과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또 교통 정책에 있어서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아니라 비수도권 내 인프라 개선도 방법이다.

현장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특히 제조업을 놓고 보면 필요 인력 절반 이상은 고졸 이하”라며 “특성화고를 졸업해 중소기업에 들어가고, 후학습을 통해 산업현장 마이스터(장인)로 키우는 생애 전반에 걸친 성장경로가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 인력이 존중받아야 장기적으로 성장을 통해 기업 생산성을 높이는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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