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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고구려 벽화 속 메타버스 세계[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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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최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에 이어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자주 회자된다. 현실과 가상현실이 혼재된 메타버스의 본질은 현실의 나를 초월해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사실 이 메타버스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2300년 전 장자가 ‘호접몽’에서 “내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가, 아니면 나비가 사람의 꿈을 꾸고 있는가”라고 했듯, 인류는 오랫동안 현실을 넘어선 새로운 자아를 꿈꿔왔다. 그 바람은 꿈으로, 샤먼의 유체이탈로, 고구려 무덤의 벽화로 표출됐다.》

누구나 경험하는 메타버스 ‘꿈’

육신을 벗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꿈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신기하게도 현실과 연결된 꿈을 꿔봤을 것이다. 물론, 꿈이 지닌 예지력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대부터 꿈은 사람이 육체적 질곡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접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고대에 꿈에서 본 것은 현실과 거의 동일하게 간주됐다. 구약 성경에서도 야곱이나 다니엘의 이야기를 비롯한 수많은 장면에서 꿈은 현실과 비슷하거나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프로이트와 융이 꿈은 무의식의 표현이라고 주장하기 훨씬 전부터 인간에게 꿈은 또 다른 세계를 실현할 유력한 도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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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꿈을 잡을 수 있다고 믿고 머리맡에 걸어뒀던 ‘드림캐처’. 오른쪽은 2600년 전 중국 만리장성 인근에 살던 유목민의 무덤에서 출토된 양서류를 닮은 인물상. 위키피디아·강인욱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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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꿈을 잡기 위한 드림캐처라는 도구까지 만들었다. 버드나무 등으로 만든 그물 모양의 이 도구를 창문이나 머리맡에 걸어두고선 꿈을 잡아냈다고 하니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괴물을 잡는 ‘포켓몬고’라는 게임의 원형인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서양 중세 시대엔 인큐버스(incubus)와 서큐버스(Succubus) 같은 꿈속의 악마가 현실의 사람을 해칠 수 있다고 믿었다. 한국에선 1998년 발굴된 일명 ‘원이아빠’라 불리는 조선시대 이응태의 무덤에서 “제발 내 꿈속에 나와 달라”는 ‘미망인’의 편지가 발견됐다. 사람들은 꿈을 인간 삶의 연장으로 봤고, 그 꿈을 다스리고 해석하면서 현실의 도피처로 삼았다.

샤먼만의 특수한 메타버스

꿈은 모든 사람이 꾸지만 잠을 통해 이뤄지고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반면 샤먼은 의도적인 의식을 통해 다른 세계를 경험, 초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샤먼의 특수한 상태는 ‘엑스터시’ 내지는 ‘유체이탈’이라고 불린다. 이따금 죽음에 이르는 사람이 경험하는 ‘임사체험’에서도 비슷한 유체이탈 현상이 보고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매우 드물며 의학계에서는 단순한 환각이라고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샤먼들은 이런 유체이탈을 죽음이 아닌 자신의 의식에서 구현했다. 샤먼들은 다양한 환각제와 술, 그리고 제의를 통해 자신의 육체적인 틀을 벗어나 다른 세계를 여행했다. 그들의 흔적은 다양한 고고학 기록에 남아있다. 2600년 전 베이징 근처 만리장성에 살던 유목민의 무덤에서는 개구리 같은 양서류의 관을 쓰고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인물상이 발견됐다. 마치 VR 안경을 쓴 것처럼 보인다. 과거 사람들은 특히 뱀이나 도마뱀 같은 파충류와 양서류의 형상을 선호했는데, 이들은 물과 땅을 쉽게 오갈 수 있어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상징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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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전 바이칼 호수 인근에 살던 샤먼의 무덤에서 발견된 정령상. 샤먼이 정령의 꼬리를 붙들고 유체이탈을 하듯 여러 세계를 오가는 모습을 담았다. 서울대박물관 제공


‘샤먼의 호수’ 바이칼의 약 5000년 전 무덤에선 유체이탈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유물이 나왔다. 인간과 동물의 몸을 한 정령의 기다란 꼬리 끝에 샤먼의 얼굴이 달려 있다. 자신들이 믿는 정령을 쫓아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세계를 여행하는 모습이다. 내몽골 홍산문화의 무덤에서는 애벌레 모양의 곡옥, 구름 속 나비 등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담은 옥 제품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렇듯 유라시아 곳곳에서는 샤먼의 유체이탈을 다양한 유물로 표현했다. 선호하는 동물이나 부적은 다르지만 샤먼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습으로 유체를 이탈해 자신의 메타버스 세상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구려인이 구현한 가상세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간의 바람은 죽은 자의 영원한 거처인 무덤으로 대표된다. 사람들은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 믿지 않고 무덤을 저승의 거처로 다양하게 활용했다. 고구려를 비롯한 수많은 지역에서는 형이상학적인 기호와 모티브를 갖춘 벽화가 무덤의 방을 감싸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수많은 가상세계의 배경에서 보이는 화사한 색감의 별천지에서 고구려의 벽화가 연상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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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연상케 하는 모죽임 구조의 덕화리 1호분 천장 벽화. 벽면에는 현실 생활을, 천장에는 신화적 요소를 표현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고구려 벽화 무덤은 독특한 모죽임 천장(모서리를 돌을 엇갈리게 쌓아서 마치 입체적인 하늘의 모양처럼 천장을 덮는 기술)으로 만들었다. 고구려인들이 이렇게 입체적으로 하늘을 묘사한 이유는 현실과 하늘 세계를 함께 표현하기 위해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지상에 해당하는 벽에는 고구려인들의 실제 생활을 생동감 있게 담았고, 천장으로 올라가면서 하늘의 별과 신화적인 요소를 섞어서 표현했다. 마치 최근 유행하는 아바타처럼 현실과 판타지가 한데 어우러지는 작품을 만들었다.

현실과 가상의 모습을 섞어서 3차원의 가상세계를 구현하는 메타버스의 세계는 바로 1500년 전 고구려 벽화 속에 들어 있었다. 고구려 벽화의 찬란한 예술세계는 무덤 속 주인공이 저승에서 진정한 메타버스의 세상을 살기 바랐던 고구려인들의 마음이 표현된 것이다. 고구려뿐 아니다. 세계 곳곳의 벽화와 바위그림은 죽음을 새로운 출발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메타버스로 구현한 결과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메타버스

이렇듯 현실을 떠나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인류의 바람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인간은 고대부터 각 시대에 맞는 자신만의 메타버스를 만들어 왔고 각자의 방법으로 즐겼다.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타임슬립이나 사람의 영혼이 뒤바뀌는 설정이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현대 과학으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그 설정을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렇듯 메타버스는 최근 생소한 용어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예술과 역사의 발전을 함께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그것을 먹는 이의 소화력을 능가할 순 없듯이, 아무리 뛰어난 신기술이라도 우리의 육체적 능력과 오감 한계를 벗어날 순 없다.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기술이 아무리 많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것을 즐기는 인간의 신체적인 능력은 수만 년 전 초기 현생인류의 수준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기술의 발달에 환호하기 전 인류가 어떻게 메타버스를 갈망하며 만들어왔는지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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