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의 기록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나의 삶도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이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과 상처 극복 과정을 담은 책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를 냈다.

피해자 김잔디(가명)씨는 4년 넘게 박 전 시장의 비서로 일했다. 그는 2017년 상반기부터 박 전 시장이 사적으로 부적절한 연락을 해온 것으로 기억한다. 김씨는 “(박 전 시장이) ‘나 혼자 있어’ ‘나 별거해’ ‘셀카 사진 보내줘’ ‘오늘 너무 예쁘더라’ ‘오늘 안고 싶었어’ ‘오늘 몸매 멋지더라’ ‘내일 안마해 줘’ ‘내일 손잡아 줘’ 같은 누가 봐도 끔찍하고 역겨운 문자를 수도 없이 보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2020년 정신과 상담 과정에서 박 전 시장의 성적 괴롭힘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사건을 세상에 내어놓기로 결심한다. 그가 13시간의 경찰 조사를 받은 다음날 박 전 시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명 정치인의 성폭력 사건과 그의 극단적 선택은 가혹한 2차 가해로 이어졌다. 김씨를 두고 ‘피해호소인’이라 지칭하는가 하면, 박 전 시장 죽음의 가해자 취급을 하기도 했다. 김씨는 “박원순 시장의 사망 이후 그를 애도하는 마음이 모여 나를 향한 공격의 화력이 되는 일은 광기에 가까웠다”며 “모두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중심에는 내가 평소에 존경하고 따르던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들의 입장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말할 수 없이 깊어졌다”고 토로했다.

세계일보

사진=천년의상상


박 전 시장이 사죄 없이 목숨을 끊은 이후 김씨는 정신과에서 입원치료를 받았고, 극단적 선택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후 개명 절차를 밟고 성형수술까지 했다. 죽고 싶은 충동에 일부러 의료사고가 발생했던 병원을 예약했다고도 고백한다.

서울시청에 복귀해 근무 중인 김씨는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서 깨달았다. 나에게 가장 잔인하게 상처 주는 사람도 나이고, 나를 가장 충만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나라는 사실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내 인생에 일어났을 때 스스로를 탓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그 고난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응원하며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그 마음이라면 이제 어떤 일이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 천년의상상은 “이념적 지형에 따라 적대적으로 갈린 양대 정치 집단의 이해관계에 어떤 식으로든 사용되거나 복무되는 것을 거부한다”며 “이 책이 원하는 것은 2022년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전 구성원에게 우리가 지키고 마땅히 가꿔나가야 할 공동체의 정의와 윤리적 가능성을 묻는, 불편하지만 피해서는 안 될 유효한 질의서가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